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인류학자, 실증주의자, 구조기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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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2: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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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켐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인류학자, 실증주의자, 구조기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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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 사회학을 과학적·실증적 학문으로 정립 현대 사회학의 기틀을 마련. - 사회적 사실 사회분업론 자살론 등 다수의 핵심 이론 제시. - 사회의 통합과 연대 도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 질서 탐구. - 세계 최초로 사회학 교수직을 맡아 학문적 위상 정립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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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

[프랑스의 에피날에서 출생]

독일과 접경한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8대조 이래 대대로 유대교 랍비를 지낸 유서 깊은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어린 시절 히브리어, 구약, 탈무드 등을 공부하며 유대교 규율을 배웠습니다.

프랑스 로렌 지방의 작은 도시 에피날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유대교 랍비, 어머니는 부유한 유대인 상인의 딸이었으며, 8대조 이래 대대로 유대교 랍비를 지낸 유서 깊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정규 학교 교육 외에 히브리어, 구약, 탈무드 등을 공부하며 철저히 유대교 규율을 지키는 금욕적 태도를 물려받았습니다.

1867

[에피날 중학교 입학 및 월반]

에피날 중학교에 입학하여 두 차례 월반할 정도로 탁월한 학업 능력을 보였습니다. 이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에피날 중학교에 입학하여 두 차례 월반할 정도로 탁월한 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랍비가 되기를 바랐으나, 파리에 위치한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1879

[고등사범학교 입학 및 지적 전환]

파리 명문 루이르그랑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두 번의 고배 끝에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 무렵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에 영향을 받아 유대교와 결별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게 됩니다.

파리 명문 루이르그랑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두 번 고배를 마신 끝에, 간신히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이후, 점차 사회문제에 관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 제3공화정 수립, 산업화 이후의 계급 갈등 등으로 혼란에 빠진 프랑스 사회를 재조직하는 데 이바지하려는 학교 분위기 덕분이었습니다. 이 무렵,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에 영향을 받아 점차 유대교와 결별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샤를 르누비에, 퓌스텔 드 쿨랑주, 에밀 부트루 등 당대 저명한 학자들이 그의 지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1882

[고등사범학교 졸업 및 독일 유학]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885년까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습니다. 이후 유급 휴가를 얻어 독일 라이프치히, 베를린, 마르부르크 대학 등에서 심도 있는 학문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885년까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후, 유급 휴가를 얻어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마르부르크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이행하는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1887

[보르도 대학 임용 및 결혼]

보르도 대학의 사회과학 및 교육학 전임강사로 임용되어 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유대인 여성 루이즈 줄라 드레퓌스와 결혼하여 딸 마리 벨라와 아들 앙드레아르망을 두었습니다.

보르도 대학의 사회과학 및 교육학 전임강사에 임용되었고, 그해 10월 유대인 여성 루이즈 줄라 드레퓌스와 결혼하여 딸 마리 벨라와 아들 앙드레아르망을 두었습니다. 아들은 나중에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1892

[『사회분업론』으로 박사학위 취득]

소르본 대학에서 『사회분업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듬해 이 책을 출간하며 사회학자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며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라는 핵심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소르본 대학에서 『사회분업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 이를 출간해 사회학자로서 첫발을 떼게 됩니다. 이 책에서 뒤르켐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라는 그의 사회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몽테스키외, 장자크 루소, 알렉시 드 토크빌 등 프랑스의 지적 전통과 이마누엘 칸트, 빌헬름 분트, 카를 마르크스 등 독일의 지적 전통을 결합한 결과였습니다.

1893

[『사회분업론』 출간]

박사학위 논문인 『사회분업론』을 출간하며 사회학 연구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회분업론』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라는 그의 사회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제시합니다.

1894

[보르도 대학 부교수 승진]

보르도 대학 부교수로 승진하며 학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보르도 대학 부교수로 승진했습니다.

1895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출간]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을 출간하여 사회학 연구의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이 책은 사회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뒤르켐의 실증주의적 접근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뒤르켐은 사회학을 사회적 사실이라고 하는 객관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며, 사회 현상에 거의 처음으로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사회적 사실은 개인에 외재하면서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강제력을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1896

[프랑스 대학 최초 사회학 정교수 임명]

보르도 대학 사회과학 담당 정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자리는 프랑스 대학 최초의 사회학 교수직으로,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독립적인 위상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보르도 대학 사회과학 담당 정교수로 임명되어 1902년까지 재직했습니다. 이 자리는 프랑스 대학 최초의 사회학 교수직으로 간주됩니다.

1897

[『자살론』 출간]

『자살론』을 출간하여 자살을 개인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는 역사상 거의 최초로 통계적 방법에 기반하여 자살의 사회적 유형과 원인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자살론』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뒤르켐은 프랑스 법무부의 기록 문서를 이용해 자살 관련 자료 2만 6000건을 분석하여 자살을 개인적, 심리적 현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회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사회적 연대(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규제)의 정도에 따라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 네 가지 유형을 제시하며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1902

[소르본 대학 전임강사 임명]

소르본 대학 교육과학 강좌 담당 전임강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1906년 부교수, 1913년 정교수로 승진하며 교육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소르본 대학 교육과학 강좌 담당 전임강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1906년 부교수, 1913년 정교수가 되어 191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직했습니다.

1906

[소르본 대학 부교수 승진]

소르본 대학 부교수로 승진하며 학문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소르본 대학 부교수로 승진했습니다.

1912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들』 출간]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들』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의 기원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하며, 종교가 사회 통합의 강력한 접착제이자 사회적 산물임을 강조했습니다.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들』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사회 통합의 접착제였던 종교의 권위가 허물어진 혼란의 시기에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무엇인가 탐구할 목적으로 종교의 기원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뒤르켐은 종교의 본질이 사회적 산물이며, 개인은 종교적 실천을 통해 집합 의식을 내면화하여 소속 집단 혹은 사회에 통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1913

[소르본 대학 정교수 및 '교육학과 사회학' 강좌 개설]

소르본 대학 정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소망에 따라 교육과학 강좌는 '교육학과 사회학'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프랑스 대학에서 사회학이라는 명칭이 붙은 최초의 강좌로, 사회학의 학문적 독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소르본 대학 정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정교수가 된 후 교육과학 강좌는 그의 소망에 따라 교육학과 사회학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프랑스 대학에서 사회학이라는 명칭이 붙은 최초의 강좌였습니다. 그는 191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직했습니다.

1917

[뇌졸중으로 사망]

뇌졸중으로 인해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사회학의 기틀을 마련하며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뇌졸중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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