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몽골 제국 후계 국가, 중국 정복 왕조, 대제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7:59
칭기즈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건국한 몽골계 정복 왕조입니다. 중국 본토와 몽골 고원을 아우르며 유라시아 대륙 동서 교류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광활한 영토와 독특한 통치 방식으로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민족 차별과 내부 갈등으로 점차 쇠퇴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 몽케 칸 사망
- 아리크 부케 대칸 즉위
- 쿠빌라이 대칸 즉위
- 시무토노르 전투 발발
- 아리크 부케 항복
- 남송 양양 포위전 개시
- 탈라스 하반 회의 개최
- 국호 '대원' 선포, 원나라 건국
- 남송 요충지 양양 함락
- 쿠빌라이의 남송 대공세
- 남송 수도 임안 함락
- 시리기 반란 발생
- 애산 전투 승리, 중국 통일
- 2차 일본 원정 실패
- 나얀 반란 발생
- 쿠빌라이 칸 사망, 테무르 즉위
- 마르코 폴로 중국 방문 추정
- 하이두 사망, 난 종식
- 몽골 칸국들 화의 성립
- 테무르 사망과 후계자 정쟁
- 다기 카톤 사망, 정쟁 재연
- 시데바라 황제 살해
- 토곤 테무르 즉위
- 원나라 중앙 정국 혼란 지속
- 방국진 해상 반란 발생
- 백련교도 홍건당 봉기
- 토크토아 경질 및 살해
- 주원장, 명나라 건국
- 원나라 북원 천도
- 쿠빌라이 직계 황통 단절
1259
[몽케 칸 사망]
몽골 제국의 제4대 대칸 몽케가 남송 원정 중에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거대한 몽골 제국 내부에 권력 공백을 초래하며, 이후 쿠빌라이와 아리크 부케 간의 치열한 계승 다툼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리크 부케 대칸 즉위]
몽케 칸 사망 후, 막내동생 아리크 부케가 몽골 고원 수도 카라코룸에서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는 몽골 제국의 정통 계승 원칙에 따른 것이었으나, 곧이어 쿠빌라이 칸도 대칸을 칭하며 형제간의 내전이 시작됩니다.
1260
[쿠빌라이 대칸 즉위]
몽케 칸의 동생 쿠빌라이가 자신의 본거지인 개평부(훗날의 상도)에서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으로 즉위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동생 아리크 부케도 카라코룸에서 대칸에 오르면서 몽골 제국은 사상 최초로 두 명의 대칸이 병존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1261
[시무토노르 전투 발발]
쿠빌라이와 아리크 부케 간의 대칸 계승 전쟁에서 첫 대규모 격돌인 시무토노르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에서 쿠빌라이가 승리하며 전세가 점차 그에게 유리하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1264
[아리크 부케 항복]
군사력과 화북의 물자를 장악한 쿠빌라이에게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리크 부케는 결국 쿠빌라이에게 항복했습니다.
이로써 몽골 제국의 대칸 지위는 다시 통합되었으나, 서쪽 칸국들의 대칸에 대한 위신은 크게 추락했습니다.
1268
[남송 양양 포위전 개시]
쿠빌라이 칸이 남송 공략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한수의 요충지인 양양에 대한 대규모 포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 포위전은 수년간 지속되며 남송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269
[탈라스 하반 회의 개최]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차가타이 가문, 오고타이 가문(하이두), 주치 가문의 여러 왕이 탈라스 하반에 모여 쿠빌라이에 대항하는 자립 태도를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몽골 제국이 동서로 나뉘는 '하이두의 난'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1271
[국호 '대원' 선포, 원나라 건국]
칭기즈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몽골 제국의 국호를 『역경』의 '건원'에서 따온 '대원'으로 변경하며 원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몽골 제국을 계승하면서도 중국식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중요한 선언이었으며,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대도(현 베이징)로 옮기는 등 중국식 통치 체제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원나라는 중국을 정복한 정복왕조 중 하나로, 1368년 명나라에 밀려 몽골 지역으로 쫓겨날 때까지 중국 대륙을 지배했습니다.
