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작가, 언론인, 사회주의 사상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1:15
-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 인도 출생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 - 사회 부조리 고발 전체주의 비판 민주사회주의 지지. - 《동물농장》 《1984년》 등 디스토피아 소설로 세계적 명성. - 빅 브라더 신어 등 신조어로 대중문화 및 정치에 영향. - 뛰어난 현실 인식과 민중 중심적 아나키즘 사상가.
- 에릭 아서 블레어 탄생
- 이튼 스쿨 입학
- 인도 제국 경찰 복무
- 버마 경찰 사직
- 병과 빈곤 속 파리 생활
- 〈교수형〉 발표 및 기고
- 첫 책 출판 계약
- '조지 오웰' 필명 채택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출간
- 《버마 시절》 미국 출간
-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와 만남
- 《엽란을 날려라》 출간
-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
- 북잉글랜드 사회상 조사
- 스페인 내전 참전
-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출간
- 바르셀로나 5월 사건 목격
- 전투 중 부상 및 스페인 탈출
- 《카탈로니아 찬가》 출간
- 《동물 농장》 탈고
-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 사망
- 《동물 농장》 출간 및 반향
- 《1984년》 집필 및 탈고
- 《1984년》 최종 탈고 및 작명
- 《1984년》 출간
- '오웰 리스트' 제출
- 결핵으로 사망
1903
[에릭 아서 블레어 탄생]
인도 제국의 벵갈(오늘날 비하르 주)에서 에릭 아서 블레어라는 본명으로 태어났습니다.
훗날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작가의 시작이었습니다.
1905
[어머니와 함께 영국 귀국]
두 살이 되던 해, 어머니 이다 블레어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헨리온템즈에 정착했습니다.
아버지는 인도 식민국에서 계속 근무했기에 어린 에릭은 1912년까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1908
[수녀원 부속 학교 입학]
다섯 살에 헨리온템즈의 수녀원 부속 로마 가톨릭 계열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퍼블릭 스쿨에 보내고 싶었으나 학비 부담이 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11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 입학]
이모부의 추천으로 학비의 절반을 감면받아 이스트서식스에 있는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에 입학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훗날 회고록에서 학교 생활이 싫었다고 술회했습니다.
1914
[첫 시 작품 발표]
헨리온템즈 지역 신문 《헨리 앤 사우스 옥스퍼드셔 스탠다드》에 두 편의 시를 기고하며 어린 시절부터 작가적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1917
[이튼 스쿨 입학]
웰링턴 스쿨로 잠시 옮겼다가, 세계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이튼 스쿨의 입학 허가를 받아 그곳에서 1921년까지 수학했습니다.
이곳에서 올더스 헉슬리 등 훗날의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1922
[인도 제국 경찰 복무]
이튼 스쿨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식민 관료의 길을 택했습니다.
10월, SS 히어포드셔 호를 타고 버마로 향했으며,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의 사상과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927
[버마 경찰 사직]
뎅기열로 영국에 돌아온 후, 5년간의 식민지 경찰 생활에 대한 깊은 자기혐오를 느끼며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제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1928
[파리에서 작가 생활 시작]
버마 경찰을 그만둔 뒤 작가의 꿈을 안고 파리로 이주했습니다.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생활하며 《버마 시절》 초고를 쓰는 등 작가 활동에 매진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첫 전문 작가 글 발표]
프랑스 공산당 잡지 《몽드》에 〈영국의 관료 체제〉를 기고하며 전업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로써 언론인으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첫 기고문 발표]
《지케이스 위클리》에 〈서푼짜리 신문〉을 기고하며 영어로 된 첫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 파리의 밑바닥 삶을 주제로 여러 글을 썼습니다.
1929
[병과 빈곤 속 파리 생활]
파리에서 중병에 걸려 코신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 후에는 도둑맞아 돈 한 푼 없이 접시닦이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파리 생활 청산, 귀향]
2년간의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사우스월드로 돌아갔습니다.
이곳에서 개인 교사로 일하며 글쓰기를 이어갔고, 훗날 여러 지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1931
[〈교수형〉 발표 및 기고]
인도 제국 경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에세이 〈교수형〉을 《뉴 아델피》에 발표하며 정규 기고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대표적인 비판적 에세이 중 하나입니다.
[투옥 경험을 위한 체포]
작가로서의 경험을 쌓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스키를 마시고 거리를 배회하다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베스널 그린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석방되었고, 이 경험은 그의 작품에 녹아들었습니다.
1932
[첫 책 출판 계약]
빅토르 골란츠 출판사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초고인 《천한 것의 일기》를 40파운드에 출판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이로써 작가로서의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하우스론 고등학교 교사 부임]
웨스트런던의 작은 사립 남자 고등학교인 하우스론 고등학교의 교사로 채용되었습니다.
