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화가, 독학 화가, 소박파, 근대 미술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22:20:08
• 프랑스의 독학 화가. • 세관원으로 일하며 그림을 시작해 일요화가 세관원 루소로 불림. • 전문 미술 교육 없이 환상적이고 원초적인 세계를 독자적 화풍으로 표현. • 초기에는 조롱받았으나 피카소 등에게 영감을 주며 사후 소박파의 거장으로 인정받음.
1844
1864
1869
1871
[세관원 '르 두아니에']
파리시 입시세관 직원이 되었고, 이때 '르 두아니에(세관원) 루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생활은 22년간 이어졌다.
1880
['일요화가'의 시작]
세관원으로 일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려 '일요화가'로도 불리게 된다.
1884
1885
1886
1888
[첫 아내와의 슬픈 이별]
10년 아래인 아내 클레망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7명의 아이 중 5명을 먼저 떠나보낸 후였다.
1893
[그림에 인생을 걸다]
49세에 세관을 퇴직하고 연금과 소묘 강사, 개인 화실 운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오직 그림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1894
1897
1899
1903
[두 번째 아내 사망]
재혼 4년 만에 아내 조세핀누가 사망하는 슬픔을 겪었다.
이 시기부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밀림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1905
[피카소 등의 주목]
살롱 도톤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독특한 화풍이 피카소, 아폴리네르 등 당대 주요 예술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1907
[최초의 공식 인정]
걸작 <뱀을 다루는 여자>를 발표했고, 독일 비평가 우데가 그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하며 앙리 루소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1908
[피카소의 '루소의 밤']
피카소가 루소의 작품을 구매한 것을 기념해 '루소의 밤' 파티를 열었다.
이 파티는 그의 인간미와 예술적 순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09
[아폴리네르의 영감]
시인 아폴리네르의 주문으로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을 그린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를 제작했다.
아폴리네르는 루소를 돕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지불했다고 전해진다.
1910
[파리에서 영면하다]
발의 괴저로 인해 파리의 자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은 사후에야 비로소 참신성과 원시적인 자연스러움을 인정받으며 높이 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