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왕조

왕가, 독일 왕국, 신성 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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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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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 독일 왕국, 신성 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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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왕조는 10세기부터 11세기 초까지 독일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을 통치한 작센족 기반의 강력한 왕가입니다. * 초대 황제 오토 1세는 카롤링거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마자르족 침략을 저지하며 제국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 정치적 군사적 성공은 물론 오토 르네상스로 불리는 문화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 중앙 권력 강화와 교회를 통한 지배력 확립으로 중세 유럽의 주요 왕국으로 성장시켰으나 1024년 후계 단절로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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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가문 시초, 영지 마련]

9세기, 작센 백작 리우돌프가 하르츠산맥 서쪽과 튀링겐 지역에 대규모 영지를 소유하며 오토 왕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의 선조는 샤를마뉴의 색슨 전쟁 이후 카롤링거 제국에 통합된 작센 부족 공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852

[가문의 수도원 건립]

리우돌프와 그의 아내 오다가 힐데스하임의 알트프리트 주교와 함께 브룬하우젠 대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이 수도원은 훗날 간데르스하임으로 이전하여 오토 왕가의 수도원이자 묘지로 유명해졌습니다.

869

[카롤링거 혼인 동맹]

리우돌프의 딸 리우트가르트가 카롤링거 왕조 출신의 독일인 루트비히의 아들 소 루트비히와 결혼했습니다.

이는 리우돌프가 이미 작센 공작이라는 고위 지위를 가졌음을 증명하며 오토 가문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911

[왕위 계승 거부]

마지막 카롤링거조 왕 루트비히 사망 후, 영광공 오토가 동프랑크 왕국의 왕위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그는 왕위를 거부하고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에게 왕위가 넘어갔습니다.

912

[하인리히 1세 공작위 계승]

영광공 오토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매사냥꾼 하인리히가 작센 공작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전설적인 작센 통치자 비두킨트의 후손인 링겔하임의 마틸다와 혼인했습니다.

919

[하인리히 1세 국왕 선출]

헝가리인들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 동프랑크 왕국에서 매사냥꾼 하인리히가 독일 제후들 중 제일로 손꼽혔고, 5월에 프랑크의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분열된 카롤링거 제국 통치를 포기하고 공작들의 지지를 얻어내 오토 왕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933

[리아데 전투 승리]

하인리히 1세는 독일 군대를 이끌고 리아데 전투에서 헝가리군에게 승리했습니다.

이후 폴라브 슬라브인과 보헤미아 공국으로 군사 원정을 벌이며 정복 활동에 힘썼습니다.

936

[오토 1세 왕권 강화]

아버지 하인리히 1세의 사망으로 작센 공작이 된 오토 1세는 몇 주 만에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게르만 부족을 단일 왕국으로 통합하고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며 왕의 권력을 크게 늘렸습니다.

정략결혼과 사적 인사를 통해 주요 공국들에 자기 가문 출신을 배치했으나, 동생 하인리히 1세와 조카 리우돌프의 반란을 진압하며 공작들의 위상을 왕가의 가신으로 격하시켰습니다.

955

[레히펠트 전투 대승]

오토 1세는 레히펠트 전투에서 마자르족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세계적으로 헝가리인들의 유럽 침공을 완전히 종결시켰습니다. 이 승리로 그는 '기독교 세계의 구원자'이자 '대왕(Magnus)'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961

[이탈리아 왕국 정복]

오토 1세는 당시 골칫거리이던 이탈리아 왕국을 정복하고 왕국의 국경을 북쪽, 동쪽, 남쪽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로써 중부와 남유럽의 많은 지역이 그의 세력권에 놓이게 됩니다.

962

[오토 1세, 초대 황제 등극]

오토 1세는 샤를마뉴의 계승 개념인 '트란슬라티오 임페리'를 부활시키며 로마로 향했고, 교황 요한 12세로부터 신성 로마 황제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오토 왕조 출신 최초의 신성 로마 황제 탄생이자 중세 유럽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입니다.

그의 통치 아래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 '오토 르네상스'라는 제한적인 문화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967

[오토 2세 단독 통치 시작]

961년부터 아버지 오토 1세와 공동 통치하다 967년에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오토 2세는 바이에른계 오토 가문 출신들을 계승권에서 박탈시키며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고 제위 상속권을 명확히 했습니다.

968

[마그데부르크 교구 설치]

오토 1세는 자신의 오랜 거처인 마그데부르크에 대주교구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독일 교회를 왕실의 주요 권력 거점으로 전환시키려는 그의 정책 일환이었습니다.

982

[오토 2세의 스틸로 패전]

오토 2세는 이탈리아 합병을 시도하며 비잔티움 제국 및 파티마 칼리파국의 사라센과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982년 스틸로 전투에서 사라센에게 재앙적인 패배를 당했고, 이듬해에는 슬라브족 대반란까지 겪었습니다.

983

[오토 2세 급사 및 위기]

스틸로 전투 패배와 슬라브족 대반란을 겪은 오토 2세는 재위 10년 만에 2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급사는 오토 왕조를 위기로 몰고 갔고, 세 살 된 아들 오토 3세가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오토 3세의 섭정 기간 동안 비잔티움 황녀 테오파노는 남편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폐기하고 이탈리아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1000

[오토 3세의 동방 정책]

성년이 된 오토 3세는 이탈리아 지배권 확보에 집중했고, 두 명의 친우를 교황으로 세웠습니다.

또한 폴란드의 그니에즈노 회의에 참석하여 그니에즈노 대주교구를 설치하고 용맹공 볼레스와프 1세의 왕 지위를 승인하며 동유럽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습니다.

1002

[오토 3세 요절]

1001년 로마에서 쫓겨났던 오토 3세는 다음 해 21세의 젊은 나이로 도시를 탈환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사망했습니다.

[하인리히 2세 왕위 계승]

자녀가 없던 오토 3세의 뒤를 바이에른계 오토 가문 출신의 하인리히 2세가 이었습니다.

그는 995년부터 바이에른 공작이었으며, 1002년 6월 7일 왕위에 올라 독일 왕국 국경 지대의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007

[밤베르크 교구 설립]

하인리히 2세는 자신의 지배권을 강화하고 제국의 세속 및 종교적 권위를 결속시키기 위해 1007년에 밤베르크 주교구와 같은 여러 교구를 설립하고 기부 활동을 펼쳤습니다.

1014

[하인리히 2세 황제 즉위]

하인리히 2세는 이탈리아 원정에서 군사적 성공을 거둔 후 1014년 2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8세를 통해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1024

[오토 왕조의 종말]

하인리히 2세는 룩셈부르크의 쿠니군데와의 혼인에서 자녀가 없었기에, 그가 1024년에 사망하면서 오토 왕조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제위는 잘리어 가문의 콘라트 2세에게 넘어갔습니다.

1146

[하인리히 2세 시성]

오토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하인리히 2세는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1146년에 교황 에우제니오 3세로부터 시성되어 성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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