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역사, 시대 구분, 중세 시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2:05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천년간 유럽을 지배했던 시대입니다. 서로마 제국 멸망과 게르만족 대이동으로 시작되어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죠. 교황권과 왕권의 대립 십자군 원정 봉건제도 발달 등 격동적인 변화를 겪으며 근대 유럽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암흑시대라는 오해와 달리 스콜라 철학 대학 설립 비잔틴 문화 발전 등 문화적 교류와 성장이 함께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300
[로마 제국 쇠퇴 시작]
한때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 호언하던 로마 제국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필사적인 개혁에도 불구하고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인구 감소, 실물 경제화, 토지 독점으로 자유 농민과 중간층이 몰락했으며, 로마군은 게르만 용병으로 채워져 무력화되었습니다.
인구 감소와 경제 위기 속에서 로마 제국의 내부 불안이 가속화되었고, 이는 서고트족의 침입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410
[영원의 도시 로마 함락]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하여 '영원의 도시' 로마를 함락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서로마 제국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중세 시대를 알리는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서고트족이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동로마군을 격파한 후 서진하여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한 결과입니다. 이는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중요한 결과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476
[서로마 제국 멸망]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며, 약 1000년간 이어진 서로마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유럽 역사에서 고대와 중세를 구분하는 상징적인 기준으로 여겨집니다.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결과로 서유럽에는 서고트 왕국, 동고트 왕국, 반달 왕국 등 여러 게르만 국가들이 건국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했습니다.
500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등극]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대제가 즉위하여 로마 제국 재건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슬라브 민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이탈리아, 에스파냐, 북아프리카 등 옛 로마 영토를 탈환하며 한때 제국을 부흥시켰습니다.
또한 로마법을 집대성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하여 법제사에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군사적, 법률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의 통치 아래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와 동방 문화가 융화된 화려한 비잔틴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600
[이슬람교 탄생과 확장]
7세기에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교를 창시했습니다.
그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신하며 아라비아 반도 전 부족을 통일하고 이슬람 세계 건설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사후 칼리프들은 불과 1세기 만에 중앙아시아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여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슬람교의 성립은 기존의 여러 문명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서유럽과 동로마 제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700
[카롤링거 왕조의 시작]
프랑크 왕국에서 카를 마르텔이 사라센 제국을 격퇴하며 궁재의 힘을 키웠고, 그의 아들 피핀 3세가 카롤링거 왕조를 수립했습니다.
이 무렵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황과의 유대를 강화하며, 중세 서유럽 봉건제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교황 또한 그리스 교회와 대항하기 위해 세속 군주와의 유대를 바라고 있었기에, 프랑크 왕국과 교황청 간의 제휴는 중세 유럽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787
[카롤루스 대제의 교육 개혁]
카롤루스 대제가 피사의 피에트로와 알퀸의 조언을 받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학자들을 초빙하고, 칙령으로 제국 내 모든 수도원에 학교를 병설시켰습니다.
이는 스콜라 철학의 이름 유래가 되는 '스콜라(scola)' 학교를 통해 중세 연구 활동의 중심지를 형성하며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교육 개혁이었습니다.
고대 철학의 보존과 부흥을 목표로 한 이 교육 개혁은 게르만, 로마, 그리스도교 등 다양한 요소를 융합하여 서유럽 공통 문화의 출발점을 이룩했습니다.
800
[카롤루스 대제 황제 대관]
크리스마스에 카롤루스 대제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로마 제국의 황제로 대관되었습니다.
이로써 비잔틴, 이슬람 세계와 구별되는 서유럽 중세 세계라는 독자적인 정치, 문화적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카롤루스 대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통해 민족 이동기의 쇠퇴했던 문화를 부흥시키고 서유럽 공통 문화의 출발점을 이룩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의 황제 대관은 중세 유럽에서 교황과 세속 군주의 제휴 및 상호 이용 관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중요한 상징적 사건입니다.
1000
[중유럽 왕국들 건국]
중세 성기에 흉노 계통의 마자르족이 헝가리 왕국을, 서슬라브족이 폴란드 왕국을 건국하며 중부 유럽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노르만인들이 유럽 여러 나라를 위협하며 발전하는 시기와 겹쳐집니다.
