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살리에리
궁정 음악가, 고전주의 작곡가, 오페라 작곡가, 음악 교육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8- 16:00:42
-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작곡가이자 18세기 오페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고전주의 음악가 -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을 가르친 위대한 교육자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의 논란으로 인해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탄생할 정도로 흥미로운 인물 - 생전 높은 명성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으나 후대에는 모차르트의 그림자에 가려진 비운의 2인자로 기억됨
1750
1750년 8월 18일 이탈리아 레냐고에서 태어났으며, 주세페 타르티니의 제자였던 형 프란체스코 살리에리와 레냐고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인 주세페 시모니 밑에서 음악을 배웠다. 어린 시절 단 것을 좋아하고 독서와 음악에 열정적이었다.
1766
1763년과 1766년 사이에 양친을 모두 잃었으며, 파두아에 살던 형제에게 거두어져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1765년 또는 1766년, 베네치아의 명문 귀족 조반니 모체니고가 살리에리의 후견인이 되었다. 모체니고가 후견인이 된 정확한 이유는 불확실하나, 부친과의 사업상 인연 때문으로 추측된다.
베네치아에서 조반니 바티스타 페세티와 페르디난도 파치니에게 음악을 배우던 중 플로리안 레오폴드 가스만을 만났고, 가스만은 그의 재능에 감명받아 1766년 살리에리를 빈으로 데려가 음악 교육을 받게 했다. 이후 그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제자도 되었다.
1784
[오페라 '다나이드' 파리 상연]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와 공동 작업한 오페라 '다나이드'가 파리에서 상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784년, 스승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와의 공동 작품인 오페라 '다나이드 (Les Danades)'가 파리에서 성공적으로 상연되었다. 이는 그의 43편의 오페라 중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1788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악장으로 임명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악장(궁정작곡가)으로 임명되어 빈에 정주하며 높은 명성을 쌓았다.
1788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작곡가로 임명되었고, 사망 직전인 1824년까지 이 지위를 유지했다. 그는 빈에서 작곡가로서 특히 오페라, 실내악, 종교음악 분야에서 높은 명성을 쌓았다.
1818
1818년까지 '음악예술가협회'의 지휘자를 겸임하며 빈의 음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824
1824년 궁정작곡가 직위에서 은퇴하며 50여 년간 이어진 합스부르크 왕가 궁정에서의 공식적인 음악 활동을 마무리했다.
1825
1825년 5월 7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음악에 헌신했으며, 고전주의 시대의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