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
건축가, 예술가, 문화유산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22:04:25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독창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곡선과 색채 빛을 조화시킨 건축 양식을 개척했습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카사 밀라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7개 작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인류의 보물로 인정받았습니다. 말년까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에 헌신했으나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건축물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인에게 깊은 영감과 경외를 선사합니다.
1852
[천재 건축가의 탄생]
스페인 카탈루냐 레우스(혹은 리우돔스)에서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펼칠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안토니 플라시트 길롐 가우디 이 코르네트로, 어머니로부터 안토니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관찰하며 건축적 영감을 키웠을 그에게는 훗날 세계적인 건축가가 될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878
[비센스 주택 착공]
가우디의 초기 건축 실험을 엿볼 수 있는 비센스 주택이 착공되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그의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알리는 첫 걸음이 되었으며, 훗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1884
[사그라다 파밀리아 착공]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당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착공되었습니다.
가우디는 이후 평생을 이 성당 건축에 바쳤으며, 그의 모든 건축적 이상과 신념이 집약된, 아직까지 미완성인 세계 최고(最古)의 미완성 건축물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탄생 입면과 지하경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1885
[구엘 저택 착공]
가우디의 주요 후원자인 에우세비 구엘의 저택이 착공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가우디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며,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의 건축적 위상을 증명했습니다.
1898
[구엘 지하경당 착공]
가우디가 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경당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 경당은 가우디의 혁신적인 구조 실험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00
[구엘 공원 착공]
바르셀로나의 상징 중 하나인 구엘 공원이 착공되었습니다.
가우디의 자연주의적 건축 철학이 집약된 이 공원은 동화 같은 경관과 독특한 건축물로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1904
[카사 바트요 착공]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명소인 카사 바트요가 착공되었습니다.
용의 비늘 같은 지붕, 해골을 연상시키는 발코니 등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가우디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줍니다.
1905
[카사 밀라 착공]
파격적인 외관으로 '채석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카사 밀라가 착공되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가우디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로, 자연의 유기적인 곡선을 건축에 접목한 선구적인 시도로 평가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918
[사그라다 파밀리아 헌신]
가우디는 평생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건설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이 위대한 건축물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결국 살아생전에는 끝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1926
[운명을 바꾼 사고]
미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가우디는 노면 전차에 치이는 비극적인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허름한 옷차림을 보고 노숙인으로 오해하여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고, 이는 그의 비극적인 최후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고 발생 후, 운전수는 그를 방치하고 떠났고, 택시 기사들은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승차를 거부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병원마저 그를 진료 거부하여 빈민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뒤늦게 신원이 확인된 후 친척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가우디는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들에게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며 거부하고 빈민 병원에 남았습니다.
[천재 건축가의 서거]
노면 전차 사고의 여파로 가우디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 건축계에 큰 슬픔을 안겼으며, 그가 남긴 수많은 명작들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안장]
가우디의 장례식은 수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그가 평생을 바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어, 영원히 그의 걸작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가우디 사망 후, 그를 방치했던 노면 전차 운전사는 파직되었고, 승차를 거부한 택시 운전수 3명과 진료를 거부했던 병원들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인간적인 도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