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고대 도시, 도시국가, 제국, 세계문화유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4:08
카르타고는 지중해를 호령했던 고대 페니키아계 해상 제국입니다. 서지중해 최대 세력을 자랑하며 무역과 과학 농업으로 번성했지만 로마와의 세 차례 포에니 전쟁으로 지중해 패권을 다투다 끝내 멸망했습니다. 카이사르에 의해 재건되어 북아프리카 상업 중심지로 부활했으나 5세기 반달족 7세기 아랍인에 의해 최종 파괴되며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잔혹한 인신공희 풍습도 있었으며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적만 남아있습니다.
BC 9C
[카르타고 도시 건국]
전설 속 디도 여왕에 의해 현재 튀니지 땅에 새로운 도시, 카르타고가 세워졌습니다.
초기에는 페니키아의 도시 국가 티레의 종속 도시였습니다.
부왕 사망 후 남매 퓌그말리온의 위협을 피해 왕국을 떠난 디도 여왕이 카르타고를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고대 페니키아어 기록 '노라 스톤'에 그녀의 남매가 언급되는 등, 디도 여왕의 역사적 실존 가능성이 높습니다.
BC 7C
[카르타고 제국 건설]
강력한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페니키아로부터 독립하여 지브롤터에서 벵가지에 이르는 서지중해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무역 중심파가 정권을 장악하며 상업적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사르데냐, 코르시카, 시칠리아 일부, 발레아레스 제도 등 주요 거점을 확보하며 기원전 3세기 말까지 지중해 패권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확장을 통해 서지중해에서 최대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BC 6C
[한노의 아프리카 탐험]
위대한 항해자 한노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현재의 시에라리온에까지 도달하며 카르타고의 해양력을 과시했습니다.
BC 5C
[서지중해 교역 중심지]
하드루메툼, 우티카 등 옛 페니키아 식민지를 정복하고 모로코부터 이집트 해안지대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서지중해 무역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사르데냐, 몰타, 발레아레스 제도, 시칠리아 서부까지 지배권을 확립했습니다.
BC 4C
[아가토클레스 침공]
시라쿠사의 아가토클레스가 아프리카 본토를 침공하여 카르타고가 포위되는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이를 격퇴하고 시칠리아 패권을 재확립했습니다.
BC 3C
[제1차 포에니 전쟁]
지중해 상권을 두고 팽창하는 로마 공화국과 카르타고 사이에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23년간의 긴 전쟁 끝에 로마에게 패배하며 지중해 서부 해상권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핵심 영향력 지역인 시칠리아로 해상 진출을 시도했고, 이로 인해 두 강대국 간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카르타고는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이끄는 해군이 로마에 격멸당하며 결정적인 패배를 맞았습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불세출의 영웅 한니발이 스페인의 사군툼을 공격하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니발은 갈리아 남부를 거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하는 놀라운 전략을 펼쳤습니다.
수많은 병력과 전투 코끼리를 잃는 희생을 감수하며 이탈리아에 침입한 한니발은 칸나이 전투를 포함한 여러 차례 전투에서 로마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는 로마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지만,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지연 전술로 로마는 전세를 만회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이 전쟁은 한니발 전쟁으로도 불립니다.
[칸나이 전투 대승]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궤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는 고대 전술사에서 길이 남을 명승부로 평가됩니다.
[자마 전투 대패]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아프리카 본토의 자마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며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카르타고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지중해 서부의 이권을 로마에 빼앗겼습니다.
BC 2C
[제3차 포에니 전쟁]
로마의 허락 없이 동맹국 누미디아를 침범한 카르타고에 대해 로마 원로원의 대 카토가 "카르타고는 반드시 섬멸해야 합니다!"라고 선동하며 제3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로마의 요구를 받아들여 도시를 버리고 이주하라는 원로원의 제안에 시민들이 분노하여 로마에 저항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카르타고 최후의 날]
3년간의 치열한 공성전 끝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카르타고 도시가 함락되었습니다.
로마군은 도시를 완전히 불태우고 소금을 뿌려 황무지로 만들었으며, 이는 카르타고 제국의 최종적인 멸망을 알리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카르타고 시민들은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활 시위로 쓸 정도로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로마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아프리카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BC 1C
[카르타고의 부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카르타고가 로마의 식민 도시로 재건되었습니다.
이후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 속주의 수도이자 상공업의 핵심 중심지로 확고한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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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리아누스 순교]
카르타고의 저명한 기독교 주교이자 학자인 키프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기독교 탄압 시기에 처형당했습니다.
카르타고 기독교 공동체는 비타협적인 순수주의와 순교를 각오하는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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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탄압 최전선]
로마 제국이 기독교 신자들에게 성경 제출 또는 죽음을 선택하라는 칙령을 내렸을 때, 카르타고는 아프리카에서 이 명령에 저항하는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검거되어 처형당했습니다.
아프리카 속주 총독부는 모든 시민에게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명령하며 교회를 분쇄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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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아랍인들에게 두 번째로 함락된 카르타고는 주민 학살과 건물 해체라는 비극을 맞으며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도시의 돌들은 튀니스 건설에 사용되었습니다.
정복자들은 건물을 전부 해체하여 마차에 싣고 만을 따라 수송, 튀니스 건설에 활용했습니다. 키프리아누스, 도나투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고향은 결국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현재 카르타고의 폐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