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소설가, 교수, 문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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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4: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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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소설가, 교수, 문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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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단의 거장 자전적 요소를 녹여낸 깊이 있는 소설가.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시대 비판과 폭력의 본질 탐구. - 보수적 논객 활동으로 진보 진영 및 페미니스트와 수많은 논쟁. -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탁월한 문학성으로 한국 문학 위상 제고. - 그의 작품과 발언은 한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현재까지도 뜨거운 논쟁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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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거장 이문열의 탄생]

미군정 시기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이열이라는 초명으로 태어났다.

훗날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성장한다.

1950

[아버지의 월북, 고난의 시작]

한국 전쟁 중 아버지가 월북하면서, 어머니와 다섯 형제자매는 경상북도 영양군 등지를 떠돌며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이는 그의 자전적 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65

[고교 중퇴와 방황의 시기]

안동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한동안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이후 검정고시로 학업을 이어갔다.

1968

[서울대 국어교육과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1970

[사법고시 도전과 좌절]

사법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중퇴했으나, 연좌제 등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을 겪었다.

1973

[결혼과 군 입대]

결혼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자전적 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1977

[문단 데뷔와 활동 시작]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가작으로 당선되며 문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대구매일신문 편집기자로도 활동했다.

1979

[연이은 수상, 최다 독자 확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이 당선되고, 같은 해 중편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이로써 1980년대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1981

['젊은 날의 초상' 발표]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 '젊은 날의 초상'을 발표하여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1982

['황제를 위하여' 발표]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87

['영웅시대' 발표]

소설 '영웅시대'를 출간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88

['삼국지' 평역 출간]

고전 '삼국지'를 현대적으로 평역하여 출간했다.

이 작품은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0

[보수 논객으로 논쟁 시작]

1990년대 이후 보수적 문인이자 논객으로서 활동하며 진보 진영 및 페미니스트 인사들과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며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섰다.

[마광수와의 논쟁 발발]

마광수 교수가 언론에 이문열의 상업적 성공을 비판하며 한국 독자의 교양주의 선호 현상에서 원인을 찾았다.

이문열 역시 마광수의 작품을 강하게 비판하며 첨예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1993

['오디세이아 서울' 연재]

신문연재소설 '오디세이아 서울'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지 않는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논란이 되었다.

1996

['선택' 연재, 페미니즘 논쟁]

잡지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소설 '선택' 연재를 시작했다.

이 작품에서 조선시대 캐릭터를 빌려 현대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여성운동가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그는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이혼은 '절반의 성공' 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며 페미니스트를 비판했다.

1997

['여성 권익의 걸림돌' 선정]

소설 '선택'으로 인한 논란으로 인해, 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1년 동안 '여성 권익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겪었다.

1998

[세종대 교수, 부악문원 대표]

세종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같은 해부터 부악문원의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9

[호암 예술상 수상]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호암 예술상을 수상했다.

또한 소설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을 발표했다.

2000

['홍위병' 칼럼 기고]

중앙일보에 '홍위병을 돌아보며'라는 칼럼을 기고하여 일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과 음모론을 중국 마오쩌둥의 홍위병에 빗대어 비판했다.

[진중권 '젖소부인' 맹비난]

진중권 평론가가 이문열의 '홍위병을 돌아보며' 칼럼에 대해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라는 제목으로 반박했다.

그는 이문열의 음모론을 '정치 포르노'로 규정하며 "정말로 부도덕하고 몰취향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진중권은 이문열이 직접 나서지 않고 숨었다며 "언어폭력을 쓰신 이문열 씨, 당신도 그런 말 들으면 기분 나쁘죠? 그러니 우리 모두 고운 말, 예쁜 말을 사용하는 명랑사회를 이룩해요."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2001

[정치인 부정 묘사 논란]

소설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에서 김대중, 추미애 등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반발한 일부 독자들은 자신이 구입한 이문열의 책을 단체로 버리는 '책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07

["전두환 때 침묵 부끄럽다"]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극우보수 비판 왜 안하나"는 질문에 "전두환 때 말 못 한 게 많이 부끄럽다"고 발언하여 주목을 받았다.

2008

[촛불집회 '불장난' 발언]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불장난을 오래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데게 된다", "너무 촛불 장난을 오래하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또한 '의병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제안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9

[한국외대 석좌교수 초빙]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다.

2012

[목월·동리문학상 수상]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목월문학상과 동리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문학적 위상을 확인했다.

2020

['삼국지' 개정판 출간]

1988년 출간되었던 '삼국지' 평역본의 개정판을 새롭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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