1273
[남송 요충지 양양 함락]
수년간의 격렬한 포위전 끝에 남송의 핵심 요충지인 양양이 마침내 원나라에 함락되었습니다.
이는 남송 멸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원나라는 남송 도시들을 약탈하고 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1274
[쿠빌라이의 남송 대공세]
쿠빌라이 칸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남송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원나라는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남송의 도시들을 차례로 유린하며 멸망을 눈앞에 두게 했습니다.
1276
[남송 수도 임안 함락]
남송의 수도 임안(현 항주)이 원나라 군대에 함락되었고, 남송군은 전멸했습니다.
송 공제를 비롯한 황족들은 원나라 수도로 연행되었으며, 황족 여성들은 기생관으로 이동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시리기 반란 발생]
중앙아시아에서 하이두와 대치하던 원나라 군대에서 몽케의 아들 시리기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하이두의 세력 확대를 허용하게 되어 원나라의 서방 통치력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1279
[애산 전투 승리, 중국 통일]
해상으로 도망친 남송 유민들을 원나라가 추격, 애산 전투에서 전멸시키며 북송 이후 150년 만에 중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원나라는 [[세계 최초로]] 중국 대륙 전역을 완벽하게 통일한 이민족 왕조가 되었고, 이는 중국사에서 전례 없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쿠빌라이는 중국 전역을 성(省)으로 나누어 몽골인 통치자를 파견했습니다.
쿠빌라이는 피정복 한족들을 4단계 계급 중 최하층인 '남인'으로 분류하는 등 가혹한 차별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몽골인들은 한족들의 토지를 빼앗아 거대한 농장을 만들고 재산을 빼앗는 등 심각한 착취가 있었습니다. 특히, 몽골 군인 1명당 100명의 한족을 배당해 무기 소지를 감시하고, 라마교를 핑계로 한족 여성들에게 초야권을 요구하여 한족들이 첫째 아이를 살해하는 풍습까지 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역사상 원나라에서 한족에게만 가해진 특수한 지배 방식이었습니다.
1281
[2차 일본 원정 실패]
원나라는 복속된 남송인들을 동원하여 다시 일본을 공격했으나, 태풍과 가마쿠라 막부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또다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인명과 물적 손실을 입게 되어 원나라의 국력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1285
[1차 베트남 침공 패배]
원나라가 베트남 쩐 왕조를 침공했으나, 쩐 왕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패배했습니다.
이는 원나라의 대외 원정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1287
[나얀 반란 발생]
쿠빌라이 칸 즉위 당시 지지 세력이었던 동쪽 3왕가에서 나얀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쿠빌라이는 만년에 이 반란과 중국 내 한족들의 빈번한 반란에 대응하느라 일본 원정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288
[2차 베트남 침공 패배]
원나라가 다시 베트남을 침공했으나, 또다시 쩐 왕조에게 패배했습니다.
연이은 동남아시아 원정 실패는 원나라의 군사적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1292
[참파 원정 실패]
원나라가 참파 원정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습니다.
비록 군사적 성공은 없었지만, 이 원정들은 동남아시아 상업로 개척에 기여하여 해상 루트의 안전을 확보하는 결과는 가져왔습니다.
1294
[쿠빌라이 칸 사망, 테무르 즉위]
원나라를 건국하고 중국을 통일했던 쿠빌라이 칸이 사망하고, 그의 손자 테무르가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그의 치세는 하이두의 난 종식과 서쪽 칸국들과의 화의를 통해 '팍스 몽골리카'를 여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299
[마르코 폴로 중국 방문 추정]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의 수도 대도(칸발리크)를 방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입니다.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은 당시 동방에 대한 지식이 없던 서양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유럽의 세계관 확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방견문록』의 내용 신빙성에 대한 논란도 있으나, 대부분의 학계는 마르코 폴로의 모험에 기반한 독특하고 정확한 사료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1301
[하이두 사망, 난 종식]
중앙아시아에서 쿠빌라이 칸에 대항해 자립했던 오고타이 가문의 하이두가 사망하면서, 몽골 제국을 동서로 분열시켰던 '하이두의 난'이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원나라를 비롯한 몽골 제국 내 칸국들 간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1304
[몽골 칸국들 화의 성립]
긴 시간 동안 원나라와 항쟁을 벌였던 서쪽 칸국들과의 화의가 성립되었습니다.
