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작가)
작가, 시인, 소설가, 건축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4- 04:17:17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아방가르드 작가. 건축가 출신으로 시 소설 수필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문법 파괴와 의식의 흐름 기법 등 파격적인 실험 문학으로 한국 문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폐결핵으로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생애와 작품 모두 강렬한 논쟁과 깊이 있는 해석을 불러일으킨 현대문학의 아이콘이다.
1910
[천재 작가 이상 출생]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서 부친 김연창과 모친 박세창의 장남 김해경(이상)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김해경이며, 본관은 강릉 김씨이다.
1913
[백부에게 입양되다]
본처 사이에 소생이 없던 백부 김연필에게 입양되어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백모의 홀대 속에 엄격한 백부에게서 영특한 재능만 기대받으며 외로운 유년기를 보낸다.
백부는 이후 새 아내를 맞이하고, 그 아내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문경이 있었다. 백모는 이상을 문경과 차별하며 홀대했고, 백부 또한 이상을 가문을 일으킬 인재로만 생각하여 엄격하게 대했다.
1917
1925
[미술전람회 입선]
보성고보 재학 중 미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며 화가 지망생이 된다.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이 입선하며 미술 분야에서의 재능을 인정받는다.
1926
[경성고등공업학교 진학]
보성고보를 졸업한 후, 같은 해 경성 동숭동의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에 입학하며 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29
[표지 도안 1등, 3등 동시 석권]
조선건축회 정회원으로 가입한 후, 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서 세계 최초급으로 1등과 3등을 동시에 거머쥐며 디자인 재능을 뽐낸다.
[건축과 수석 졸업, '이상' 탄생]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기염을 토한다.
졸업기념 사진첩에 본명 김해경 대신 친구 구본웅에게 선물 받은 화구상자에서 유래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했다.
보성고보 졸업식에 참여한 친부모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자신을 홀대한 백부모와 그러한 환경에 내버려 둔 친부모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 때문으로 여겨진다.
[조선총독부 취직]
경성고등공업학교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받고, 같은 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자리를 옮긴다.
1930
[장편소설 '12월 12일' 연재]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하는 잡지 《조선》에 필명 이상으로 데뷔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12월 12일》을 9회에 걸쳐 연재하기 시작한다.
일부 주장에서는 '12월 12일'이라는 제목이 한글 발음으로 했을 때 욕설이 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상이 일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1931
[일본어 시 발표 시작]
학회지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실험적인 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하며 문학적 실험을 시작한다.
[폐결핵 감염 진단]
폐결핵 감염 사실을 진단받고, 점차 병세가 악화되어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이는 그의 짧은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 <자상>이 입선하며 다시 한번 미술 분야에서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는다.
1932
[단편소설 다수 발표]
잡지 《조선》에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비구(比久) 필명으로, 〈휴업과 사정〉을 보산(甫山) 필명으로 잇달아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간다.
1933
[기수직 사임, 요양 시작]
악화된 폐결핵과 새로 부임한 일본인 상사와의 마찰로 조선총독부 기수직에서 물러나,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요양하며 건강 회복에 힘쓴다.
[다방 '제비' 개업 및 금홍과 만남]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만난 기생 금홍과 서울로 올라와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고 동거를 시작하며, 그의 파란만장한 연애사가 시작된다.
[구인회 교류, 문학적 재기]
문학단체 구인회 동인인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를 시작하고, 정지용의 주선으로 잡지 《가톨릭청년》에 시 〈꽃나무〉, 〈이런 시〉 등을 국문으로 발표하며 문학적 재기를 알린다.
1934
[파격적 시 '오감도' 연재 중단]
이태준의 도움으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나, 파격적인 표현에 독자들의 "난해하다"는 항의와 비난이 쇄도하여 15편 만에 연재를 중단하는 전례 없는 사건을 겪는다.
당시 독자들은 '오감도'를 '정신병자의 글', '불쾌하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내며 신문사에 항의했고, 이는 결국 연재 중단으로 이어진다. 이는 한국 문학사에서 독자 항의로 연재가 중단된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1935
[카페 '쓰루' 인수, 권순옥과 만남]
부모의 집을 저당 잡아 인사동 카페 '쓰루'를 인수하고, 카페 '엔젤'에서 근무하던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 권순옥을 만나 깊은 감정을 나누게 된다.
권순옥은 이상에게 'D.H.로렌스의 모조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이상은 이 별명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다방 '제비' 폐업 및 금홍과 결별]
경영난에 시달리던 다방 '제비'를 폐업하고, 잦은 외박과 갈등 속에 연인 금홍과 파란만장했던 동거 생활을 끝맺는다.
이 시기 이상의 생활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1936
['환시기' 발표, 삼각관계 묘사]
소설 <환시기>를 발표하며 자신과 권순옥, 그리고 친구 정인택의 복잡한 삼각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당시 문단에 큰 화제를 모은다.
<환시기>에서 '나'는 이상 자신을, '순영'은 권순옥, '송군'은 소설가 정인택을 나타낸다. 권순옥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정인택이 자살을 기도한 사건을 계기로 결국 권순옥과 정인택이 결혼하게 되었으며, 이때 이상이 결혼 사회를 맡아 더욱 회자되었다.
[파격적인 소설 '날개' 발표]
한국 근대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단편소설 <날개>를 발표하며, 평단의 뜨거운 관심과 동시에 충격적인 내용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무기력한 남편과 매춘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 <날개>는 당시 연인이었던 금홍과의 불안정한 관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극중 아내의 이름 '연심'은 금홍의 본명이다. 이 작품은 이상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변동림과 결혼하다]
폐병을 앓는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을 택한 문학소녀 변동림과 결혼식을 올리고 경성 황금정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
화가 구본웅의 이모였던 변동림은 이상이 폐결핵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와 결혼을 강행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이상의 호적에는 변동림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문학을 찾아 도일]
폐결핵이 악화되자, 구본웅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문학 세계를 모색하고 요양을 위해 결혼 4개월 만에 홀로 일본 도쿄로 떠난다.
구본웅은 천재적인 연하의 이모부가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게 둘 수 없다며 일본 요양비를 건넸지만, 이는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액수는 아니었다.
[소설 '봉별기' 발표]
연인 금홍과의 격정적이었던 만남과 헤어짐을 담아낸 소설 <봉별기>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봉별기>에는 '하루 나는 제목 없이 금홍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와 같이 금홍에게 폭행당하고 집을 떠났던 자신의 경험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과 결별이 담겨있다.
1937
[일본에서 사상 혐의로 피검]
일본 도쿄에서 공원을 산책하던 중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4일간 구금된다.
이 과정에서 그의 폐결핵은 다시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급격히 악화된다.
[28세의 나이로 요절하다]
일본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다.
위독하다는 급보를 듣고 일본으로 건너온 아내 변동림이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변동림은 훗날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 넘기지 못했다."라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했다.
1977
[이상문학상 제정]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출판사 문학사상사에서 '이상문학상'을 제정, 매년 뛰어난 작가에게 시상한다.
2008
[이상시문학상 제정]
현대불교신문사와 계간 ‘시와 세계’가 '이상시문학상'을 제정하여 한국 시 문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그의 이름을 기린다.
2010
[탄생 100주년, 문학 재조명]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적 세계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그의 생애와 작품이 재평가되고 새롭게 조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