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작가, 철학자, 언론인, 노벨상 수상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22:14:59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자란 작가이자 철학자 언론인입니다. 이방인 시지프 신화 페스트 등 부조리 철학을 담은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1957년 44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연소 수상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전체주의에 맞섰습니다. 46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며 그의 삶과 작품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가난한 알제리 소년
- 폐결핵과 방황의 시작
- 철학과 예술의 시작
- 공산당 활동과 제명
- 첫 에세이집 '안과 겉'
- 기자 활동과 에세이 '결혼'
- 참전 거부와 파리스와 근무
- 대표작 '이방인' 발표
- 레지스탕스 '콩바' 활동
- '페스트' 집필과 사르트르와의 만남
- 희곡 '오해'의 성공
- 콩바 편집장 및 작품 활동
- 히로시마 원폭 반대
- '페스트' 출간과 사임
- 인권 운동 시작
- '반항하는 인간' 출판과 사르트르와의 결별
- UNESCO 임원직 사임
- 동베를린 파업 비난
- 알제리 독립전쟁과 딜레마
- 소설 '전락' 발표
- **44세 노벨 문학상 수상**
- 알제리 문제로 좌파와 갈등
-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 사망
- 미완성 유작 '최초의 인간'
1913
[가난한 알제리 소년]
프랑스령 알제리 몽도비에서 가난한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했고, 스페인 출신의 어머니는 문맹에 청각장애인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를 깊이 사랑하며 성장했다.
1914
[아버지의 전사]
제1차 세계대전의 마른 전투에서 아버지 뤼시앵 카뮈가 사망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를 잃게 되었다.
1923
[리세 입학, 빈부격차 경험]
프랑스의 중등학교인 리세에 입학했으나, 이곳에서 부유한 학생들과 자신의 가난한 처지 사이의 빈부격차를 크게 느끼며 어머니가 하녀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1930
[폐결핵과 방황의 시작]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가정교사, 자동차 수리공 등 다양한 임시직을 전전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 시기에 평생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만났다.
1934
[첫 결혼과 이혼]
시몬 이에와 결혼했으나, 아내가 모르핀 중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치의와 불륜 관계임이 밝혀져 1940년 이혼하게 된다.
1935
[철학과 예술의 시작]
플로티누스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마쳤다.
이와 함께 아마추어 극단을 주재하며 예술적 재능을 키웠고, 축구팀 골키퍼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한 멋쟁이였다.
[공산당 활동과 제명]
알제리인 차별 해소를 위해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고, 이후 알제리 공산당으로 옮겨 '노동자의 극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알제리 인민당과의 친분 등 온건한 입장을 고수하다 공산당에서 제명당했다.
1936
['행복한 죽음' 집필]
사후에 출간된 소설 '행복한 죽음'을 이 시기에 집필했다.
이 작품은 '이방인'과 흡사한 인물 뫼르소의 특징을 그렸다.
1937
1938
[기자 활동과 에세이 '결혼']
두 번째 에세이집 '결혼'을 발표했으며, 좌익 성향의 신문 '알제 뤼페블리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문화 기사와 르포를 주로 썼다.
[희곡 '칼리굴라' 작성]
부조리 논리를 추구하는 로마 황제에 관한 연극 '칼리굴라'를 작성했다.
이 작품은 1945년에야 상영될 수 있었다.
1939
[참전 거부와 파리스와 근무]
독일에 저항하기 위해 참전을 신청했지만 폐결핵으로 프랑스 군대 입대가 거절당했다.
이후 일간지 '파리스와'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1940
1942
[대표작 '이방인' 발표]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다룬 소설 '이방인'과 부조리에 관한 문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동시에 발표하며 사상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43
[레지스탕스 '콩바' 활동]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지하 레지스탕스 조직 '콩바'에 가담하여 나치에 저항했으며, '보샤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트' 집필과 사르트르와의 만남]
결핵 치료를 위해 프랑스 알프스에 머물며 소설 '페스트'와 희곡 '오해'를 집필했다.
이후 파리로 돌아와 장폴 사르트르와 만나 친구가 되었다.
1944
1945
[콩바 편집장 및 작품 활동]
연합군 파리 해방 후 '콩바' 신문의 편집자가 되어 전후를 보도했다.
또한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판하고 희곡 '칼리굴라'를 상영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히로시마 원폭 반대]
프랑스 편집인으로서는 드물게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반대 논설을 '콩바'에 실어 주목받았다.
1947
['페스트' 출간과 사임]
'콩바'가 상업적인 신문이 되자 사임했다.
이 시기에 역대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소설 '페스트'를 출간했으며, 쌍둥이 자녀 카트린, 장과 함께 파리에 머물렀다.
1948
1950
1951
['반항하는 인간' 출판과 사르트르와의 결별]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비판하며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를 옹호한 수필 '반항하는 인간'을 출판했다.
이 책은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장폴 사르트르와의 논쟁을 통해 사실상 절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2
[UNESCO 임원직 사임]
UN이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 이에 반발하여 UNESCO 임원직을 사임하며 인권 문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었다.
1953
[동베를린 파업 비난]
'시사평론2'를 출간했으며, 동베를린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한 소비에트 연방의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1954
[알제리 독립전쟁과 딜레마]
에세이집 '여름'을 출간했으며, 알제리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어머니가 알제리에 살고 있던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를 옹호하며 도덕적 딜레마에 빠졌다.
1956
[소설 '전락' 발표]
장편소설 '전락'을 출간하며 문학적 원숙기를 보냈다.
또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란을 소비에트 연방이 잔인하게 진압한 것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1957
[44세 노벨 문학상 수상]
문학에 대한 지대한 공로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연소 수상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이 시기에 단편집 '적지와 왕국'과 사형 제도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담은 에세이 '단두대에 대한 성찰'을 출간했다.
[알제리 문제로 좌파와 갈등]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알제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고,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 좌파 지성으로부터 더욱 극심한 배척을 야기했다.
1958
1960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 사망]
상스 근처 빌블르뱅에서 친구 미셸 갈리마르가 운전하던 자동차 사고로 46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사망했다.
생전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을 가장 잘못된 죽음이라고 말했던 그의 말은 역설적인 비극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소련 체제 비판으로 인한 암살 의혹도 제기되었다.
1970
[유작 '행복한 죽음' 출판]
사후 유작으로 소설 '행복한 죽음'이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그가 젊은 시절 집필했던 것으로, '이방인'의 인물과 흡사한 뫼르소를 그렸다.
1994
[미완성 유작 '최초의 인간']
그가 죽기 직전까지 집필했던 미완성 소설 '최초의 인간'이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그의 알제리 어린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