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데 키리코
화가, 작가, 예술가, 형이상학파, 초현실주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0:00
조르조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 출신의 독보적인 화가이자 작가입니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형이상학파는 텅 빈 광장 미스터리한 아케이드 그리고 꿈꾸는 듯한 사물들로 가득한 비현실적 공간을 창조하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초현실주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자신만의 길을 고수하며 예술계에 깊은 흔적을 남긴 그는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1888
[키리코, 그리스에서 태어나다]
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당시 철도 기술자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그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동생 알베르토 사비노는 훗날 유명한 작곡가가 됩니다.
1906
[뮌헨 예술원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우다]
아버지의 임종 이후, 예술적 열정을 좇아 독일 뮌헨 예술원에 입학하여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에바리스토 디 키리코의 임종은 1905년에 있었으며, 이후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뮌헨 예술원에서 수학했습니다.
1911
[파리에서 형이상학파의 씨앗을 뿌리다]
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건너가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화풍을 구축하며 '형이상학파'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앙데팡당 전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파블로 피카소, 앙드레 드랭, 콘스탄틴 브랑쿠시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1915
[고향으로 돌아와 예술에 몰두]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 페라라로 이주하며 작품 세계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도시의 타워, 아케이드 등 세 가지 주요 모티프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또한, 1915년경부터 1925년경까지 얼굴 없는 인형들이 놓인 정물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1918
[모란디와 형이상학 회화 심화]
동료 화가 조르조 모란디와 함께 '형이상학적 회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이들의 심층적인 탐구는 키리코 예술의 핵심적인 특성인 비현실적이고 꿈꾸는 듯한 공간의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조르조 모란디와 형이상학적 회화를 연구했습니다.
1920
[형이상학파 잡지 《피투라 메타피지카》 창간!]
카를로 카라와 함께 형이상학적 회화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피투라 메타피지카(Pittura Metafisica)》를 창간했습니다.
이는 그의 예술 사조가 널리 알려지고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24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주다]
다시 파리를 방문하여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지만, 자신의 예술관과 맞지 않음을 느끼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1939
[이탈리아 귀국 및 예술 활동 지속]
이탈리아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국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여전히 꿈꾸는 듯한 생경한 사물들을 비현실적인 구도로 배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지켜냈습니다.
1978
[조르조 데 키리코, 영면하다]
80년대에 가까운 긴 생을 마감하며, 현대 미술사에 형이상학파라는 독자적인 장르와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