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기번
역사가, 정치인, 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4:34
18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역사가이자 작가. 병약한 어린 시절과 파혼의 아픔 속에서도 필생의 역작 《로마 제국 쇠망사》를 완성하며 역사학의 최고봉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나폴레옹부터 처칠 애덤 스미스 등 수많은 인물에게 영감을 주며 오늘날까지도 로마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로 인정받고 있다. 학문과 정치 그리고 흥미로운 개인사를 넘나든 지성인이었다.
1737
[역사가의 탄생]
영국 런던에서 에드워드 기번이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때 귀족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기번이 태어날 무렵 복권되어 아버지는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은 그에게 '어머니와 간호사에 둘러싸인 불쌍한 아이'라는 기억을 남겼습니다.
1752
[옥스퍼드 중퇴와 종교적 방황]
15세의 어린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지만, 종교 문제로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이후 스위스 로잔으로 건너가 칼뱅주의 교육을 받으며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종교적, 지적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754
[성공회로 개종]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했던 에드워드 기번이 영국 성공회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신념과 사상 형성에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1757
[첫사랑과 독신의 삶]
20세가 되던 해, 아름다운 수잔 커쵸드와 사랑에 빠져 약혼했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파혼하게 됩니다.
이 깊은 실망과 좌절은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후에 수잔은 부유한 은행가와 결혼하여 유명한 문학가 제르멘 드 스탈을 낳게 됩니다.
1764
[《로마 제국 쇠망사》 구상]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 《로마 제국 쇠망사》를 저술하겠다는 위대한 생각을 품게 됩니다.
로마의 폐허를 보며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대한 영감을 얻은 순간이었습니다.
1770
[부친 별세 및 영국 정착]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과 유럽을 오가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영국에 완전히 정착하게 됩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활동에 전념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774
[프리메이슨 가입 및 의원 활동]
영국 런던 지구 프리메이슨에 가입하며 사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783년까지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가로서도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성과와 더불어 폭넓은 활동 영역을 보여줍니다.
1776
[《쇠망사》 1권 출간, 역사학의 정점]
로잔에서 역사상 로마와 관련된 저작 중 '세계 최고 권위'로 꼽히는 그의 필생의 역작 《로마 제국 쇠망사》 제1권을 출간하며 역사학계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이 책은 로마 제국 멸망사 연구의 최고봉으로 학자들에게 극찬받았습니다.
이 책은 나폴레옹에게 제국의 야망을, 윈스턴 처칠이 회고록을 집필하는 데 영감을 주었으며, 애덤 스미스, 토마스 칼라일, 아놀드 토인비, 버지니아 울프 등 당대 수많은 지성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지어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에 대한 반항심으로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큰 파급력을 가졌습니다.
1788
[《쇠망사》 전권 완간]
그의 불멸의 역작 《로마 제국 쇠망사》를 제6권으로 완간하며, 20년이 넘는 오랜 연구와 집필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역사학적 유산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1794
[위대한 역사가의 서거]
영국 서세스에서 평생을 학문과 집필에 바쳤던 위대한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별세하여 세필드 가족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역사학계에 큰 슬픔과 동시에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