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
국악인, 판소리 명창,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50:49
판소리 명창이자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로 활동한 국악인. 특히 서편제에 능했으며 쑥대머리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겨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국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사후 임방울국악제 개최 임방울대로 명명 등을 통해 그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1904
[판소리 명창의 탄생]
대한제국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송정리(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1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임승근, 아명은 임종규이며 호는 송정입니다.
어려서부터 가세가 빈곤했지만, 판소리 수련에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소리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본관은 나주 임씨이며, 잠시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면에서 유아기를 보낸 뒤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성장했습니다. 이재현에게 판소리 《춘향가》, 《흥보가》를 배우고, 공창식과 유성준 문하에서 다시 실력을 닦았습니다. 유성준에게는 《수궁가》, 《적벽가》를 사사했습니다.
1917
[예술혼의 시작]
판소리 명창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전남 거상 남국일의 경제적 후원을 받으며 판소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1928
[서울 무대 데뷔]
서울로 상경하여 외숙부 김창환의 소개로 무대에 처음 올랐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뛰어난 목구성으로 단번에 대중의 큰 인기를 얻으며 서편제 명창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서편제 중에서도 '단계면조'라는 창법에 능했습니다.
1930
[최초 100만장 판매 기록]
일제강점기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고, 컬럼비아와 빅타 레코드 전속 가수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취입한 '쑥대머리'와 '호남가' 음반은 당시 무려 100만 장 이상 팔리며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쑥대머리'는 그녀의 대표곡으로 크게 사랑받았습니다.
《춘향가》, 《심청가》 등의 전집을 제작했으며, 현재 빅터레코드판 《춘향가》 전집과 오케이판 《흥부가》 전집이 남아있습니다. 판소리 편곡뿐만 아니라 '호남가', '사별가' 등 직접 작곡한 곡들도 남겼습니다.
1946
[정치 활동 시작]
광복 후 1946년부터 이듬해 1947년까지 한국독립당 당무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60
[국악상 수상과 마지막 무대]
그해 국악상을 수상하며 국악계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김제에서 공연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1961
[국악계의 큰 별이 지다]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장례는 한국 국악 역사상 최초로 국악예술인장으로 치러져, 그녀의 업적과 명성을 기렸습니다.
1997
[임방울국악제 시작]
국창 임방울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광주광역시 일원에서 '임방울국악제'가 처음 개최되었습니다.
이 축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국악 신인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