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화가, 인상주의 화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4:23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19세기 현대적인 삶을 화폭에 담아낸 선구자입니다.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전환되는 미술사적 흐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논란작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는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역설적으로 많은 젊은 화가들을 결집시켜 인상주의 창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문을 연 분수령으로 평가받으며 단순하고 강렬한 필치와 풍부한 색채감이 특징입니다.
1832
[파리에서 태어나다]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외교관 집안의 어머니와 법관 아버지를 두었으며, 아버지는 아들이 법조계에 종사하기를 바랐지만, 삼촌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다.
1845
[롤랑 기숙학교 입학]
롤랑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미래의 예술부 장관이자 평생 친구가 될 앙토냉 프루스트를 만났다.
학업 성적은 좋지 않아 아버지의 바람인 법대 진학은 어려워 보였다.
1848
[해군 사관학교 낙방]
아버지의 바람으로 해군 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리우데자네이루 항해에 참여하며 견습생 경쟁에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하자 아버지는 그가 원하는 미술 공부를 허락했다.
1850
[미술 정식 교육 시작]
아카데미파 화가 토마스 쿠튀르르 문하에서 6년간 미술을 배웠다.
남는 시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명작들을 모사하며 자신만의 실력을 갈고닦았다.
1853
[유럽 여행과 영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여행하며 프란스 할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등 거장들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는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856
[개인 화랑 개설]
자신의 전속 화랑을 열었다.
이 시기부터 붓 터치를 간결하게 하고 중간 톤을 억제하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858
[사실주의 화풍 시도]
당시 주류였던 사실주의 화풍을 받아들여 <압생트 마시는 사람> 등 동시대의 현실적인 주제들을 그렸다.
거지, 가수, 집시, 카페 손님, 소싸움 등 일상 속 인물들을 즐겨 그렸고, 종교나 신화, 역사적 주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1863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논란]
낙선전에 충격적인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전시하여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당시 아카데미에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젊은 화가들을 마네에게 모이게 했고, 이들은 게르부아 카페에서 인상주의 회화를 잉태하는 중요한 모임을 가졌다.
비록 마네는 인상주의 모임에 친교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고, 인상파 화가들의 독자적인 전시회 참가도 거부했다.
당시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을 창시한 분수령으로 평가받으며, 후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867
[멕시코 황제 피살 사건]
프랑스 정부가 멕시코 황제로 즉위시킨 막시밀리아노 1세가 베니토 후아레스 멕시코 대통령에 의해 총살당했음에도 프랑스 정부가 이를 외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868
[정부 비판 풍자화 제작]
전년도 멕시코 황제 피살 사건에서 프랑스 정부가 보인 태도를 비꼬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 사형 집행 군인의 복장은 프랑스군을 닮았고, 뒤편의 군인 중 한 명은 나폴레옹 3세의 얼굴로 묘사되어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드러냈다.
1883
[51세 나이로 사망]
지병인 매독이 악화되어 합병증으로 고통받다가 다리 절단 수술의 후유증으로 5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