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보카치오
소설가, 시인, 인문주의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0:09
-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꽃피운 소설가이자 시인. - 단테 페트라르카와 더불어 이탈리아 문학의 3대 거장. - 상업과 법학을 거부하고 문학에 전념한 열정적인 인문주의자. - 대표작 <데카메론>은 흑사병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 본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르네상스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 페트라르카와의 깊은 우정은 그의 사상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313
[위대한 소설가의 탄생]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조반니 보카치오가 피렌체 상인의 사생아로 체르탈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훗날 유럽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327
[나폴리에서의 방황]
14세 무렵, 아버지를 따라 나폴리로 가서 장사를 배우게 되지만, 보카치오는 이 6년을 "시간 낭비"라고 회고할 정도로 상업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그가 문학에 눈을 뜨고 고전 문학을 독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33
[문학 열정의 시작]
법학을 공부하라던 아버지의 뜻과 달리, 보카치오는 나폴리의 인문학자들과 교류하며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열렬한 연애 경험은 그의 청년기 문학 창조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1336
[첫 작품 '필로콜로' 출간]
나폴리 시대의 첫 작품이자 로마 전설을 바탕으로 한 산문 모험 이야기 <필로콜로>를 발표했습니다.
프로리오와 비안코피오레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그의 문학적 재능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338
[비련을 그린 '필로스트라토']
트로이 왕자와 그리스 처녀 그리세이다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연애시 <필로스트라토>를 출간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 서정시 경향을 보여줍니다.
1340
[피렌체 공직 진출]
아버지의 파산과 죽음 이후, 피렌체 시 정부의 일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학식과 재능, 능변 덕분에 교황이나 여러 영주에게 사절로 파견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1342
[요정과 환영의 노래]
요정에 대한 목동의 순정을 노래한 <난팔레 다메토>와 학문, 영광, 사랑 등을 비유와 교훈으로 담은 장시 <아모로사 비시오네>를 발표하며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1343
[심리 해부 명작 '피암메타']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인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산문 <피암메타>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깊은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명작으로 평가받습니다.
1344
[비련의 목가 '닌팔레 피에소라노']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젊은 목동과 요정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비극적인 목가 <닌팔레 피에소라노>를 출간했습니다.
1348
[인류 최대의 걸작 '데카메론' 완성]
1348년부터 1353년까지 약 5년에 걸쳐 인류 최대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데카메론>을 완성했습니다.
흑사병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지혜와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르네상스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350
[페트라르카와의 운명적 만남]
평생의 정신적 동반자이자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거장의 깊은 우정은 서로의 문학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죽을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1362
[페트라르카의 따뜻한 조언]
점쟁이의 죽음 예언에 절망하여 고전 연구를 그만두려 했으나, 친구 페트라르카의 간곡한 설득으로 다시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1374
[스승의 죽음, 깊은 충격]
오랜 친구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전년도 피렌체 정부의 요청으로 시작했던 단테 <신곡> 강의마저 중단하게 됩니다.
1375
[위대한 작가의 별세]
노년의 빈곤과 질병 속에서 고전 연구에 몰두하던 조반니 보카치오가 1375년 12월 21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단테, 페트라르카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을 이끈 거장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