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
잉글랜드 여왕, 튜더 왕조, 군주, 정치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5:23:45
엘리자베스 1세는 44년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를 통치하며 엘리자베스 시대라 불리는 황금기를 이끈 군주입니다. 처녀 여왕으로서 국교회를 확립하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등 뛰어난 외교와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인도 회사 설립으로 대영 제국의 초석을 놓았으나 종교 갈등과 후계 문제 아일랜드 반란 등 내우외환도 겪었습니다. 후사 없이 사망하며 튜더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1533
[엘리자베스 1세 탄생]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앤 불린 사이에서 딸로 태어났다.
헨리 8세는 아들을 고대했지만 딸의 탄생에 실망했으며, 이는 엘리자베스의 복잡한 성장 배경의 시작이 된다.
1536
[어머니 앤 불린 처형]
어머니 앤 불린이 간통 혐의로 처형당하며 엘리자베스는 두 살의 어린 나이에 왕녀 지위까지 박탈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는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큰 상처가 되어 평생 영향을 미쳤다.
1543
[왕위계승권 복권]
열 살이 되던 해, 왕위계승법이 변경되면서 박탈당했던 왕녀 지위와 왕위계승권이 복권되었다.
불안정했던 신분은 회복되었지만, 그녀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했다.
1547
[후견인의 학대]
아버지 헨리 8세 사망 후, 어린 엘리자베스는 후견인이었던 토머스 시모어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며 깊은 정서적 상처를 입었다.
이 경험은 그녀의 일생, 특히 독신 고집에 큰 영향을 미쳤다.
1548
[계모의 조치]
계모 캐서린 파가 토머스 시모어와 엘리자베스의 부적절한 관계를 직접 목격한 후, 엘리자베스를 집 밖으로 내보내 상황을 정리했다.
이로써 학대는 일단락되었다.
[시모어의 재접근]
계모 캐서린 파가 산욕열로 사망하자, 야심가 토머스 시모어는 다시 엘리자베스에게 접근하려 했다.
그는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을 통해 왕실 권력을 장악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1549
[토머스 시모어 처형]
왕실 장악을 꾀했던 토머스 시모어의 음모가 발각되어 그는 참수당했다.
엘리자베스는 사건 연루 혐의로 심문을 받았으나, 침착하게 결백을 주장하며 위기를 넘겼다.
1553
[에드워드 6세 사망]
병약했던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가 1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가톨릭 신도인 메리 1세 대신 제인 그레이를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이는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메리 1세 즉위]
계승 순위를 무시한 제인 그레이의 즉위 시도가 실패하자, 정당한 후계자 메리 1세가 엘리자베스와 함께 런던에 입성하며 왕위에 올랐다.
'9일 여왕' 제인 그레이는 반역죄로 체포되었다.
1554
[와이어트의 난]
메리 1세의 가톨릭 복고 선언과 스페인 펠리페 2세와의 결혼 추진에 반대하여 개신교도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빠르게 진압되었으나, 메리 1세는 엘리자베스를 배후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런던탑 투옥]
메리 1세의 종교 정책에 반대하는 반란의 배후로 지목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엘리자베스는 극심한 압박 속에서도 침착하게 결백을 주장하며 생명의 위협을 이겨냈다.
1555
[메리 1세 임신 소식]
메리 1세의 임신 소식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당시 여성의 출산 사망률이 높아 메리 1세의 건강과 후계 여부가 엘리자베스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기로였다.
1558
[후계자 공식 인정]
죽음이 임박한 메리 1세가 마침내 엘리자베스를 후계자로 인정했다.
후사 없이 병약했던 메리 1세의 결정은 엘리자베스의 불안했던 왕위 계승을 확고히 하는 순간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즉위]
이복 언니 메리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했다.
불안정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559
[성대한 대관식]
런던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가졌다.
왕실 연금술사 존 디가 정한 길일에 치러진 대관식은 그녀의 통치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모았다.
[수장령 재공포]
국왕을 수장으로 하는 새로운 수장령을 공포하며 잉글랜드 국교회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이는 메리 1세 시기의 가톨릭 복고를 뒤집고 종교적 혼란을 수습하려는 중요한 조치였다.
1561
[임신 루머]
엘리자베스가 질병을 앓자, 일부에서는 이를 로버트 더들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임신을 숨기기 위한 핑계라는 소문이 돌았다.
처녀 여왕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였다.
