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비발디
작곡가, 바이올린 연주가, 사제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4- 01:22:24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가. 붉은 머리색과 사제 신분으로 붉은 머리의 사제 별명을 얻음. 병약하여 사제 직무 대신 음악에 전념 독창적 작품세계 구축. 약 500곡 기악곡과 40여 편 오페라를 남긴 다작의 거장. 대표작 사계는 표제 음악의 선구적 걸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음. 독주 콘체르토 양식을 확립 바흐 등 후대 작곡가에 지대한 영향. 말년은 빈궁했지만 그의 음악은 재발견되어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1678
[베네치아 출생]
붉은 머리카락으로 인해 평생 '붉은 머리의 사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될 안토니오 비발디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유명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1701
['붉은 사제' 서품]
23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약한 몸 때문에 미사를 올리기 어려워 작곡과 성가대 업무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붉은 머리의 사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때로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1703
[피에타 고아원 근무 시작]
베네치아의 여자 고아원 겸 음악학교인 피에타 고아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곳은 비발디가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수많은 오페라와 기악곡을 작곡하며 명성을 쌓는 중요한 활동 무대가 되었다.
1716
[피에타 고아원 합주장 취임]
피에타 고아원 밴드부의 합주장이 되었다.
비발디가 이끈 학생 오케스트라는 당시 유럽에서도 명성을 떨쳤으며, 그는 이곳에서 독주 콘체르토의 안정된 양식을 확립하는 등 중요한 음악적 발자취를 남겼다.
1741
[빈에서 쓸쓸한 죽음]
황제 카를 6세의 후원을 받기 위해 빈으로 떠났으나, 결국 빈궁 속에 객사하여 빈민묘지에 쓸쓸히 안치되었다.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