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키노 로시니
작곡가, 오페라, 클래식 음악, 이탈리아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0:23
조아키노 로시니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천재 작곡가입니다. * 놀라운 속도와 다작으로 수많은 명작 오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 단 13일 만에 대표작 세비야의 이발사를 완성하며 작곡 천재성을 입증했습니다. *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오페라 작곡을 돌연 중단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 오페라 은퇴 후에도 스타바트 마테르 등 걸작 종교 음악을 남겼습니다. * 벨칸토 낭만주의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음악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1792
[천재 작곡가의 탄생]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음악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조아키노 로시니.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음악 활동을 했던 만큼,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훗날 세계를 사로잡을 그의 음악 여정은 이날 시작되었습니다.
1806
[첫 오페라 '테메트리오']
겨우 14세의 나이에 첫 오페라 《테메트리오와 폴리비오》를 작곡하며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오페라를 구상하고 완성했다는 사실은 그의 남다른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1810
['결혼 보증서'로 스타덤]
단막 오페라 부파 《결혼 보증서》를 베니스에서 초연하며 단숨에 유명 오페라 작곡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그는 앞으로 20년 동안 수많은 오페라를 쏟아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1812
[놀라운 다작의 한 해]
이 한 해에만 《행복한 착각》, 《바빌로니아의 키로스》, 《비단 사다리》, 《시금석》, 《도둑의 찬스》 등 무려 5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그의 폭발적인 창작력과 엄청난 생산성을 보여주는 해로, 앞으로 그가 얼마나 많은 걸작을 쏟아낼지 기대하게 만듭니다.
1813
[유럽을 사로잡은 명성]
오페라 《탄크레디》와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등을 작곡하며 로시니의 명성이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유럽의 주요 오페라 극장들에 울려 퍼지며 전성기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1816
['세비야의 이발사' 초고속 완성]
24세의 나이에 자신의 대표작이자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 오페라 중 하나인 《세비야의 이발사》를 단 13일 만에 작곡했습니다.
이 경이로운 속도는 그의 천재성과 뛰어난 작곡 능력을 증명하는 기록적인 사건이며,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명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1817
['신데렐라' 등 명작 연타]
동화 '신데렐라'를 오페라로 각색한 《라 체네렌톨라》와 비극적 줄거리의 《도둑까치》를 발표하며 흥행세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도둑까치'는 극적인 음악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다채로운 작곡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1818
[대작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
성경의 출애굽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대형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를 선보였습니다.
종교적 비극의 깊이와 장엄한 스케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그의 폭넓은 예술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819
['호수의 여인' 성공]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오페라 《호수의 여인》을 발표했습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극적인 전개로 오페라 세리아에서도 성공적인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1823
[마지막 세리아 '세미라미데']
고대 바빌론 여왕의 비극을 다룬 웅장한 오페라 세리아 《세미라미데》를 작곡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주는 마지막 작품이 됩니다.
1829
['빌헬름 텔'과 오페라 은퇴]
스위스 독립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대작 오페라 《빌헬름 텔》을 발표한 후, 불과 37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오페라 작곡을 중단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오페라가 되었으며,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끝으로 홀연히 무대 뒤로 사라져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페라 작곡 중단 이유에 대해 '먹는 즐거움이 더 커서'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작품을 소화할 벨칸토 창법의 성악가가 없었기 때문이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벨칸토 창법이 다음 세대에 멀어지면서 로시니의 음악을 완벽히 구현하기 어려워졌던 것입니다.
1832
['스타바트 마테르' 작곡 시작]
오페라 은퇴 후에도 종교음악에 매진하여 성가곡 《스타바트 마테르》를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의 거부 돈 바렐라의 막대한 의뢰를 받아 만들었으며, 처음에는 동료 작곡가 조반니 타돌리니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1841
['스타바트 마테르' 재작곡]
악보 출판을 앞두고 타돌리니가 작곡했던 《스타바트 마테르》의 일부를 로시니 자신이 직접 다시 작곡하여 발표했습니다.
자신의 역량을 완벽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거장의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842
['스타바트 마테르' 대성공]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성가곡 《스타바트 마테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그 해에만 30여 개 도시에서 연주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오페라 은퇴 후에도 그의 음악적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857
['만년의 과오' 발표 시작]
오페라 은퇴 후에도 로시니는 '만년의 과오(Péchés de vieillesse)'라는 이름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섬세한 피아노곡, 성악곡 등 다양한 장르의 소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이는 그의 음악적 재치와 왕성한 창작열이 노년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들은 '이탈리아 앨범', '프랑스 앨범', '어린이들을 위한 앨범' 등 다양한 제목으로 묶여 출판되었으며, 그의 사교계 활동과 어우러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864
['작은 장엄 미사' 초판]
만년에 작곡한 중요한 종교음악인 《Petite Messe Solennelle》의 초판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노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1867
['작은 장엄 미사' 최종 완성]
《Petite Messe Solennelle》의 두 번째이자 최종 버전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삶과 음악적 여정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성가곡 중 하나로 남았으며, 종종 그의 '음악적 유언'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1868
[거장의 마지막 숨결]
프랑스 파리에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페라 무대를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음악계에 큰 슬픔을 안겼으며, 그가 남긴 수많은 걸작들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연주되고 사랑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