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

극작가, 비평가, 사회주의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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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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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비평가, 사회주의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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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의 위대한 극작가 비평가이자 사회운동가. 가난한 유년기를 딛고 독학으로 문학과 사회 사상에 천착했습니다. 신랄한 풍자와 기지로 가득 찬 60여 편의 희곡을 집필하며 서양 연극사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19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피그말리온》 《성녀 조앤》 등 대표작으로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깊은 통찰력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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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

[더블린에서 태어나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개신교 집안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정부 인사였던 아버지가 곡물상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모친의 영향으로 음악에 일찍이 흥미를 가졌습니다.

일반적인 학교 교육 성적은 거의 최하위였으나 작문 능력은 뛰어났으며, 문학, 음악, 그래픽 아트 등에 깊은 흥미를 보였습니다. 가난하여 초등학교만 마쳤지만, 사환으로 일하며 음악과 그림을 독학했습니다.

1871

[흥미 없던 첫 직장]

더블린의 토지 중개사무소에 근무하며 십대 후반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일에 대한 흥미가 전혀 없었으며, 이 시기에도 여러 신문 잡지에 원고를 투고하며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1876

[런던으로 이주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모친이 두 누이를 데리고 런던으로 이주하여 음악 교사가 되자, 쇼도 그 뒤를 따라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이후 단기간 에디슨 전화사 근무를 제외하고는 직업을 가진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런던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각 신문에 원고를 썼지만 수입이 적어 부모님의 도움으로 생활했습니다.

1879

[초기 소설 집필과 좌절]

1883년에 걸쳐 총 5편의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중 4편은 친구의 잡지에 게재되며 작가로서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882

[사회주의 사상에 눈뜨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의 연설을 듣고서 사회주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후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사회 사상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884

[페이비언 협회 가입]

온건 좌파 단체인 페이비언 협회가 창설된 직후 회원으로 가입하며 수많은 사회 사상가들과 교류했습니다.

이는 그의 사상과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때 쇼는 카를 마르크스의 딸인 에레아놀 마르크스 등 당대 저명한 사회 사상가들과 교류했습니다.

1885

[비평가로서의 명성]

1898년까지 13년간 신문과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며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국 비평계의 최고 수준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새터데이 레뷔'에서의 연극 비평은 오늘날까지도 모범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입센을 옹호하고 셰익스피어를 비판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며 다대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주요 평론으로는 <입세니즘의 진수>(1891), <예술의 정기>(1895), <완전한 바그너파>(1898) 등이 있습니다.

1892

[첫 희곡 상연]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극작에 전념하기 시작하며 첫 희곡 <홀아비의 집>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런던 로열티 극장에서 상연되며 그가 극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893

[논란의 희곡 발표]

입센 스타일의 신여성을 다룬 <사랑을 섭렵하는 사람>과 근대 매춘 기업을 폭로한 <워렌 부인의 직업>을 집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보수적인 극장 측의 상연 거부로 대중에게 바로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1894

[극작가 지위 확고]

희곡 <무기와 사람>이 성공적으로 상연되면서 극작가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풍자와 기지로 가득 찬 그의 신랄한 희극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졌습니다.

1898

[샬롯 타운센드와 결혼]

평생의 반려자인 샬롯 페인 타운센드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쇼의 작품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며 그의 안정적인 삶과 창작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1903

[《인간과 초인》 발표]

희곡 《인간과 초인》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유행작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 작품은 복잡한 인간 심리와 사회적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13

[불후의 명작 《피그말리온》]

그의 가장 유명한 희곡 중 하나인 《피그말리온》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언어와 계급 문제를 다루며 대중적 성공과 비평적 찬사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23

[《성녀 조앤》 발표]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후기 대표작 《성녀 조앤》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알레고리를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깊이 탐구하며 그의 극작 역량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1925

[노벨 문학상 수상]

뛰어난 극작 활동과 사회 비평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의 문학적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0

[세상을 떠나다]

잉글랜드 하트퍼드셔 아욧 세인트로렌스에서 9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평생 60편 이상의 희곡을 집필하며 서양 연극, 문화, 정치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사망 이후까지도 그의 작품과 사상으로 후대 작가와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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