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루 전쟁

전쟁, 식민지 전쟁, 남아프리카 역사, 영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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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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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식민지 전쟁, 남아프리카 역사, 영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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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대영 제국이 남아프리카 연방 건설을 위해 줄루 왕국을 침공한 전쟁. 줄루 왕국은 서구 제국주의 군대에 첫 승리(이산들와나 전투)를 거두며 세계를 놀라게 함. 그러나 결국 영국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패배 왕국은 멸망하고 영국에 합병됨. 대영 제국의 아프리카 종단 정책 실현에 기여했으나 보어 전쟁 등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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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남아프리카 연방 구상]

대영 제국은 1867년 캐나다 자치령 모델을 본따 남아프리카의 여러 왕국과 부족, 보어 공화국을 하나의 연방으로 묶어 식민지 경영을 용이하게 하려 했다.

헨리 바틀 프레어 경을 고등판무관으로 파견해 이를 추진했으나, 줄루 왕국 등 독립 세력이 걸림돌이 되었다.

영국 식민지국 장관 카나르본 경은 남아프리카 식민지 연방을 통해 영국 제국의 영향력을 확장하길 원했고, 프레어 경은 이를 위해 줄루 왕국을 영국 통제하에 두려 했다.

1878

[줄루 왕국에 최후통첩]

영국 고등판무관 헨리 바틀 프레어 경은 영국 정부의 승인 없이 독단적으로 줄루 왕 케취와요 캄판데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는 줄루 왕국과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명분 확보 목적이었다.

케취와요 왕은 연방 체제 제안을 거절하며 자신의 권력과 군사력 상실을 우려했다. 프레어 경은 최후통첩이 거부될 경우 줄루 영토를 침공하도록 프레드릭 테시어 중장에게 명령하며 전쟁을 계획했다.

1879

[줄루 전쟁 발발]

영국 육군 프레드릭 테시어 중장이 이끄는 군대가 줄루 왕국을 침공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테시어 중장은 부대를 세 부대로 나누어 줄루 왕국의 수도 울룬디를 점령하기 전 줄루군을 전투에 끌어들이려 했다.

우측 부대는 투겔라 강을 건너 에쇼웨를, 좌측 부대는 트란스발에서 위트레흐트로 향했다. 테시어 중장 직접 이끄는 중앙 부대는 로크스 드리프트 선교지에서 버팔로 강을 건너 줄루군을 탐색했다. 줄루군은 총을 잘 다루지 못했으나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채 용감하고 조직적인 백병전에 능했다.

[이산들와나 전투: 英軍 패배]

프레드릭 테시어의 영국군 주둔지가 약 20,000명의 줄루군에 기습당했다.

영국군은 탄약 보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수적 열세에 압도당했고, 1,800명 중 약 1,300명이 전사하는 대패를 당했다.

이는 서구 제국주의 군대가 아프리카 군대에 최초로 패배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줄루군은 이 전투에서 전쟁 중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패배는 빅토리아 여왕의 궁정에 큰 충격을 주었다. 줄루군은 보급품과 탄약을 빼앗았다.

[로크스 드리프트 방어전]

이산들와나 전투의 승리에 고무된 약 4,000명의 줄루군이 소규모 영국 수비대(부상병 포함 약 130명)가 지키던 로크스 드리프트에 공격을 강행했다.

영국군은 12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방어하며 수백 명의 줄루군에 피해를 입히고 사기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전투는 이산들와나 전투와 동시에 또는 직후에 발생했다.

[나이제인 전투 및 에쇼웨 포위]

찰스 피어슨 대령이 지휘하는 영국 우측 부대가 나이제인에서 6,000명의 줄루군을 물리치고 에쇼웨 주둔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후 약 두 달간 줄루군에게 포위되며 고립되는 상황에 처했다.

[흘로반 전투]

영국 런던 수뇌부에서 추가 병력이 파견되며 영국군의 줄루 왕국 공격 준비가 재개되었다.

프레드릭 테시어는 에쇼웨에 고립된 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에블린 우드 대령의 부대에 흘로반 부근에서 줄루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공격을 명령했다.

에블린 우드 대령은 명령에 따라 줄루군을 캄불라 쪽으로 유인했다.

[캄불라 전투: 줄루군 타격]

에블린 우드 대령의 영국군 좌측 부대가 이산들와나 패배 후 캄불라에 진지를 구축하고, 20,000명의 줄루군을 격퇴했다.

집중 화력 공격으로 약 3,000명의 줄루군 사상자가 발생했고, 영국 기병대의 추격으로 줄루군은 완전히 전멸당하며 사기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에블린 우드 부대는 당시 줄루 왕국 내 영국군 중 가장 전투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깅깅들로뷰 전투: 에쇼웨 구조]

프레드릭 테시어는 고립된 찰스 피어슨 대령의 우측 부대를 구조하기 위해 진격하여 깅깅들로뷰에서 줄루군을 물리쳤다.

이로써 에쇼웨에 고립되었던 영국군은 구조되어 나탈로 돌아와 두 번째 침공을 준비하게 되었다.

[줄루 왕 체포 및 왕국 분할]

울룬디 전투 패배 후, 줄루 왕 케취와요 캄판데는 영국군에 의해 쫓기다 체포되었다.

줄루 왕국은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며 13개의 자치 지역으로 분리되었고, 케취와요 왕의 재산은 몰수당하고 그는 케이프타운과 런던으로 망명했다.

왕의 부재와 왕국 분할은 내전으로 이어졌다.

[울룬디 전투: 줄루 왕국 멸망]

프레드릭 테시어는 5,000명의 강력한 영국군을 이끌고 줄루 왕국의 수도 울룬디를 공격했다.

20,000명의 줄루군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영국군의 개틀링 기관총과 대포 화력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 전투의 승리로 영국은 전쟁을 끝냈고, 줄루 왕국은 사실상 멸망했다.

약 6,000명의 줄루군이 전사했으며, 영국군은 줄루군의 용감함에 감동하여 울룬디에 기념비를 세웠다.

1883

[케취와요 왕 복권 및 사망]

내전으로 혼란스러워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영국은 케취와요 왕의 지위를 복권시켰다.

그러나 그의 힘은 이전과 같지 못했고, 복권된 다음 해인 1884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1887

[줄루 왕국, 영국 영토 편입]

줄루 왕국은 최종적으로 영국의 영토로 선언되었고, 10년 후 영국 식민지인 나탈에 합병되며 완전히 영국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는 영국의 남아프리카 종단 정책 실현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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