캄보디아 집단학살
집단학살, 킬링필드, 인권침해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4:35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 정권이 자행한 대규모 인권 탄압이자 학살.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를 앞세워 농업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다 캄보디아 인구의 25%가 희생됨. 도시민 강제 이주 고문 학살 강제 노역 등으로 150만~3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현대사의 비극. 베트남의 침공으로 정권이 종식되었으며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법적 심판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 2만 개 이상의 집단 매장지 일명 킬링필드는 비극의 생생한 증거로 남아있다.
1975
[킬링필드의 시작]
민주 캄푸치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에 기반한 농업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하면서, 도시 인구를 강제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고문과 학살, 강제 노역이 가해지며 캄보디아 집단학살이 시작되었다.
1백 5십만 명에서 3백만 명에 달하는 캄보디아 인구가 희생되었으며, 이는 캄보디아 인구의 25퍼센트에 달하는 수치다.
농업정책 실패로 인한 기아와 질병으로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까지 20,000 개가 넘는 집단매장지가 발굴되었으며, 이러한 집단매장지를 소위 킬링필드라고 부른다.
1979
[크메르 루주 정권 종식]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크메르 루주 정권을 실각시키면서 5년간 이어졌던 캄보디아 집단학살이 비극적인 막을 내렸다.
2001
[집단학살 심판 법안]
캄보디아 정부가 크메르 루주 지도부 일부를 집단학살의 책임으로 심판대에 세우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킬링필드의 비극에 대한 사법적 정의 구현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2009
[킬링필드 공판 시작]
크메르 루주 지도부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대중 공판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킬링필드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단죄하기 위한 공식적인 절차가 진행되었다.
2014
[지도자 종신형 선고]
크메르 루주의 주요 지도부인 누온 찌어와 키우 삼판에게 반인륜범죄 혐의로 유죄가 선고되고 종신형이 내려졌다.
이는 캄보디아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에 대한 역사적인 단죄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