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할둔
역사가, 사상가, 정치인, 사회학자, 경제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9:01
중세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사상가 정치가입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정치 경험을 통해 사회와 역사의 본질을 깊이 통찰했습니다. 특히 『무깟디마』는 세계 최초의 역사 서설이자 세계적 명저로 문명의 흥망성쇠 법칙을 탐구하여 현대 사회학 경제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정복자 티무르마저 감탄시킨 그의 지성과 삶은 여전히 많은 이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1332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 이븐 할둔의 탄생]
중세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역사가이자 사상가, 정치인 이븐 할둔이 튀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 할둔 가문 출신으로, 그의 삶은 후대 학문적 성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튀니스로 망명한 명문 할둔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아부 자이드 압둘 라만 이븐 무함마드 이븐 할둔 알하드라미(Abū Zayd ‘Abd ar-Raḥmān ibn Muḥammad ibn Khaldūn al-Ḥaḍramī)이다. 그는 튀니스의 하프스 왕조를 섬기는 것으로 그의 정치 경력을 시작한다.
1375
[은둔하며 세계적 명저 '무깟디마' 집필]
정치 무대에서 물러난 이븐 할둔은 알제리 콸라트 이븐 살라마 마을에 칩거하며 학문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이 시기에 세계 최초의 사회학 저서로 평가받는 '무깟디마'를 포함한 방대한 세계사 저술 '이바르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1375년부터 1378년까지 알제리의 오랑 지방 콸라트 이븐 살라마 마을에 칩거하며 서아시아 이슬람사의 체계화를 시도했다. 아랍인, 페르시아인, 베르베르인 등 다양한 민족의 역사를 다룬 '이바르의 책'을 완성했으며, 그 서론 격인 '무깟디마'는 사회의 형성과 변화의 법칙을 고찰한 세계적인 명저로 평가받는다. 특히 베르베르의 여러 종족사는 이 민족의 기원과 변천을 서술한 최초의 문헌으로 중요하다.
1382
[카이로에서 학자이자 대법관으로 명성 떨치다]
명저 '무깟디마'로 학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얻은 이븐 할둔은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하여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쳤습니다. 맘루크 왕조 술탄의 신임을 얻어 교수직을 역임하고 마리크파 대법관에 임명되는 등 학자이자 행정가로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382년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한 후,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였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르쿠크의 신임을 얻어 다수의 학원에서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마리크파의 대법관에 임명되어 이집트 사회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1401
[정복자 티무르를 만나 변설로 좌중을 압도하다]
시리아 원정에 나선 티무르가 다마스커스를 포위했을 때, 그의 명성을 들은 티무르의 초청을 받아 만났습니다. 이븐 할둔은 뛰어난 변설로 티무르를 압도하며 정중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학자로서의 명성이 쇠퇴하지 않던 이븐 할둔은 티무르가 시리아 원정 중 다마스커스를 포위했을 때, 그의 명성을 들은 티무르에게 주둔지로 초대받았다. 이븐 할둔은 뛰어난 변설로 티무르와 그의 고위 관리들을 놀라게 하며 정중한 대우와 예우를 받았다. 이 만남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1406
[위대한 이슬람 학자 이븐 할둔, 카이로에서 영면하다]
여러 차례 대법관을 역임하며 명성을 유지하던 이븐 할둔은 6번째 대법관 취임 직후 병을 얻어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티무르와의 만남 후 이집트로 귀환한 이븐 할둔은 여러 번 대법관 직을 다시 맡았으나, 6번째 취임 직후 병을 얻어 1406년 3월 19일 카이로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으로 중세 이슬람의 위대한 지성이 사라졌으나, 그의 학문적 유산은 인류사에 길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