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마셜
경제학자, 신고전학파, 케임브리지 학파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1:32:34
앨프리드 마셜은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로 경제학 원리를 통해 근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수요와 공급 곡선을 제시하며 경제학을 과학적인 분석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빈민 문제 해결을 향한 열정으로 평생을 경제학 연구에 헌신한 그의 사상은 훗날 수많은 경제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842
[경제학 거장의 탄생]
런던 버몬지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앨프리드 마셜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성직자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1860
[경제학으로 향하는 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던 마셜은 부유한 영국에 빈민이 넘치는 현실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 문제를 수학적 방법으로 풀 수 없음을 깨닫고 빈민가를 직접 방문하며 경제 현상 연구에 자신의 수학 지식을 활용하기 시작, 경제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1868
[경제학 강사로 활동]
앨프리드 마셜은 케임브리지에서 모럴 사이언스 담당 강사로 임명됩니다.
그는 경제학에 수학적 엄밀함을 더해 더욱 과학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며, 경제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1870
[국제 경제 문제 연구]
1870년대에 마셜은 국제 무역과 보호주의 문제에 대한 여러 소책자를 저술하며 경제학자로서의 시야를 넓혔습니다.
이 연구는 그의 초기 경제학 사상 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1877
[케임브리지를 떠나다]
메리 펠리 마셜과 결혼했으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평의원 독신 규정 때문에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브리스톨의 신설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장으로 부임하여 다시 경제학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1879
[초기 저서 출판]
앨프리드 마셜은 1870년대 연구를 집대성한 "외국 무역의 순수 이론: 국내 가치의 순수 이론"을 출판했습니다.
같은 해, 아내 메리 펠리와 함께 집필한 "산업 경제학"을 선보였고, 이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경제학 원리'를 대체하며 큰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1881
['경제학 원리' 집필 착수]
자신의 일생을 대표할 역작이 될 "경제학 원리"의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이후 10년간 마셜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대작으로, 근대 경제학의 지평을 열게 됩니다.
1882
[영국 경제학계의 거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의 사망 이후, 앨프리드 마셜은 명실상부한 영국 경제학계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그를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1884
[케임브리지 복귀]
헨리 포셋 사망 후, 마셜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선출되어 다음 해 1월에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그가 처음 떠났던 케임브리지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885
[교수 취임 및 강연 시작]
앨프리드 마셜은 1885년 2월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정식 취임하여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경제학을 독립된 학문 분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케임브리지 학파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890
['경제학 원리' 출간]
10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경제학 원리"를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수요와 공급, 한계 효용 등 근대 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을 집대성하여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으며, 그를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수요와 공급 곡선을 그려 경제학을 시각화했습니다.
이 책은 오랜 기간 영국 경제학 교재의 표준이 되었고, 고전파 경제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신고전학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03
[경제학 독립 학과 창설]
마셜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인정받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으며, 마침내 1903년에 경제학 단독 학과를 창설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경제학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업적이었습니다.
1908
[교수직 은퇴]
건강 악화로 인해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직에서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이후에도 '경제학 원리' 제2권 완성 등 개인적인 연구 활동을 이어가려 했으나, 완벽주의적 성격과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19
['산업 무역론' 출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국제 경제 변화를 진단하며, 7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산업 무역론"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경제학 원리'에 비해 실증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1923
['화폐 신용 및 상업' 출간]
사망하기 1년 전, 마지막 저서인 "화폐 신용 및 상업"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케인즈의 정책을 비판하고 화폐량 증대 정책을 주장하는 등, 마지막까지 경제학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1924
[위대한 경제학자의 서거]
1924년 7월 13일, 81세의 나이로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기초를 닦고 수많은 후학에게 영향을 미치며, 현대 경제학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학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