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육대회
스포츠 대회, 종합 경기, 국내 대회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52:29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종합 스포츠 축제인 전국체육대회는 1920년 전조선야구대회로 시작하여 매년 10월 전국 각지 및 해외동포 선수들이 참여해 열띤 경쟁을 펼칩니다. 한국 스포츠의 역사와 발전을 상징하며 지역 화합과 체육 정신을 고취하는 데 기여해왔습니다.
- 조선체육회 창설
-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 전조선종합경기대회 개최
- 전국대회 강제 중단
- 해방 후 첫 종합경기대회
- 한국전쟁으로 대회 중단
- 전쟁 중 광주 개최
- 재일동포 선수단 첫 출전
- 성화봉송 최초 실시
- 첫 지방순회 개최
- 이북5도 참여 및 성화 전국일주
- 소년체전 독립 개최
- 최초의 분산 개최
- 아시안게임 예행연습 겸함
- 올림픽 준비로 대회 방식 변경
- 첫 지방 중소도시 개최
- 첫 마스코트 '달곰이' 등장
- 최초 야간 개회식
- 제주도 첫 개최
- 첫 도핑 테스트 및 후원사 도입
- 경기장 밖 첫 개폐막식
- 제100회 대회 서울 개최
- 코로나19로 대회 취소
- 고등부만 진행된 특별 대회
1920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조선체육회 창설 후 첫 공식 행사로 배재고보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려, 오늘날 전국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습니다.
1921
[개별 종목 대회 진행]
제2회 대회부터 야구, 정구, 축구 등 개별 종목 대회가 각각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1923년까지 3개 종목이 개별 진행되었고, 1924년에는 육상이 추가되어 4개 종목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 시기 전국체육대회는 단일 종합 경기보다는 여러 종목이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형태를 보였습니다.
1921년(2회)부터 1923년(4회)까지 야구, 정구, 축구 3개 종목이 개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924년(5회)에는 육상이 추가되어 4개 종목으로 확대되었고, 이후 1933년(14회)까지 종목별로 대회가 열렸습니다.
1934
[전조선종합경기대회 개최]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경성운동장에서 '전조선종합경기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인 주도의 대회가 아닌, 진정한 한민족의 종합 체육대회로 평가받으며 1937년 제18회 대회까지 이어졌습니다.
1938
[전국대회 강제 중단]
조선체육회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고 민족체육이 억압당하면서, 제1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전국 체육대회의 명맥이 끊기게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45
[해방 후 첫 종합경기대회]
광복과 함께 부활한 조선체육회가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제26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는 해방 후 첫 종합 경기로, 남북한 선수 모두가 참가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47
[전국체육대회로 개칭]
해방 후 '조선종합경기대회'로 불리던 명칭이 정식으로 '전국체육대회'로 변경되어 오늘날의 대회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1949
[체육대회가 첫 제정]
윤석중 작사, 김순애 작곡으로 '체육대회가'가 제정되어 제30회 대회부터 개회식에서 합창하며 대회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후에 김희조 씨가 편곡했습니다.
1950
[한국전쟁으로 대회 중단]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제31회 대회가 아쉽게 중지되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스포츠 정신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1951
[전쟁 중 광주 개최]
한국전쟁의 어려움 속에서도 체육인들의 강한 의지로 제32회 대회가 광주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1953
[재일동포 선수단 첫 출전]
제34회 대회에 재일동포 선수단이 축구 종목으로 처음 출전하여 해외 동포들의 참여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5
[성화봉송 최초 실시]
제36회 대회에서 오늘날 전국체전의 상징인 성화봉송이 처음으로 실시되었습니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 옹이 최종 주자로 참여하여 대회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1957
[첫 지방순회 개최]
제38회 대회가 부산에서 개최되며 전국체육대회의 지방순회 효시가 되었습니다.
이는 대회 개최지 확대를 통해 전국적인 스포츠 축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9
[이북5도 참여 및 성화 전국일주]
제50회 대회에 이북5도 선수단이 승인되어 참가하고, 성화가 전국 일주 봉송을 시작하며 대회의 규모와 의미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1972
[소년체전 독립 개최]
제53회 서울대회에서 초등학교부와 중학교부가 분리되어 '전국소년체육대회'가 별도로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어린 선수들의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고 미래 체육 인재를 육성하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1977
[해외동포 선수단 참여 확대]
제58회 광주 대회에 재독일과 재캐나다 선수단이 추가로 참가하며 해외동포들의 전국체전 참여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1979
[최우수선수상 등 도입]
제60회 충남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과 메달 가산채점제가 도입되어 선수들의 동기 부여와 대회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재쿠웨이트, 재홍콩 교민들도 참가했습니다.
1980
[최초의 분산 개최]
제61회 전북 대회에서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경기 일부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분산 개최 방식이 최초로 도입되었습니다.
1983
[경기운영 전산화 시작]
제64회 인천 대회에서 경기 운영 전산화가 시작되어 더욱 빠르고 정확한 기록 관리와 정보 제공이 가능해졌습니다.
1986
[아시안게임 예행연습 겸함]
제67회 전국체전은 1986 서울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예행연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1988
[올림픽 준비로 대회 방식 변경]
제69회 대회는 1988 서울 올림픽 준비로 인해 종목별 전국 규모 대회와 겸하여 개최되는 등 대회 방식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89
[세계한민족체전 동시 개회]
제70회 경기 대회에서 '세계한민족체육대회'와 동시 개회식이 거행되어 국내외 한민족의 화합과 스포츠 교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1995
[첫 지방 중소도시 개최]
제76회 전국체육대회가 경상북도에서 열려 지방 중소도시에서 최초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지방자치제의 의미를 살리고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6
[첫 마스코트 '달곰이' 등장]
제77회 강원 대회에서 전국체전 사상 처음으로 대회 마스코트 '달곰이'가 선을 보였습니다.
마스코트의 등장은 대회 홍보와 친근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7
[최초 야간 개회식]
제78회 경남 대회에서 전국체육대회 역사상 최초로 야간 개회식이 실시되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울산광역시가 16번째 시도 지부로 참가했습니다.
1998
[제주도 첫 개최]
제79회 제주 대회는 섬 지역에서 최초로 개최된 전국체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서울 올림픽 10주년을 기념하고 2만여 명의 국내외 동포 선수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2003
[첫 도핑 테스트 및 후원사 도입]
제84회 전북 대회에서 체전 사상 최초로 도핑 테스트가 실시되고 후원사 제도가 도입되어 대회의 공정성과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
[울산광역시 첫 개최]
제86회 전국체전이 울산광역시 승격 이후 처음으로 울산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울산 시민들의 스포츠 축제 참여를 독려하고 지역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2009
[신종플루 위생 강화]
제90회 대전 대회는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의 여파로 참가 선수단과 관중의 안전을 위해 위생 및 보건 향상 조치가 대폭 강화되어 진행되었습니다.
2011
[경기장 밖 첫 개폐막식]
제92회 경기 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경기장이 아닌 일산호수공원에서 개폐막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열린 축제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2019
[제100회 대회 서울 개최]
전국체육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제100회 대회가 서울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스포츠 100년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 있는 축제였습니다.
2020
[코로나19로 대회 취소]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범유행 여파로 제101회 전국체육대회가 1년 연기되었고, 전국동계체육대회 개폐회식도 취소되는 등 초유의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2021
[고등부만 진행된 특별 대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102회 전국체육대회는 고등부 경기만 시행되었으며, 종합 순위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스포츠 정신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