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화가, 미술가, 토널리즘 창시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59:50
미국의 화가이자 토널리즘의 주요 창시자 중 한 명입니다. 파리에서 드가 마네 등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살롱의 보수성에 반발 낙선 화가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며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런던에 정착 후 〈화가의 모상〉 〈야경〉 연작 등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비평가 러스킨과의 소송에서 승리하며 예술적 신념을 굳건히 지킨 인물입니다. 대상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채의 조화를 중시한 화풍으로 대중적 흥미를 유발했습니다.
1834
[휘슬러의 탄생]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웰에서 태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훗날 토널리즘의 주요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될 그의 여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55
[파리 예술계 데뷔]
프랑스 파리에 나타나 샤를 글레르의 문하생으로 활동하며 에드가 드가, 마네 등 당대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새로운 미술 이론을 경청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토대를 닦았습니다.
1863
[〈흰옷 입은 소녀〉 낙선]
파리 살롱에 〈흰옷 입은 소녀〉를 출품했으나 낙선하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유명한 낙선 화가 전람회에 이 작품을 선보이며 기성 예술계에 도전장을 던졌고, 이는 그의 반항적인 예술가 기질을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1872
[〈화가의 모상〉 발표]
파리에 대한 혐오로 런던에 정착한 후,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의 모상(母像)〉을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강조한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채의 조화를 극대화하며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74
[〈알렉산더 양〉 초상화]
〈화가의 모상〉과 함께 훌륭한 초상화로 평가받는 〈알렉산더 양(孃)〉을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 또한 인물의 개성과 배경의 조화를 통해 휘슬러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잘 나타냅니다.
1877
[〈야경〉 연작과 러스킨]
빛의 효과를 탐구한 〈야경〉 연작을 발표했으나, 당대 유명 비평가 러스킨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휘슬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하여 승리하며 예술적 자유와 개인의 표현을 옹호하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이는 예술과 비평의 관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습니다.
1903
[제임스 휘슬러 사망]
영국 런던에서 6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예술의 자유와 형식미를 추구하며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