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작곡가, 연주자, 클래식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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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3: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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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작곡가, 연주자, 클래식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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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음악의 흐름을 바꾼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입니다. 그는 발레 음악 불새 페트루시카 봄의 제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봄의 제전은 초연 당시 대중의 엄청난 논란과 함께 20세기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혁명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신고전주의를 주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 양식을 탐구한 그는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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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탄생]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오페라 베이스 가수였습니다.

[세례를 받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니콜스키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학교 교육을 싫어하고 외로운 학생이었습니다.

1901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입학]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강의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1902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만나다]

대학교 동료이자 당대 러시아 최고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아들 블라디미르를 만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개인 작곡 지도를 받게 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스트라빈스키에게 음악원 입학 대신 개인 교습을 계속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아버지 표도르 스트라빈스키 사망]

그의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시기에 스트라빈스키는 법률 공부보다 음악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습니다.

1905

[사촌 카테리나와 약혼]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촌 카테리나 가브릴로브나 노센코와 약혼했습니다.

1906

[사촌 카테리나와 결혼]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촌 카테리나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첫 번째 아내이자 평생의 동반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음악가로서의 길 선택]

1905년 '피의 일요일'로 대학이 문을 닫아 최종 법률 시험을 치르지 못했고, 결국 법률 대신 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07

[첫 교향곡 작곡]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영향을 받은 초기 작품인 교향곡 내림마장조 Op.

1을 완성했습니다.

1908

[《불꽃놀이》로 디아길레프 주목]

관현악곡 《불꽃놀이》를 통해 러시아 발레단의 유명한 기획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사망했습니다.

1910

[《불새》 초연, 하룻밤 만에 세계적 명성]

디아길레프의 의뢰로 작곡한 발레곡 《불새》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스트라빈스키를 하룻밤 만에 세계적인 작곡가로 만들었습니다.

1911

[《페트루시카》 작곡 및 초연]

디아길레프가 의뢰한 두 번째 발레 작품 《페트루시카》를 파리 시즌을 위해 작곡했습니다.

러시아 민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13

[《봄의 제전》 초연, 역사적 논란과 혁명적 평가]

샹젤리제 극장에서 발레곡 《봄의 제전》이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 악단에서 전례 없는 찬반 양론의 소동을 일으키며, 스트라빈스키를 당시 전위파 음악의 기수로 주목받게 했습니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혁명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원시적 의식을 표현한 파격적인 음악과 안무는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나, 현대 음악의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14

[오페라 《나이팅게일》 완성]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나이팅게일》을 완성했습니다.

1915

[지휘자로 데뷔]

적십자를 돕기 위한 콘서트에서 자신의 작품 《불새》를 포함한 두 곡을 지휘하며 지휘자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17

[러시아 혁명으로 고국에 발 묶임]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고국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이후 스위스에 머물게 됩니다.

1920

[발레 《풀치넬라》 초연]

발레 뤼스의 작품 《풀치넬라》가 파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신고전주의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고전 시대와 바로크 시대 음악 정신을 부흥시키려 한 신고전주의는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유럽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이 흐름을 선도했습니다.

1921

[베라 드 보셋과의 만남]

파리에서 베라 드 보셋을 만나 관계를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될 인물이었습니다.

1934

[프랑스 시민권 획득]

오랜 프랑스 거주 끝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1939

[첫 번째 아내 카테리나 사망]

오랫동안 함께해 온 첫 번째 아내 예카테리나 스트라빈스(카테리나 노센코)가 사망했습니다.

이 시기는 스트라빈스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미국 뉴욕 도착]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고 강연을 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1940

[베라 드 보셋과 결혼]

매사추세츠주 베드포드에서 베라 드 보셋과 결혼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 정착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1945

[미국 귀화, 재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귀화했습니다.

이 시기 침체기를 겪었으나, 《3악장의 교향곡》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 제2의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1948

[《미사》 발표]

성악곡인 《미사》를 발표하며 종교음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드러냈습니다.

1951

[오페라 《난봉꾼의 인생역정》 완성]

그의 유일한 전막 오페라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난봉꾼의 인생역정》을 완성했습니다.

1961

[종교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

말년에 종교음악에 깊은 관심을 두어 《설교, 설화 및 기도》와 같은 작품들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1962

[케네디 대통령 초청, 백악관 특별 메달 수여]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 만찬에 참석하여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특별 메달을 받았습니다.

[52년 만의 고국 방문]

1914년 이후 52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소련 작곡가 연합의 초청으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6번의 공연을 가졌으며, 흐루쇼프 수상 등과 만났습니다.

이 방문은 냉전 시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문화 교류의 상징이었습니다.

1963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 발표]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을 발표하며 종교적 영감을 담은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64

[《케네디를 위한 애가》 완성]

전년도 암살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며 《케네디를 위한 애가》를 단 이틀 만에 작곡했습니다.

1971

[현대 음악의 거장, 뉴욕에서 영면]

폐부종으로 뉴욕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 미켈레 묘지 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무덤 근처에 안장되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음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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