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코네

작곡가, 지휘자, 영화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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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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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코네
작곡가, 지휘자, 영화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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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 500편이 넘는 영화 음악과 수많은 공연 음악을 작곡하며 왕성하게 활동. - 《황야의 무법자》 《미션》 《시네마 천국》 등 전설적인 OST를 탄생시킴. -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등 수많은 영예를 안으며 세계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 -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선율로 음악의 마에스트로로 영원히 기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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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음악 거장의 탄생]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9살에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입학, 트럼펫과 작곡을 배우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이는 그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로마에서 태어난 모리코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고프레도 페트라시에게 트럼펫, 작곡, 합창 지휘를 배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비무장 도시 로마가 맹폭격당하던 힘든 시기를 보냈으며,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영화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습니다.

1940

[음악 경력의 시작]

재즈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RCA 빅터의 스튜디오 편곡자가 되어 다채로운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40년대에 모리코네는 재즈 밴드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RCA 빅터의 스튜디오 편곡자로 일하게 됩니다.

1955

[영화 음악 데뷔]

영화와 연극의 삽입곡들을 대필하는 일을 시작하며 영화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때부터 그의 영화 음악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5년부터 영화와 연극의 삽입곡들을 대필하며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56

[마리아 트라비아와 결혼]

평생의 동반자인 마리아 트라비아와 결혼하여 세 아들과 한 딸을 두었다.

그녀는 모리코네의 작곡 활동에 영감을 주는 많은 시를 지었으며, 특히 아들 안드레아 모리코네 또한 영화 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1956년 마리아 트라비아와 결혼하여 마르코, 알레산드라, 안드레아, 조반니 네 자녀를 두었습니다. 마리아 트라비아는 '미션'의 라틴 문장을 포함해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곡을 보완하는 많은 시를 썼습니다. 둘째 아들 안드레아 모리코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 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60

[세계적 명성 확보]

이 시기 서부영화 음악으로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확립했다.

그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은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상징이 되었다.

1960년부터 1975년 사이에 서부영화 음악으로 천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961

[영화 음악 본격화]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 작곡을 시작하여 같은 해 《파시스트》의 음악을 담당했다.

이는 그의 길고 빛나는 영화 음악 경력의 공식적인 첫 걸음이다.

1961년부터 영화 음악 작곡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는 《파시스트》 (The Fascist)의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1964

[스파게티 웨스턴 개척]

《황야의 무법자》 음악을 작곡하며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의 전설적인 협업을 시작했다.

이 작품으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음악적 지평을 열며 그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확립했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 음악을 작곡하며 독특한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 스타일을 확립했습니다. 이 협업은 이후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등으로 이어지며 영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1966

[명작 OST의 탄생]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지고 영향력 있는 사운드트랙 중 하나인 《석양의 무법자》 음악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될 정도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석양의 무법자》 사운드트랙은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지고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습니다.

[음악적 실험]

실험적 작곡가들의 모임인 '일 그루포'의 주요 멤버로 활동하며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그의 음악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66년에서 1980년 동안 실험적 작곡가들의 모임인 일 그루포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1969

[스튜디오 창업]

일류급 녹음 스튜디오인 '포럼 뮤직 빌리지'를 공동 창업하여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음악적 교류와 제작 환경을 조성했다.

1969년에는 일류급 녹음 스튜디오인 포럼 뮤직 빌리지를 공동으로 창업했습니다.

1970

[할리우드 진출과 전성기]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돈 시겔, 마이크 니콜라스 등 유명 미국 감독들의 영화 음악을 다작으로 작업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그의 재능을 꽃피웠다.

1970년대에 모리코네는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돈 시겔, 마이크 니콜라스, 브라이언 드 팔마, 베리 레빈슨, 올리버 스톤, 워렌 비티, 존 카펜터, 쿠엔틴 타란티노 등 다작으로 유명한 미국 감독들의 영화음악을 작업했습니다.

1971

[타르가 드오로 수상]

전 세계적으로 2천2백만 장의 판매고를 달성하며 이탈리아의 영화상 '타르가 드오로'를 수상했다.

이는 그의 상업적 성공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1971년에 전 세계적으로 2천2백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하며 이탈리아의 영화상 '타르가 드오로'상을 수상했습니다.

1978

[월드컵 주제가 작곡]

FIFA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작곡하며 스포츠 분야에서도 그의 음악적 역량을 과시했다.

이는 전 세계인의 축제에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78년에는 FIFA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작곡하여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 기여했습니다.

1984

[원스 어폰 어 타임 OST]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음악을 작곡했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개봉 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 하나가 되며 그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대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으며, 이 사운드트랙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1986

[영화 '미션' OST 성공]

영화 《미션》의 사운드트랙으로 미국에서 골드 앨범을 달성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영혼을 울리는 선율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 《미션》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엔니오 모리코네는 미국에서만 골드 앨범을 달성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06

[빌보드 차트 105주 기록]

첼리스트 요요마와 협업한 '요요마가 연주하는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음악' 앨범이 빌보드 톱 클래식 앨범 차트에서 105주간 머무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의 음악이 세대를 초월하는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한 '요요마가 연주하는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음악' 앨범은 빌보드 톱 클래식 앨범 차트에서 105주간 머무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7

[아카데미 명예상 영예]

영화 음악에 기여한 위대하고 다면적인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명예상을 수상했다.

이는 그의 평생 음악 활동에 대한 아카데미의 헌사였다.

2007년에 아카데미에서 '영화음악에 기여한 위대하고 다면적인 기여'를 기리며 명예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전까지 여섯 번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던 아쉬움을 달래는 의미 있는 상이었습니다.

[한국 팬들과의 만남]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개최하여 한국 팬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그의 음악이 한국 땅에 직접 울려 퍼진 특별한 순간이었다.

2007년 10월에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개최하여 한국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2010

[폴라음악상 수상]

스웨덴의 권위 있는 상인 폴라음악상을 수상하며 세계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이 상은 '음악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그의 위상을 드높였다.

2010년에는 폴라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2015

['헤이트풀8' OST 작업]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헤이트풀8》의 음악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그에게 마침내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겨주는 영광을 선사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헤이트풀8》의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2016

[음반 판매 7천만 장 돌파]

그의 작품들이 전 세계적으로 7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하며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그의 음악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증명한다.

2016년에 이르러 그의 작품들이 전 세계적으로 7천만장 이상이 판매되었습니다.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헤이트풀8》로 최고령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평생의 한을 풀며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2007년 명예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에는 다섯 번 실패했으나, 마침내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헤이트풀8》로 유일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며 최고령 수상자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7

[최고 훈장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1등급(Cavaliere di Gran Croce OMRI)을 수훈하며 조국으로부터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그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국가의 찬사였다.

2017년 12월 27일,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1등급(Cavaliere di Gran Croce OMRI)을 수훈했습니다. 앞서 1995년 3등급, 2005년 2등급을 수훈한 바 있습니다.

2020

[음악 거장, 영면하다]

로마 병원에서 대퇴골 골절 치료 중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음악계와 영화계에 큰 슬픔을 안겼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2020년 7월 6일, 자택에서 넘어져 대퇴골 골절 부상을 입은 뒤 로마의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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