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고구려, 산성, 전쟁 유적, 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2:57
삼국시대 고구려와 당나라 국경에 위치했던 전략적 요충지. 645년 당 태종의 10만 대군을 88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물리치며 고구려를 지켜낸 역사적인 산성입니다. 이후 고구려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으나 671년 결국 당에 함락되며 그 역할을 마쳤습니다.
645
[당나라, 요동 성 함락]
645년 고구려 침공 당시, 당나라 대군이 요동 지역의 방어선을 뚫고 주요 성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갑니다.
고구려가 격렬히 저항했지만,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이 차례로 함락되며 당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안시성으로 진격해 압박을 가했습니다.
[당 태종, 고구려 침공]
수나라를 멸망시킨 당 태종이 오랜 꿈이었던 고구려 정벌을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감행합니다.
치밀한 계획 아래 군량, 선박, 공성구를 준비하고 고구려 변경을 정탐했죠.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대신들을 살해하고 집권한 것을 구실 삼아, 당의 10만 대군이 요수를 건너 현도성으로 진격하며 대규모 침공의 막이 오릅니다.
[주필산 전투 패배]
안시성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고구려-말갈 연합군 15만 명이 안시성 동남쪽 주필산에서 당나라 군대와 맞섰으나,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이 패배로 안시성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으며, 남쪽으로는 신라의 공격, 북아시아 설연타와의 외교 실패 등으로 고구려는 안시성 지원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안시성, 맹렬히 저항]
고립무원에 빠진 안시성을 향해 당나라가 맹공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당은 항복을 권유하는 동시에, 당시 가장 위력적인 성 공격 무기인 투석기 '포거'와 돌격용 수레 '충거'를 총동원했죠.
그러나 안시성 병사들은 이를 번번이 물리치고, 무너진 성벽마저 재빨리 수리하며 철통 같은 방어를 선보여 당나라군을 당황시켰습니다.
[토산 붕괴와 고구려의 역습]
당나라군은 60일 동안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안시성 성벽보다 높은 거대한 토산을 쌓아 공격 거점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토산이 무너지면서 성벽 일부가 함께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구려군은 무너진 성벽 틈으로 뛰쳐나가 토산을 기적적으로 점령하며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안시성, 당 태종 퇴각시키다]
토산 점령에 실패한 당나라는 3일간 맹렬히 공격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고, 작전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추워지는 겨울 날씨와 바닥난 군량으로 인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당 태종은 88일간의 길고 처절했던 안시성 포위를 풀고 9월 18일, 마침내 퇴각을 명령합니다.
이로써 안시성은 고구려를 지켜낸 위대한 승리의 상징이 됩니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자의 이름은 '삼국사기' 등의 기본 사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조선 중기 이래의 야사에서는 양만춘(梁萬春 또는 楊滿春)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싸움에서 당 태종은 눈에 화살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고려 후기 문헌을 통해 전해집니다.
668
[고구려 멸망]
645년 안시성 전투에서 당 태종을 물리쳤던 고구려였지만, 끊임없는 당나라의 침공과 신라와의 연합 공격 끝에 결국 668년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671
[안시성, 당에 함락되다]
고구려 멸망(668년) 후, 안시성은 검모잠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부흥운동의 중요한 요충지가 됩니다.
한때 당 태종을 물리친 성의 기상을 이어 부흥을 꿈꿨으나, 안타깝게도 671년 7월 당나라 군대에 다시 함락되며 고구려 부흥운동의 마지막 불꽃마저 꺼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