학부모는 주로 무역상이나 상점 주인 계층이었습니다.
['조지 오웰' 필명 채택]
가족들에게 부랑자 생활이 알려질까 염려하여 새로운 필명을 고민했습니다.
출판사의 추천을 받아 "부드럽게 들리는 영국 이름"인 '조지 오웰'을 선택하며, 그의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엘리너 자크에게 “부드럽게 들리는 영국 이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으며, 서포크의 오웰 강을 좋아했다고도 합니다. 이는 작가로서 실패할 경우와 가족들이 놀라지 않도록 고려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1933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출간]
첫 번째 저서이자 르포 문학의 시작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의 빈곤 경험을 통해 사회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호평받았습니다.
1934
[《버마 시절》 미국 출간]
제국주의에 대한 강렬한 비판 의식을 담은 소설 《버마 시절》이 미국의 하퍼 앤 브라더스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명예훼손 우려로 출판이 지연되었습니다.
[폐렴 악화로 교사직 사임]
교사로 일하던 중 폐렴에 걸려 중태에 빠졌고, 1934년 1월 퇴원 후 영영 교사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런던 중고 서점 근무]
이모의 주선으로 런던의 중고 서점에서 시간제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의 배경이 되었고, 서점에서의 다양한 에세이를 쓰는 계기가 됩니다.
1935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와 만남]
훗날 그의 아내이자 사상적 동반자가 될 아일린 오쇼네시를 만났습니다.
영문학 전공의 인텔리였던 그녀는 오웰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목사의 딸》 출간]
교사 생활과 사우스월드에서의 삶을 담은 소설 《목사의 딸》이 출간되었습니다.
스스로 "어리석은 돈벌이"라 혹평했음에도 그의 다른 책들보다 판매고는 나은 편이었습니다.
[《버마 시절》 영국 출간]
명예훼손 우려로 출판이 지연되었던 《버마 시절》이 영국에서 마침내 출간되었습니다.
그의 오랜 친구 사이릴 코널리가 서평을 기고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1936
[《엽란을 날려라》 출간]
서점 근무 경험과 가난이 개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소설 《엽란을 날려라》를 출간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가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냅니다.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
하숙집 주인의 소개로 만난 아일랜드계 인텔리 여성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했습니다.
아일린은 그의 사상적 동반자이자 스페인 내전까지 함께 할 중요한 파트너가 됩니다.
[서점 근무 종료]
1934년부터 일했던 런던의 중고 서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의 주요 배경이 되었고,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북잉글랜드 사회상 조사]
출판사의 의뢰로 경제 불황에 시달리는 북잉글랜드의 사회상을 조사했습니다.
탄광 막장까지 직접 들어가 노동자들의 참혹한 삶을 목격하고 기록하며, 이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기반이 됩니다.
[스페인 내전 참전]
반파시즘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파시즘에 대항해 싸우러 왔다"고 선언하며, 국제 여단의 독립노동자당 민병대에 소속되어 공화파를 지지했습니다.
1937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출간]
북잉글랜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자신의 사회주의자로서의 인식을 담은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사회주의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며 오웰의 사상적 궤적을 제시합니다.
이 책 2부에서는 "오만하고 따분한" 사회주의 지식인들과 "행동 이데올로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운동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맹목적인 소련 숭배를 경계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악마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사회주의를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존 스티븐슨은 이 책을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고 평했습니다.
[POUM 레닌 부대 배속]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POUM)의 레닌 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계급 차별 없는 독특한 민병대 체계를 경험하며, 혁명적 분위기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바르셀로나 5월 사건 목격]
바르셀로나에서 공화파 내부의 심각한 정파 갈등을 목격했습니다.
노동절 행사가 취소되고, 공산당이 POUM의 전화국을 공격하는 '바르셀로나 5월 사건'이 발생하며 전체주의의 맹아를 경험했습니다.
[전투 중 부상 및 스페인 탈출]
스페인 내전 중 목에 총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
하지만 공산당으로부터 '트로츠키파'로 몰려 아내와 함께 감시당하며 간신히 야간열차로 스페인을 탈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1938
[《카탈로니아 찬가》 출간]
스페인 내전의 경험과 정치적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전쟁의 어리석음과 인민에 대한 애정이 담긴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오웰은 이 책에서 자신이 목격한 공화파 내부의 정파 갈등, 특히 코민테른의 공산당이 보여준 교조적 행동이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폭로했습니다. 출간 당시 출판사의 거절과 저조한 판매고로 철저히 무시당했으나, 훗날 스페인 내전 관련 문학 중 "뚜렷한 예외"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로코 요양 및 집필]
스페인 내전의 후유증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모로코로 요양을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문명화와 발전 속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성찰을 담은 소설 《숨쉬러 올라오기》를 집필했습니다.