이 동서 울루스(칸국)의 융화로 몽골 제국은 대칸을 정점으로 한 느슨한 연합 체제로 다시 묶였고, [[세계 최대]] 실크로드 교역의 호황, 즉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1307
[테무르 사망과 후계자 정쟁]
테무르 칸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자, 몽골 제국에서 되풀이되던 황제 계승 쟁탈전이 다시 격렬하게 재연되었습니다.
모후, 외척, 권신 등 몽골 귀족들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원나라 궁정을 뒤흔들었습니다.
1320
[아유르바르와다 치세 종료]
황후 일가인 옹기라트부 출신의 어머니 다기 카톤이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고 궁정 내 권력을 장악하며 칸의 명령보다 모후의 명령이 더 권위를 가졌던 아유르바르와다의 치세가 끝났습니다.
1322
[다기 카톤 사망, 정쟁 재연]
궁정 내 권력을 장악했던 다기 카톤이 사망하자, 원나라의 후계자 쟁탈전이 다시 격화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13년간 7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극심한 혼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1323
[시데바라 황제 살해]
아유르바르와다의 뒤를 이었던 시데바라 황제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원나라 황실 내 권력 다툼이 얼마나 극단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이후 더욱 빈번한 황제 교체가 이어졌습니다.
1333
[토곤 테무르 즉위]
광서에서 추방 생활을 보내던 토곤 테무르가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이는 다수의 황족이 황위 쟁탈전으로 쓰러진 후, 13년간 7명의 황제가 교대하는 이상 사태가 겨우 종식되는 시점이었습니다.
1340
[토구다의 바얀 살해]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장악했던 아스트 친위군 사령관 바얀의 조카 토구다가 쿠데타를 일으켜 백부 바얀을 살해하고 권력을 빼앗았습니다.
이는 원나라 궁정이 군벌 간의 내부 항쟁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1347
[원나라 중앙 정국 혼란 지속]
토구다가 추방당하는 등 원나라 중앙 정국의 혼란이 1349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정치적 혼란 속에서 흑사병과 유사한 전염병, 천재지변이 겹쳐 농촌은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중앙 정부는 권력 다툼에 몰두하여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이는 급속한 국정 악화와 한족들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1348
[방국진 해상 반란 발생]
절강 지역에서 방국진이 해상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원나라 말기 전국에서 연이어 일어난 대규모 반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351
[백련교도 홍건당 봉기]
황하 개수 공사에 동원된 백련교도들이 홍건당을 조직하여 대규모로 봉기했습니다.
이 반란은 원나라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농민 반란 중 가장 큰 세력이었으며, 주원장 등 훗날 명나라 건국의 주역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54
[토크토아 경질 및 살해]
대규모 토벌군을 이끌던 토크토아가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한 토곤 테무르에 의해 경질되고 살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칸의 권력 회복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원나라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켜 멸망을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1368
[주원장, 명나라 건국]
홍건당에서 두각을 나타낸 주원장이 반란자들을 물리치고 화남을 통일한 후, 난징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명나라를 건국했습니다.
그는 즉위와 동시에 대규모 북벌을 개시하여 원나라 수도 대도(베이징)로 진격했습니다.
[원나라 북원 천도]
명나라군의 북벌에 직면한 토곤 테무르가 중국 대륙의 지배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대도를 버린 채 북쪽 몽골 고원으로 물러났습니다.
이는 중국 왕조로서의 원나라 시대가 끝나고 몽골 고원에서 '북원' 시대로 이어지는 전환점이었습니다.
1388
[쿠빌라이 직계 황통 단절]
북원의 토구스 테무르가 살해당하면서 쿠빌라이 이래의 직계 황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는 원나라 왕조의 정통성이 완전히 상실되었음을 의미하며, 몽골 고원에서는 이후 차하르 칸국이 '대원황제'를 다시 선포하며 명나라와 대립을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