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로렌초 베르니니
조각가, 건축가, 화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4- 05:00:40
- 17세기 로마 바로크 미술의 정점을 이룬 천재 예술가. - 조각 건축 회화 등 다방면에서 혁신적인 작품을 남김. - 교황과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로마를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킴. - 역동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바로크 시대의 미학을 완성. - 세계 최초와 최고의 기록을 세운 불세출의 대가.
1598
[바로크 거장의 탄생]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당대 유명한 매너리즘 조각가 피에트로 베르니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아 훗날 유럽 예술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1605
[로마, 신동을 발견하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예술의 도시 로마로 이주했습니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당시 저명한 예술가와 심지어 교황의 눈에까지 띄어, 막강한 후원자인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됩니다.
1615
[보르게세의 신예]
후원자 보르게세 추기경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정원 장식용 작품과 우화적인 흉상들을 제작하며 빠르게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아기 제우스와 어린 사티로스에게 젖을 먹이는 염소 아말테아'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618
[3세대 이야기, 첫 명작]
인간의 세 가지 세대를 하나의 작품에 담아낸 '아이네이아스, 안키세스, 아스카니우스'를 선보였습니다.
고전적인 영웅 서사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1619
[감정 담은 초기 흉상]
인간의 내면 감정을 깊이 탐구한 '저주받은 영혼'과 '축복받은 영혼'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조각이 단순한 형상을 넘어선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초기 사례입니다.
1620
[신화적 움직임의 시작]
해신 넵투누스와 트리톤을 표현한 대리석 조각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신화 속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고대 조각과는 다른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교황을 사로잡은 청년]
22세의 젊은 나이에 교황 바오로 5세의 흉상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그의 조각 솜씨가 이미 교황의 초상화를 제작할 만큼 당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합니다.
1621
[대리석의 기적, 납치]
신화 속 페르세포네의 납치 장면을 극적으로 조각했습니다.
유괴범의 손가락이 여인의 대리석 피부를 움푹 파고드는 듯한 섬세한 표현은, 차가운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의 '세계 최고' 수준의 장인정신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1622
[신화가 살아 숨 쉬는 조각]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 '아폴론과 다프네'를 제작했습니다.
사랑의 화살을 맞은 아폴론이 다프네를 잡는 순간, 그녀가 월계수 나무로 변하는 과정을 대리석으로 표현하여 '세계 최초'로 변신의 과정을 돌 위에 생생히 구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바로크 조각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1623
[움직이는 다윗, 바로크 혁명]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려는 찰나의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한 '다윗'을 조각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윗이 영웅적인 본성을 표현했다면, 베르니니는 '세계 최초'로 다윗이 영웅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대리석에 담아내 바로크 조각의 혁명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극한의 동작과 감정을 돌로 표현한 위대한 시도였습니다.
1624
[거대 건축 프로젝트 시작]
성 베드로 대성전의 제대를 장식할 웅장한 청동 캐노피인 '성 베드로의 발다키노'와 성 비비아나 성당의 파사드를 설계하며 건축가로서의 재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세계 최대' 규모의 초기 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1627
[스페인 광장의 보물]
로마 스페인 광장에 '바르카치아 분수'를 제작했습니다.
침몰하는 배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은 당시 로마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재기 넘치는 디자인 감각을 보여줍니다.
1629
[성 베드로 대성전의 총괄자]
'성 베드로의 발다키노' 완성을 앞두고 교황 우르바노 8세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 작업의 모든 직무를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그가 로마 교황청의 핵심 예술가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합니다.
1630
[궁전 건축의 명가]
당대 로마 최고의 건축가 보로미니와 함께 바르베리니 궁전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경쟁과 협력 속에서 로마의 궁전 건축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632
[후원자의 영원한 모습]
자신의 전폭적인 후원자였던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대화하는 듯 생생한 표정과 옷 주름의 표현은 대리석에 활력을 불어넣는 그의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줍니다.
1635
[사랑하는 여인의 초상]
자신의 연인으로 알려진 코스탄차 부오나렐리의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신성하고 엄숙한 분위기 대신, 사생활 속 편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어 '세계 최초'로 대리석 흉상에 일상적인 감정을 포착한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1640
[프랑스 권력자의 얼굴]
프랑스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인 리슐리외 추기경의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명성이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 왕실에까지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1643
[화려한 기념비 완성]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 마리아 라지 기념비를 완성했습니다.
