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발명가, 금속 세공업자, 인쇄업자, 출판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2:50:09
유럽에서 금속 활판 인쇄술을 도입하고 대중화시킨 혁신적인 인물. 르네상스 종교 개혁 인본주의 운동 등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정보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음. 1999년 밀레니엄의 남자이자 2천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됨. 활자 설계 대량 생산 기술 전파 유성 잉크 및 목판 인쇄기 결합으로 인쇄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음.
1398
[구텐베르크 탄생]
독일 마인츠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주교 밑에서 돈을 찍어내는 금속 세공 관리로 일했으며, 덕분에 구텐베르크는 주물, 압축 등 금속 세공 기술과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위키백과 원문에는 1397년 아니면 1398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며, 약 1398년경으로 표기된다.
1411
[가족의 슈트라스부르크 망명]
교회와 세속 권력 간의 주도권 다툼에서 대주교 지배하의 구텐베르크 부친이 시민들에 의해 마인츠에서 추방되어 슈트라스부르크로 망명했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어린 시절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428
[부친 사망 및 이주]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구텐베르크는 슈트라스부르크로 이사하여 상인이나 장인으로 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그는 금속 활자 연구를 다시 시작하며 훗날의 위대한 발명을 위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1444
[마인츠 귀향]
약 1444년경 구텐베르크는 고향인 마인츠로 돌아왔다.
이는 그의 인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448
[인쇄소 개업 및 면죄부 인쇄]
마인츠에 인쇄소를 개업한 그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를 인쇄하여 판매했다.
이는 초기 인쇄 기술이 상업적으로 활용된 사례이자, 인쇄술의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면죄부 판매는 훗날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된다.
1450
[최초의 36행 성서 인쇄]
고딕 활자를 사용하여 유럽 최초로 36행의 라틴어 성서, 일명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쇄했다.
이는 그의 금속 활판 인쇄 기술이 실용화된 첫 번째 주요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 성서는 이후 인쇄술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인쇄 역사의 상징적인 유물이 되었다. 정확한 연도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1448년 이후 1453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1453
[42행 성서 인쇄 및 활자 개량]
보다 작고 발전된 활자로 개량한 후, 2회에 걸쳐 42행의 구약 성서를 인쇄했다.
이 책에서 나타난 우수한 인쇄 품질은 그에게 큰 호평을 안겨주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42행 성서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으로 평가된다.
1455
[42행 『비블리아 사크라』 인쇄]
각 페이지에 42행이 들어가는 『비블리아 사크라(Biblia Sacra)』를 인쇄했다.
복사본은 권당 30 플로린에 팔렸는데, 이는 일반 점원의 약 3년치 임금에 해당했지만, 서기가 필사하는 데 1년 이상 걸리는 원고보다 훨씬 저렴했다.
이로써 책의 대량 생산과 보급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일부 사본은 발간 후 사람들이 손으로 장식을 꾸며 넣어 판매되기도 했다. 이 책은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1468
[구텐베르크 사망]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금속 활판 인쇄술의 발명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1468년 2월 3일 사망했다.
그의 발명은 이후 정보 혁명의 시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