1562
[르아브르 침공 실패]
프랑스 르아브르를 침공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엘리자베스 통치 기간 중 유럽 대륙에 대한 유일한 직접 공격이었으며, 칼레 탈환을 목표로 했으나 위그노 세력의 반발로 좌절되었다.
1565
[메리 1세 재혼]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가 엘리자베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와 재혼했다.
이 결혼은 엘리자베스 사후 잉글랜드 왕위가 스튜어트가로 넘어갈 수 있음을 암시하며 경쟁을 심화시켰다.
1566
[제임스 1세 탄생]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가 아들 제임스를 낳았다.
이는 잉글랜드 왕위계승에 대한 스튜어트가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사건으로, 엘리자베스의 후계자 없는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1567
[단리 경 사망]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의 남편 단리 경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메리 1세가 그의 암살 배후로 지목되면서 스코틀랜드 내 개신교도들의 강력한 반란이 촉발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568
[메리 1세 망명·연금]
스코틀랜드 내 반란으로 왕위를 잃은 메리 1세가 잉글랜드로 망명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보호 명목으로 연금하여 19년 동안이나 감시하며 잠재적 위협을 통제하려 했다.
1569
[가톨릭 반란 진압]
잉글랜드 북부에서 메리 1세의 옹립을 명분으로 대규모 가톨릭 반란이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반란을 가혹하게 진압하고 750여 명을 처형하며 왕권 강화를 과시했다.
1570
[교황의 엘리자베스 파문]
교황 비오 5세가 엘리자베스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 교서를 발표하며 그녀를 죽인 자는 사면될 것이라 공언했다.
이는 잉글랜드 내 가톨릭 신도들에게 반란을 지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572
프랑스 앙주 공작 가문과 혼담이 오갔다. 엘리자베스는 가톨릭 왕족과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외교적 이득을 취하는 데 활용했다.
1583
[북아메리카 식민지 개척]
험프리 길버트가 북아메리카에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를 세웠다.
비록 실패했지만, 이는 이후 지속적인 아메리카 식민 시도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1585
[잉글랜드-스페인 전쟁 발발]
스페인과의 갈등이 증폭되어 잉글랜드-스페인 전쟁이 발발했다.
엘리자베스는 네덜란드 독립 전쟁에서 스페인에 대항하는 원군을 파병하며 직접적인 대립을 시작했다.
1587
[드레이크의 카디스 습격]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사략 함대가 스페인의 카디스 항구를 습격하여 스페인 함대를 대파했다.
이 사건은 스페인이 잉글랜드에 대한 전면전을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메리 1세 참수]
배빙턴 음모 사건이 발각되면서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가 엘리자베스 시해 및 왕위 찬탈을 꾀한 증거가 드러났다.
결국 메리 1세는 대역죄로 재판을 받고 참수당했으며, 엘리자베스는 처형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1588
[스페인 무적함대 출항]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위해 역사상 세계최대 규모의 '무적함대'를 출항시켰다.
이는 가톨릭 국가 스페인과 개신교 잉글랜드 간의 종교적, 정치적 갈등의 정점이었다.
[무적함대 격파 (세계최초)]
잉글랜드 해군이 화선 공격으로 스페인 무적함대를 그레벨링건 앞바다에서 대파했다.
이는 잉글랜드의 기적적인 승리로, '처녀 여왕'의 지도 아래 단결한 국가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1589
[드레이크-노리스 원정 실패]
잉글랜드가 스페인에 대규모 원정 함대인 '드레이크-노리스 원정'을 감행했으나 대패했다.
무적함대 격파의 이점을 잃고 스페인 해군 재건의 시간을 벌어주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1594
휴 오닐이 이끄는 아일랜드 반군이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잉글랜드와 전쟁을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사망 후까지 이어진 이 전쟁은 잉글랜드 재정에 큰 부담을 주었다.
1599
[국가와 결혼 선언]
수많은 청혼에도 독신을 고집했던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자신을 '처녀 여왕'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는 그녀의 정치적 메시지이자 개인 숭배의 핵심이었다.
1600
[동인도 회사 인가]
세계최초 인도를 식민 지배하기 위한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를 인가했다.
이 회사는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경쟁하며 전 세계 무역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기구로 성장, 대영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1601
[에식스 백작 처형]
총애하던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가 반란을 일으키자, 엘리자베스는 그를 체포하여 처형했다.
노쇠한 여왕은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도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603
[엘리자베스 1세 서거]
리치몬드궁에서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후사 없이 사망하여 튜더 왕조는 막을 내렸고,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며 스튜어트 왕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