도금 청동과 채색 대리석을 활용한 화려한 디자인은 바로크 시대 장식 예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1644
[후원자의 죽음, 위기]
그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우르바노 8세 교황이 서거하면서, 한때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경쟁자들의 견제 속에서도 그의 예술적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1645
[진리를 향한 탐구]
대리석 조각 '진상'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진리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려는 그의 예술적, 철학적 탐구를 담고 있습니다.
1647
[황홀경의 재현]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의 코르나로 예배당에 '성녀 데레사의 환희'를 제작했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신비로운 환상 속에서 황홀경을 경험하는 순간을 대리석으로 표현, '세계 최초'로 종교적 체험의 극적인 감정을 시각화하여 바로크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습니다.
1648
[네 강 분수의 드라마]
로마 나보나 광장에 '콰트로 피우미 분수(네 강의 분수)'를 완성했습니다.
세계 4대강을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들과 분수의 조화는 바로크 시대 공공 예술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며, 라이벌 보로미니를 견제하는 듯한 익살스러운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1650
[성서와 왕실의 만남]
'다니엘과 사자' 등 성서 내용을 담은 작품과 에스테 공작 프란체스코 1세의 흉상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종교와 세속을 넘나드는 그의 폭넓은 예술 세계를 보여줍니다.
1653
[모로 분수의 활력]
나보나 광장에 '모로 분수'를 제작하여 로마 시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해마와 트리톤 조각이 어우러진 이 분수는 광장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1655
[교황청의 재신임]
인노첸시오 10세 교황 서거 후, 알렉산데르 7세 교황의 등극과 함께 다시 교황청의 '최고 예술가'로 복귀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의 열주랑과 광장 설계라는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를 맡으며 로마 재건축의 핵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1657
[성 베드로 대성전의 완성]
성 베드로 대성전 내부에 '성 베드로의 옥좌'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상'을 제작하며 대성전 내부를 더욱 웅장하게 장식했습니다.
또한 대성전 앞 광장의 열주랑을 설계하며 로마의 상징적인 경관을 완성했습니다.
1661
[수도자의 깊은 명상]
시에나 성당의 키지 예배당에 '성 히에로니무스' 조각상을 완성했습니다.
깊은 고뇌에 잠긴 수도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종교적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1665
[루이 14세의 위엄]
프랑스 방문 중 루이 14세의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다음 한 세기 동안 왕실 인물 묘사의 '표준'을 정립할 만큼 압도적인 위엄과 생동감을 표현하여, 그의 초상 조각 실력이 '세계 최고'였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파리를 뒤흔든 거장]
명성과 권력의 정점에서 프랑스 루이 14세의 초청으로 파리를 방문했습니다.
거리를 걷는 그의 모습에 수많은 군중이 환호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루브르궁 디자인을 제안했으나 아쉽게도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1667
[웃는 코끼리의 비밀]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앞에 '미네르바의 코끼리' 조각상을 설계했습니다.
코끼리의 익살스러운 미소와 특이한 자세는 당시 비판적인 수도사를 향한 베르니니의 유쾌한 '풍자'가 담겨 있어, 로마 시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의뢰로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지탱할 조각으로 코끼리를 선택했으며, 실제 조각은 제자인 에르콜레 페라타가 완성했습니다. 코끼리의 엉덩이가 라이벌 수도사의 집무실을 향하도록 한 '세계 최초'의 예술적 조롱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1671
[영원한 안식처 설계]
자신을 다시 중용한 알렉산데르 7세 교황을 위한 무덤을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리석과 도금 청동을 활용한 이 웅장한 무덤은 바로크 시대 장례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종교적 엑스터시의 정점]
'축복받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 조각상을 완성하며 종교적 황홀경을 표현하는 그의 탁월한 재능을 다시 한번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영적인 체험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바로크 예술의 걸작입니다.
1680
[바로크 거장의 영면]
로마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습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안장된 그는 수많은 걸작과 혁신적인 예술 정신을 남기며, 17세기 유럽 예술을 통틀어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1682
[사후에도 이어진 명성]
사망 2년 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의 전기를 집필하도록 의뢰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후에도 여전히 '세계적인' 예술가로서 높은 평가와 명성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