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시인, 국문학자, 문학평론가, 수필가, 교수, 사회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1:03
한국 문학사에 잊히지 않을 발자취를 남긴 청록파 시인 조지훈. 자연과 민족의식을 담은 아름다운 시로 시대를 위로했으며 문학평론가 국문학자 대학교수 사회운동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지조를 지킨 지성인이자 한국 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평생을 바친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1920
[청록파 시인의 탄생]
격동의 시대를 열어갈 위대한 시인, 조지훈이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조동탁이었지만, 훗날 '조지훈'이라는 필명으로 한국 문학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1939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
독학으로 중학 과정을 마친 젊은 조지훈은, 당시 권위 있는 문학 잡지 《문장》에 시 <고풍의상>과 <승무>를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는 훗날 한국 시단을 풍미할 '청록파'의 서막을 알리는 인상적인 데뷔였습니다.
1946
[청록집, 한국 시의 새 지평]
박목월, 박두진 시인과 함께 한국 현대 시의 기념비적인 시집 『청록집』을 발간했습니다.
자연을 통해 민족의 정서를 노래한 이 시집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며 한국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947
[문화계 리더로 활동 시작]
해방 후 혼란스러웠던 한국 사회 속에서, 조지훈은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으로 참여하며 문화계 재건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 운동가로서도 그의 역할이 빛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고려대학교 교수로 강단에 서다]
조지훈은 고려대학교 국문학 교수로 부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문학 이론과 비평을 통해 한국 문학의 깊이를 더하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지적 영감을 주며 존경받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1956
[자유문학상 수상 영예]
그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단에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이 해에 시집 『조지훈 시선』을 발간하여 그의 대표작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1961
[국제 시인 회의 한국 대표]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 시인 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는 한국 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국제 무대에서 한국 시의 아름다움을 선보인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1962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취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며 한국 고유의 문화 연구와 발전에 주력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감성과 국문학자로서의 학문적 깊이를 바탕으로 민족문화 정립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1967
[한국 시단의 리더가 되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국 시단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한국신시60년기념사업회 회장을 겸임하며 한국 시의 역사와 미래를 조망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1968
[한국 문단의 큰 별이 지다]
고혈압과 기관지확장증의 합병증으로 49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했습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기며 시대를 초월한 깊은 울림을 선사한 시인이었습니다.
1982
[최고의 문화 훈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위대한 문학적 업적과 문화 발전에 대한 공로를 기려,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습니다.
이는 조지훈이 한국 문화사에 남긴 지대한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영예로운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