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콩트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2:29:47
-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혼란기 사회 안정에 매료된 프랑스 사상가. - 사회학과 실증주의 철학 용어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근대 사회학의 토대를 닦음. - 모든 지식과 과학을 통합하려 한 야심가였으나 후기에는 종교적 주장을 펼치기도 함. - 사회 진보 3단계 법칙 과학의 위계론 등을 제시하며 인류 지성사에 큰 발자취를 남김.
1798
[프랑스에서 태어난 선구자]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태어난 오귀스트 콩트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혼란과 산업화가 한창이던 격동의 시대에 성장하며 사회 안정과 개선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훗날 그가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1800
[생시몽과의 만남과 이별]
에꼴 폴리테크니크를 중퇴한 콩트는 당시 저명한 연구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앙리 드 생시몽과 교류하며 연구를 시작,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론보다는 사회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더 비중을 두는 생시몽과 갈등하며 결국 결별하게 되는데, 이는 콩트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됩니다.
1830
['사회학'의 탄생을 알리다]
생시몽과의 결별 후 콩트는 자신의 대표작인 《실증철학강의》 집필에 몰두합니다.
이 시기 그는 세계 최초로 '사회학(Sociology)'이라는 용어를 명명하고 실증주의 철학의 원리들을 창안하며,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엽니다.
그의 노력은 근대 사회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됩니다.
콩트는 19세기 유럽의 사회적, 사상적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실증주의의 정신 위에 사회학을 정립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뉴턴의 과학 혁명에 깊은 영향을 받아 사회학을 자연법칙에 종속된 하나의 과학으로 정립하려 했으며, 관찰, 실험, 비교 및 역사적 분석을 사회 연구의 방법론으로 제시했습니다. 그의 대표 저서 《실증철학강의》는 1830년부터 1842년까지 발행되었습니다.
1840
[인류를 위한 종교를 만들다]
학계에서 고립되고 많은 비판을 받던 콩트는 자신의 후기 저작인 《실증정치체계》에서 과학보다는 종교적인 색채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는 심지어 '인류교'를 직접 만들고 스스로 사제가 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이는 그가 이전에 생시몽의 유사 종교적 속성을 비난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1857
[근대 사회학의 거장이 잠들다]
'사회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귀스트 콩트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여정에서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회학을 창시하고 후대의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여전히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