1939
[《숨쉬러 올라오기》 출간]
산업화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묵시록적 정서를 담은 소설 《숨쉬러 올라오기》가 출간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는 훗날 《1984년》으로 이어지는 그의 사상적 흐름을 보여줍니다.
1940
[제2차 세계대전 중 국토방위군 활동]
폐 문제로 군 복무는 어렵자,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국토방위군에 가입했습니다.
아일린은 정보성 검열관으로 일하는 등 부부가 함께 전쟁에 기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941
[《사자와 일각수》 출간]
파시즘에 대한 승리를 위해 애국심 고취를 목적으로 한 에세이 《사자와 일각수: 사회주의와 영국의 재능》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전쟁 기간 동안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BBC 대 인도 선전 방송 근무]
1941년부터 BBC에서 대 인도 선전 방송의 원고를 쓰고 라디오 방송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전시 검열과 영국의 제국주의적 태도로 인해 오래 일할 수는 없었습니다.
1943
[《트리뷴》 문학 편집자 부임]
노동당을 지지하는 좌파 잡지 《트리뷴》의 문학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80여 개의 서평과 정기 칼럼 〈나 좋을 대로〉를 집필하며 자유롭게 글을 쓸 기회를 얻었습니다.
1944
[《동물 농장》 탈고]
아내 아일린의 조언을 받아 해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동물 농장》을 1944년 2월에 탈고했습니다.
이 작품은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신랄한 비유와 전체주의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V-1 비행폭탄 피격]
런던의 집이 독일의 V-1 비행폭탄에 피격되어 불탔습니다.
다행히 그는 아내의 친정에 머물고 있어 화를 면했으며, 이 경험은 그의 칼럼에 기록되었습니다.
1945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 사망]
자궁 적출 수술을 받던 중 그의 삶의 동반자이자 사상적 파트너였던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가 사망했습니다.
이 상실은 오웰에게 큰 슬픔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물 농장》 출간 및 반향]
소련과 스탈린을 풍자한 걸작 《동물 농장》이 마침내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반공주의로 오독되었으나, 냉전 시대 미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출판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골란츠는 소련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했습니다. 이 책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의도를 담았지만, 한국에서는 1948년 미군정 공보처에 의해 최초로 번역되어 "반공 동화"로 오독되는 등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1946
[스코틀랜드 주라 섬 이주]
아내의 사망 후 런던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스코틀랜드의 고립된 주라 섬으로 이주했습니다.
이곳에서 자연 속에서 양자 리처드를 키우며 《1984년》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1947
[《1984년》 집필 및 탈고]
주라 섬에서 폐결핵 악화와 싸우며 디스토피아 소설의 정점인 《1984년》을 집필, 1947년 말 탈고했습니다.
병세가 악화될수록 소설은 더욱 어두운 분위기를 띠게 됩니다.
1948
[《1984년》 최종 탈고 및 작명]
《1984년》을 최종 탈고하며, 집필 연도인 1948년의 '48'을 뒤집어 소설 제목을 '1984년'으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미래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충격적인 경고를 담은 그의 마지막 역작이 됩니다.
1949
[《1984년》 출간]
전체주의가 인간의 삶과 언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충격적으로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즉시 고전이 되어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빅 브라더', '사상 경찰', '신어', '이중 사고' 등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냈으며, 냉전 시대 초강대국들의 영향권 재편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담았습니다. 스페인 내전 경험에서 코민테른의 공산주의자들도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깨달았던 오웰의 사상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101호실은 BBC에서 그가 근무하던 방 번호에서 따왔습니다.
['오웰 리스트' 제출]
병상에서 친소주의 작가 명단을 작성하여 영국 정부 정보기관에 제출했습니다.
이 명단은 54년간 비밀에 부쳐졌다가 2003년 공개되었으며,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리스트에 오른 38명 중 일부는 실제 소련 KGB에 포섭된 친소파로 밝혀졌습니다. 일부에서는 "당치 않은 고자질"이라 비판했으나, 명단을 넘겨받은 셀리아 커원은 "오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옹호했습니다.
[소냐 브라우넬과 재혼]
폐결핵 악화로 병상에 있을 때, 소냐 브라우넬과 결혼했습니다.
소냐는 《1984년》의 등장인물 줄리아의 모델이 되기도 했으며, 오웰의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1950
[결핵으로 사망]
오랫동안 앓아온 폐결핵으로 1950년 1월 2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떠난 후에도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며 불멸의 작가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