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왕조
왕조, 가문, 프랑스 역사, 유럽 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4:32
카페 왕조는 987년 위그 카페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어 1848년까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을 호령한 가장 영향력 있는 왕조 중 하나입니다. 로베르 왕조의 분가로 시작된 이 왕조는 프랑스의 세 번째 왕조를 개창했으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스페인 나폴리 헝가리 등 수많은 유럽 국가와 제국의 군주를 배출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남성 상속 왕조라는 기록을 보유하며 현재까지도 룩셈부르크와 스페인 왕실의 혈통을 잇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중세 유럽의 정치 지형을 형성하고 오늘날 유럽 왕실의 근간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866
[로베르 왕조 기원]
카페 왕조의 뿌리인 로베르 왕조의 선조, 네우스트리아 후작 로베르 르 포르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가문은 메로빙거 왕조 후기부터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유럽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로베르 르 포르의 두 아들인 오도 1세와 로베르 1세는 카롤링거 왕조 사이에서 잠시 프랑크 왕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로베르 왕조'라는 명칭은 후대 역사가들이 붙인 것입니다.
987
[카페 왕조 개창]
프랑크 공작 위그 카페가 카롤링거 가문의 샤를을 제치고 프랑스 왕위에 오르며 프랑스의 세 번째 왕조인 카페 왕조를 개창했습니다.
이 사건은 중세 유럽 정치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고, 천년 가까이 이어질 위대한 왕조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위그 카페는 랭스 대주교 아달베롱의 강력한 지지 아래 즉위했으나, 초기에는 왕권이 강하지 않아 왕국 남부에는 직접 개입하기 어려웠습니다. '카페 왕조'라는 명칭은 후대 역사가들이 위그 카페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1032
[부르고뉴 가문 시작]
프랑스 왕 로베르 2세의 둘째 아들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1세를 시조로 하는 카페 부르고뉴 가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카페 왕조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여러 분가를 형성하며 유럽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중요한 흐름의 하나였습니다.
해당 가문은 1361년까지 부르고뉴를 통치했습니다.
1139
[포르투갈 왕국 건국]
카페 왕가의 후예 아폰수 1세가 포르투갈의 왕으로 즉위하며 포르투갈 왕국이 건국되었습니다.
이베리아반도까지 뻗어나간 카페 왕조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1383년까지 그 혈통이 이어졌습니다.
아폰수 1세는 1185년까지 통치하며 포르투갈의 독립을 확고히 했습니다.
1216
[라틴 제국 황제]
카페 왕조 출신 피에르가 십자군 국가인 라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이는 카페 왕조의 영향력이 동지중해 지역까지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후 1261년까지 총 세 명의 카페 왕가 인물이 라틴 황제를 지냈습니다.
피에르는 1217년까지 재위했습니다. 그의 아들 로베르와 동생 보두앵 2세도 라틴 제국 황제를 역임했습니다.
1266
[나폴리 왕국 통치]
카페 왕가의 카를로 1세가 나폴리 왕국의 왕위에 오르며 이탈리아 남부에서의 카페 왕조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1442년까지 나폴리를 다스렸으며, 이후에도 카페 왕조의 분가들이 이 지역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카를로 1세는 1285년까지 통치했으며, 이후 18세기까지 카페 왕조의 혈통이 나폴리 왕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310
[헝가리 왕국 통치]
카페 왕조의 혈통을 이은 카롤리 1세가 헝가리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이로써 프랑스를 넘어 중부 유럽의 주요 왕국에까지 카페 왕조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으며, 1386년까지 그 가문이 헝가리를 다스렸습니다.
카롤리 1세는 1342년까지 통치했으며, 그의 후손들이 헝가리의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1328
[카페 본가 단절]
프랑스의 샤를 4세 사망으로 카페 왕조의 직계 남성 상속이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카페 왕조의 분가인 발루아 왕조가 왕위를 계승하며 카페 왕조의 통치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로써 프랑스의 왕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발루아 왕조는 필리프 3세의 손자인 필리프 6세부터 시작되었으며, 1498년까지 프랑스를 다스렸습니다.
1370
[폴란드 왕국 통치]
앙주 왕조 출신의 루드비크가 폴란드 왕으로 즉위하며 카페 왕조의 혈통이 폴란드 왕국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헝가리 왕을 겸하기도 했으며, 그의 후손들이 1399년까지 폴란드를 통치했습니다.
루드비크는 1382년까지 통치했으며, 그의 딸 야드비가가 남편과 공동 통치하며 왕국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1700
[스페인 부르봉 시작]
카페 왕조의 중요한 분가인 부르봉 왕가 출신의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이는 프랑스와 스페인 왕실의 혈통적 연결고리를 강화하며, 현재까지도 스페인 왕실은 이 부르봉 왕조의 후예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펠리페 5세는 1746년까지 재위했으며, 현재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도 이 가문의 일원입니다.
1792
[프랑스 왕실 일시 중단]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가 폐위되면서, 987년부터 이어져 온 프랑스에서의 카페 왕조(발루아, 부르봉 포함)의 통치가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이는 프랑스 역사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1814년부터 백일천하를 제외하고 1848년까지 다시 부르봉 왕조의 통치가 재개됩니다.
1848
[프랑스 왕조 통치 종료]
마지막 카페 왕조 혈통의 프랑스 국왕인 루이 필리프 1세가 폐위되면서, 프랑스에서의 카페 왕조 통치는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이는 천년 가까이 이어져 온 프랑스 왕조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로 프랑스는 공화정 체제로 전환되었으며, 더 이상 왕실이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장수 왕조 기록]
역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베르너에 따르면, 888년부터 1848년까지 프랑스를 포함한 수많은 유럽 왕국에서 군주를 배출한 카페 왕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남성 상속 왕조"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경이로운 기록은 왕조의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이 가문은 프랑스 왕 36명, 포르투갈 왕 32명, 스페인 왕 11명 등을 포함해 무려 10여 개국에서 100명이 넘는 군주를 배출하며 유럽 왕실의 흥망성쇠를 대변했습니다.
1861
[양시칠리아 통치 종료]
카페 왕조의 후예인 프란체스코 2세가 양시칠리아 왕국에서 마지막으로 통치하며, 이 지역에서의 카페 왕조의 영향력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여파로 많은 군주국이 사라지는 시기였습니다.
1860년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의 통치 종료와 함께 이탈리아 내 카페 왕조의 주요 영지는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2000
[현 왕실 혈통 계승]
카페 왕가의 후예인 앙리 드 뤽상부르가 룩셈부르크 대공으로 즉위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스페인의 펠리페 6세와 함께 카페 왕조의 혈통을 잇는 군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왕조의 놀라운 생명력을 증명합니다.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는 2000년 즉위했으며,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는 2014년에 즉위하여 이 유서 깊은 왕조의 현대적 계승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