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
패션 디자이너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22:16:34
•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 본명 김봉남. 1962년 살롱 앙드레를 열어 한국 최초 남성 디자이너의 역사를 시작했다. • 파리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독창적이고 화려한 패션쇼를 선보이며 한국 패션의 위상을 높였다. • 마이클 잭슨도 그의 의상을 즐겨 입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앙드레 김의 날이 제정될 정도로 국제적 명성이 높았다. • 문화재 환수 기금 마련 등 사회 공헌에도 적극적이었으며 평생에 걸쳐 문화훈장을 수훈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1935
[패션 거장의 탄생]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에서 본명 김봉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중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화니 페이스'를 보고 패션에 매료되어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 의상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없어 외국의 패션 잡지를 구하며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했다.
1961
1962
[한국 최초 남성 디자이너]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오픈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라는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반도 호텔에서 첫 데뷔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이름을 알렸고, 배우 엄앵란이 초창기 고객으로 인연을 맺었다.
성공시대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당시에는 남성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주변의 걱정이 많았으나, 그는 오직 실력으로 편견을 깼다.
1964
[세기의 커플 의상 담당]
당대 최고 스타였던 신성일-엄앵란 부부의 결혼식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며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6
[파리 최초 패션쇼 개최]
한국 디자이너로서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단독 패션쇼를 개최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한국 패션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으며, 이후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활발히 패션쇼를 이어갔다.
특히 그의 패션쇼에는 주한 외교관들이 모델로 참여하여 문화 외교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1980
[국제 행사 의상 담당]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주디자이너로 선정되어 세계적인 미인들의 의상을 담당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수복을 디자인하며 국가적인 행사에 크게 기여했다.
1996
[마이클 잭슨의 선택]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한국 내한 공연 당시 앙드레 김과 인연을 맺은 후, 그의 의상에 매료되어 즐겨 입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은 전속 디자이너를 제안했으나, 앙드레 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서 거절하고 매년 맞춤복 수십 벌을 판매하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마이클 잭슨은 콘서트 무대보다는 공식석상이나 행사에서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었으며, 2009년 사망 전 마지막 공식석상 'This is it' 기자간담회에서도 앙드레 김의 옷을 입으며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1997
[화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이는 그의 예술적 업적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이었다.
1999
['앙드레 김의 날' 제정]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고, 11월 6일이 '앙드레 김의 날(Andre Kim's Day)'로 공식 선포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그의 국제적인 위상과 영향력을 확고히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2000
[프랑스 예술문학훈장]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을 수훈하며, 전 세계적으로 그의 예술성과 독창적인 디자인을 인정받았다.
2002
[몽골 최초 패션쇼 개최]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며 동아시아 문화와 패션을 파격적으로 접목하는 시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4년과 2006년에도 몽골에서 추가 패션쇼를 열었다.
2005
[폐암 판정 속 열정]
폐암 판정을 받았으나 주변에 알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패션쇼 일정을 소화하며, 병마에도 굴하지 않는 초인적인 예술 열정을 보여주었다.
2006
[문화재 환수 기금 마련]
서울에서 '문화재 환수 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를 열어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며, 예술을 통한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앙코르와트 최초 패션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하는 파격적인 시도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대 유적과 현대 패션의 만남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8
[보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관문화훈장(3등급)을 수훈하며, 문화 예술계의 거장으로서 그의 입지를 다시 한번 공고히 했다.
2010
[상하이 마지막 패션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0 Preview in China' 패션쇼가 그의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지병으로 투병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아름다운 패션 세계를 선보였다.
[패션 거장의 별세]
저녁 7시 40분,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폐렴과 대장암 악화로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은 대한민국 패션계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겼다.
그는 이미 2005년에 폐암 판정을 받았으나, 주변에 알리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금관문화훈장 추서]
서거 다음 날인 8월 13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독창적인 예술 활동과 국가 문화 발전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기리는 마지막 예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