유럽 각지에서 새로운 민족 국가들이 형성되며 기존의 질서가 재편되고, 이는 봉건제의 발전과 왕권 강화로 이어지는 배경이 됩니다.
1054
[동서 교회 대분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로마 교황 간의 신학적,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며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최종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동서 교회 대분열'로 불리며 유럽의 종교 지형을 영구히 변화시켰고, 중세 종교 권력의 양대 축이 완전히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교리 해석,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겹치면서 두 교회의 분열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는 유럽의 종교적 통일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066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
스칸디나비아반도 출신 게르만계 노르만인들이 발달된 항해술을 바탕으로 유럽을 위협하다가, 윌리엄 공의 지휘 아래 영국을 정복했습니다.
이 사건은 영국 역사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대륙에서의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빈번히 대립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은 영국의 문화와 언어, 정치 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봉건 제도의 정착을 가속화했습니다. 윌리엄 1세는 중앙집권적인 통치를 확립하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습니다.
1077
[카노사의 굴욕]
성직자 임명권을 둘러싸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 간에 벌어진 권력 투쟁에서, 하인리히 4세가 카노사에서 교황에게 굴복했습니다.
이 사건은 '카노사의 굴욕'으로 불리며 교황권이 세속 군주의 권력 위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중세 교황권의 최대 절정기를 알렸습니다.
교황권과 황제권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교황이 승리한 이 사건은 중세 유럽의 2원적 지배 체제에서 교회의 막강한 영향력을 입증했습니다. 황제는 눈 속에서 3일 밤낮을 기다린 후에야 교황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095
[십자군 원정 시작]
회교도에게 점령된 성지 예루살렘 탈환과 동로마 구원을 명분으로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시작된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1차 십자군을 시작으로 200여 년간 여러 차례 이어진 이 원정은 유럽과 중동의 정치, 경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십자군 원정은 종교적 열정으로 시작되었으나, 후에는 정치·경제적 욕망이 개입되며 그 양상이 변화했습니다. 이 원정은 유럽의 상업 도시 발달과 원거리 무역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1200
[유라시아 대륙의 격변]
13~14세기, 당나라에 밀린 셀주크 투르크족의 서방 진출이 십자군 운동을 유발했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칭기즈칸이 유목 제국을 건설하여 세계 제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상호 연결되는 시기였음을 알립니다.
몽골 제국의 출현은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걸쳐 교역과 문화 교류를 활성화시켰지만, 동시에 대규모 파괴와 함께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 확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309
[교황 아비뇽 유수]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갈등 끝에 교황을 아비뇽으로 강제 이주시키며 교황권이 프랑스 왕권에 종속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아비뇽 유수'로 불리며 교황권의 실추와 왕권 강화의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
70여 년간 이어진 교황의 아비뇽 유수는 교황권의 위신을 크게 떨어뜨렸고, 이후 서방 교회의 분열로 이어져 중세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337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영국 왕위 계승 문제와 플랑드르 지방 영유권 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백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장기간의 전쟁은 양국의 왕권을 강화시키고 민족 국가 형성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중세 기사 계급의 몰락을 가속화했습니다.
백년 전쟁은 화약 무기의 등장과 잔 다르크와 같은 영웅의 활약으로 전쟁의 양상이 변화했으며, 양국 국민들에게 강한 민족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1347
[유럽을 휩쓴 흑사병 창궐]
몽골 침략과 교역을 통해 유럽에 유입된 흑사병이 대륙을 휩쓸었습니다.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이 사망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봉건제 해체를 가속화하며 중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흑사병은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켜 농노 해방을 촉진하고 임금 인상을 가져왔으며,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며 새로운 사회 변혁의 물결을 불렀습니다.
1378
[서방 교회의 대분열]
교황 아비뇽 유수 이후,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동시에 재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서방 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황권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으며, 유럽 각국의 종교적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두 명의 교황이 서로를 파문하고 각자의 지지 세력을 모으면서 교회는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개혁 요구를 증대시키고 종교개혁의 씨앗을 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