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가, 대하소설 작가, 대학교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0:30
- 소설가 조정래는 대한민국 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장입니다. - 그의 대표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민중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 특히 《태백산맥》은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이라는 11년간의 긴 법정 싸움 속에서도 굳건히 문학적 가치를 지켜냈습니다. - 그의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역사의 거울이자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남아있습니다. - 현재는 모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1943
[조정래 탄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조정래가 전라남도 승주군 선암사에서 4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승려이자 시조 시인이었던 조종현으로, 한용운과 함께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의 재무위원을 맡았다고 합니다.
당시 일제의 불교 황국화 정책에 따라 승려들의 결혼이 장려되던 시기였습니다.
1949
1950
[6.25 전쟁과 세상의 모순]
논산으로 이사한 다음 해, 6.25 전쟁이 발발하고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이 피난지에서 처음으로 지주 소작제의 모순을 깨닫게 되며, 이는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53
1959
1961
[5.16 쿠데타 발생]
보성고등학교 재학 중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농촌 사회활동에 뜻을 두어 이과반에 있던 조정래는 3학년 때 국문과 진학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962
[동국대 국문과 입학]
문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전공과목과 함께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준비했습니다.
1966
1967
1970
[‘누명’으로 문단 데뷔]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던 조정래는 《현대문학》 6월호에 단편 '누명'이 첫회 추천되며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선생님 기행'이 추천 완료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1971
[왕성한 작품 활동 시작]
등단 이후 《현대문학》에 중편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신동아》에 단편 '빙판', 그리고 연좌제를 비판한 단편 '어떤 전설'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2
[독재 비판으로 교직 사임]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유신헌법이 만들어지고 민주주의가 억압받던 시기,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 활동으로 보수적인 학교 교장과 마찰을 겪다가 결국 교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는 그의 문학적 소신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1973
1974
1975
[소설문예 발행인]
포켓용 문예 월간지 《소설문예》를 인수하여 10월호부터 발행인이 되어 1977년 10월까지 발행을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 집필진 중에는 친일 연구로 유명한 임종국도 있었습니다.
1976
[장편 ‘대장경’ 등 발표]
'허깨비춤', '방황하는 얼굴', '검은 뿌리', '비틀거리는 혼' 등의 단편과 민족문학대계의 일환으로 장편 '대장경'을 완성했습니다.
1977
1980
[광주 방문과 소설 원칙 전환]
5월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광주를 직접 방문하여 계엄군의 참혹한 진압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는 기존 창작 원칙을 깨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하게 됩니다.
1981
1982
1983
[‘태백산맥’ 연재 시작]
광주의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구상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1984
1985
[《한국문학》 주간과 칩거]
《한국문학》 주간을 맡았으며, 《태백산맥》의 방대한 내용을 집필하기 위해 안양 성 나자로 마을에 매달 10일씩 칩거하며 작품에 몰두했습니다.
1988
[《태백산맥》 수상 및 협박]
《태백산맥》으로 성옥문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3부가 출간된 하반기부터 새벽마다 걸려오는 공갈협박 전화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1997년까지 10여 년간 이어졌습니다.).
1989
[《태백산맥》 동국문학상 수상]
《태백산맥》으로 동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4부를 집필하던 중 모든 수사관이 내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출판사 사무실로 경찰이 찾아오는 등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태백산맥》 단행본 완성]
우여곡절 끝에 1989년 10월 《태백산맥》이 단행본으로 완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누적 판매부수 330만 부를 돌파하며 대한민국 문학계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990
[《아리랑》 연재 시작]
《태백산맥》 집필 당시부터 구상했던 다음 작품 《아리랑》의 취재를 위해 문화부에 만주행을 신청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이던 안기부에 의해 거절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의 보증으로 중국으로 갈 수 있었고, 12월부터 《한국일보》에 《아리랑》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1991
1992
[《태백산맥》 대검찰청 발표]
대검찰청이 "소설 《태백산맥》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이미 350만 부 이상 팔린 책을 법으로 문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애매모호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반인이 교양으로 읽는 것은 괜찮지만, 대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이적 표현물 탐독죄로 의법 조처한다"는 단서를 달아 논란을 증폭시켰습니다.
1994
[영화 《태백산맥》 개봉]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이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했습니다.
이는 소설의 사회적 파급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였습니다.
[《태백산맥》 국가보안법 고발]
8개의 반공단체로부터 500여 개에 달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습니다.
이는 당시 사법사상 가장 긴 고발장이었습니다.
나아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로부터 명예훼손 고발까지 당하며 법적 공방에 휩싸였습니다.
[경찰 수사 거부]
8개 반공단체의 고발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조정래는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태도에 반발하여 경찰 수사를 거부하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1996
1997
1998
[《태백산맥》 검찰 수사 재개]
경찰 수사를 거부한 끝에 검찰로 넘어간 《태백산맥》의 이적 혐의에 대한 수사 날짜가 통보되었습니다.
검찰은 당초 반공단체가 제시했던 500여 개의 혐의 중 120여 개를 간추려 객관적 자료를 요구했으며, 이를 제출하지 못할 시 유죄 혐의가 될 수 있음을 알렸습니다.
[《한강》 집필 시작과 중단]
대하소설 《한강》의 집필을 시작했지만, 《태백산맥》에 대한 검찰의 객관적 자료 요구로 인해 집필을 중단하고 자료 준비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17권의 자료를 찾아 제출하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1
2002
2003
2005
[《태백산맥》 무혐의 처분]
11년에 걸친 긴 법정 공방 끝에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작품의 문학적 가치가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2006
2007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