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

화가, 판화가, 조각가, 르네상스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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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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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판화가, 조각가, 르네상스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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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 조각가입니다. 이탈리아 유학으로 르네상스 미술을 접했으나 북유럽적 독자 화풍을 창조하며 수채화와 판화에서 혁신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특히 <요한 묵시록> 목판화와 <기사 죽음과 악마> 동판화는 유럽 미술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기록됩니다. 인체 비례론 등 이론 연구에도 매진하며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 사상가로서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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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

[알브레히트 뒤러 탄생]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알브레히트 뒤러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 조각가로 성장합니다.

1484

[13세 자화상 제작]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금세공을 배우던 뒤러는 13세에 자화상 동판화를 그리며 일찍이 예술적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1490

[첫 장기 여행 시작]

화가가 되기 위해 미하엘 볼게무트의 문하생이 된 뒤러는 예술적 영감을 찾아 오버라인 지역을 편력하는 첫 장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는 마르틴 숀가우어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1494

['바보배' 목판화 제작]

바젤에서 활동하며 세바스티안 브란트의 저서 〈바보배〉의 삽화로 유명한 목판화를 제작하여, 그의 판화가로서의 초기 역량을 선보였습니다.

[아그네스 프라이와 결혼]

첫 장기 여행을 마치고 뉘른베르크로 돌아온 뒤러는 명망 높은 가문의 아그네스 프라이와 결혼했으나,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었습니다.

[제1차 이탈리아 여행]

결혼 3개월 만에 홀로 베네치아로 떠난 첫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러는 르네상스 미술의 영향을 깊이 받아 이후 독일 회화 발전에 크게 기여할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여행 중 그린 수채화는 유럽 풍경화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1497

[화가로 독립]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뒤러는 독립 화가로 활동하며 뉘른베르크에 작업장을 열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498

[<요한 묵시록> 간행]

뒤러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높인 목판화 연작 <요한 묵시록>을 간행했습니다.

이 작품은 유럽 목판화 역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16점 중 <네 사람의 기사>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502

[첼티 책 삽화 제작]

인문주의 학자 콘라트 첼티의 저서 〈지형학으로서의 사랑〉의 삽화를 제작하며 인문주의와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첼티는 뒤러를 제2의 아펠레스라 칭송했습니다.

1504

[<동방박사의 경배> 제작]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동방박사의 경배>를 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뒤러는 초상화와 자화상을 다수 그렸으며, 판화 분야에서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1505

[제2차 이탈리아 여행]

베네치아로 향한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러는 조반니 벨리니 등 당대 거장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색채의 힘을 발견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했습니다.

베네치아 당국으로부터 정착 제안을 받았으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1506

[대규모 작품 <묵주> 제작]

베네치아 거주 독일 상인들의 의뢰로 바르톨로메우스 교회를 위한 대규모 그림 <묵주>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훗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구입하여 프라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509

[뉘른베르크 시 미술가 임명]

뉘른베르크 시위원회로부터 미술가로 임명되어 도시의 예술 계획에 깊이 관여하며 공식적인 입지를 확보했습니다.

이 시기에 다수의 중요한 목판화 연작을 간행했습니다.

1510

[목판화 연작 활발히 간행]

<작은 크기의 수난>, <커다란 크기의 수난>, <마리아의 삶> 등 중요한 목판화 연작들을 이 시기에 활발히 간행하며 판화가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1512

[황제에게 복제 금지 특권 획득]

막시밀리안 황제로부터 자신의 목판화와 동판화 복제를 금지하는 특별한 권리를 획득하며, 당대 예술가로서의 높은 위상과 작품의 독점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1513

[3대 마스터피스 동판화 제작]

그의 가장 유명한 동판화 <기사, 죽음과 악마>,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 <멜랑콜리아I>이 이 시기에 제작되며, 뒤러의 판화 예술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514

[서양 최초 병약한 인물 초상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두 달 전, 목판화로 어머니의 초상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죽을 정도로 병약해진 인간을 그린 최초의 초상화라는 기록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1518

[아우크스부르크 제국회의 참석]

뉘른베르크 시 대표로 아우크스부르크 제국회의에 참석하여 여러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에 비례학 등 이론적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1520

[네덜란드 개선행진 같은 여행]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로 떠난 여행은 마치 개선행진처럼 열렬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안트베르펜 시의 정착 제안을 거절하고, 황제 카를 5세로부터 특권을 재확인받으며 유럽 예술계의 최고 거장임을 입증했습니다.

1526

[대형 목판화 및 걸작 초상화 제작]

바오로, 베드로 등 사도들의 실물 크기 목판화를 제작하여 뉘른베르크 시청사에 기증했습니다.

또한 그의 그림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상인 <히에로니무스 홀츠슈우어>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528

[알브레히트 뒤러 사망]

말라리아로 오랜 고통을 겪던 뒤러는 뉘른베르크에서 56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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