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도시, 항구, 경제 중심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4:27
모로코 최대 도시이자 경제 무역의 심장 역할을 하는 곳 하얀 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유래를 가진 도시 마그레브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대륙 10위권 내에 드는 대도시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항구 중 하나를 자랑하는 주요 항구 도시 유구한 역사와 식민 지배 독립을 거쳐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 도시의 매력
700
[베르베르족 정착 및 안파 건설]
오늘날 카사블랑카 지역은 적어도 7세기까지 베르베르인들이 정주했으며, 아랍 무슬림 지배에 맞서 '안파'라는 작은 독립 왕국이 세워졌다.
1068
1400
1468
1515
[카사 블랑카, 그 시작]
포르투갈인들은 1515년 안파의 폐허 위에 군사 요새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 주변에서 자라난 마을을 포르투갈어로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 블랑카'라고 불렀다.
도시 이름의 유래가 된 순간이다.
1580
1640
1755
1756
[카사블랑카의 재건]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은 술탄 모하마드 벤 압달라(1756년 ~ 1790년 재위)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때 아랍어로 '하얀 집'을 뜻하는 '앗다르알바이다'와 스페인어 '카사 블랑카'로 불리게 되었다.
1800
[영국과의 교역으로 번영]
19세기, 영국에서 직물 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카사블랑카는 양모의 주요 공급처가 되었다.
선적 수송량이 급증하며 인구가 크게 늘었다.
영국은 모로코의 현재 유명한 국민 차인 '주차'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1860
1880
1906
[프랑스 식민주의자 진출]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술탄령 내에 최초의 통치자로 카사블랑카에 출현했다.
이때 인구는 12,000여 명에 달했다.
1907
[프랑스 지배의 서막]
프랑스가 항구 근처 묘지를 가로지르는 경편철도를 건설하려 하자 주민들이 프랑스 노동자들을 공격하며 폭동이 일어났다.
프랑스 군대가 상륙하여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마을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는 카사블랑카를 장악했다.
이는 비록 프랑스의 카사블랑카 지배가 1910년까지 공식화되지 않았을지라도 식민지화 과정의 실질적인 시작으로 여겨진다.
1910
1921
1930
1940
[반프랑스 저항의 중심]
1940년대와 1950년대 사이, 카사블랑카는 프랑스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반프랑스 폭동이 일어나는 주요한 중심지였다.
1942
[불후의 명작 '카사블랑카' 개봉]
경쟁하는 유럽 열강들 사이의 세력 다툼을 묘사한 유명한 영화 《카사블랑카》가 개봉하여 당시 식민 상태의 도시를 세계에 알렸다.
이 영화는 방대한 전 세계적인 캐릭터 배역을 가졌지만, 아랍인 캐릭터는 변두리 역할의 도어맨 '압둘' 단 한 명뿐이었다.
1943
[카사블랑카 회담 개최]
제2차 세계대전 중 카사블랑카는 중요한 전략 항구였으며, 1943년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전쟁 진행을 논의하는 카사블랑카 회담을 주최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작전장을 위한 모든 미국 항공기가 작전을 수행하는 대규모 미국 공군기지의 소재지였다.
1956
1958
1983
2000
[여성 권리 데모 발발]
2000년 3월, 카사블랑카에서 4만 명의 여성들이 모로코 내 여성의 법적 지위 개선을 요구하는 대규모 데모를 벌였다.
이들은 일부다처제 금지와 이혼법 도입을 외쳤다.
2000년에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은 무함마드 6세 국왕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는 2004년 새로운 가족법(무다와나)을 제정하여 여성의 권리 활동가들의 요구 중 일부를 수용했다.
2003
[최악의 자살 폭탄 공격]
2003년 5월 16일,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인들이 실행한 복합적인 자살 폭탄 공격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33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알카에다 연관성이 주장되었다.
2007
[자살 폭탄 테러 연쇄 발생]
2007년, 카사블랑카는 연쇄 자살 폭탄 테러에 시달렸다.
3월 11일, 용의자 병사 한 명이 카사블랑카 인터넷 카페에서 스스로를 폭파시켰다.
[강화된 경계 태세]
4월 12일, 경찰은 도시 둘레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이전 습격에서 탈출했던 2명 이상의 남자를 구류하며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미국 영사관 인근 폭탄 테러]
4월 14일, 두 명의 형제가 카사블랑카 시내(미국 영사관에서 한 명, 미국 언어 센터에서 한 명)에서 자살 폭탄을 실행했다.
이 폭탄으로 한 사람만 부상당했지만 영사관은 한 달 이상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