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

인종 차별 정책,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사, 사회 운동, 극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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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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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 정책,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사, 사회 운동, 극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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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는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시행된 극단적인 인종 분리 정책입니다. 백인 소수 정권이 유색인종 특히 흑인에게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차별과 억압을 가하며 인종별 분리를 법제화했습니다. 이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 그리고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들의 끊임없는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결국 1990년대 초 협상을 통해 해체되기 시작하여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완전히 폐지되며 민주주의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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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간디, 차별에 맞서다]

젊은 변호사 마하트마 간디는 남아공에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쫓겨나고 기차에서 내던져지는 등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 사상의 중요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1913

[흑인 토지 소유 제한]

영국 식민지주의의 유산으로 흑인들의 백인 거주구역 접근과 거주 이동을 통제하는 '통행법'과 유사한 '토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아파르트헤이트의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초기 인종 분리 정책이었습니다.

1917

[아파르트헤이트 용어 탄생]

보어인 얀 크리스티앙 스뮈츠(훗날 총리)의 연설에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남아공의 인종 분리 정책을 지칭하는 공식 용어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48

[아파르트헤이트 시작]

국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며 '아파르트헤이트'를 남아공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했습니다.

인종 간 혼인 금지법안 등 인종 분리를 법률로 제정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국가 주도의 체계적인 인종 차별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국민당은 얀 스뮈츠의 연합당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며 다니엘 프랑수아 말란의 리더쉽 아래 아프리카너 정당(AP)과 연정을 구성, 즉시 아파르트헤이트 이행에 착수했습니다. 인종간 혼인금지법안이 통과되었고, 개인은 인종에 따라 분류되었으며, 이를 확인하기 위한 인종분류표가 만들어졌습니다.

1950

[핵심 차별 법안 줄줄이 통과]

인종 간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한 '배덕법', 모든 국민의 인종 정보를 등록증에 표시하게 한 '주민등록법', 흑인 탄압에 악용된 '반공법' 등 핵심적인 차별 법안들이 줄줄이 제정되었습니다.

특히 '집단지구법'은 국토를 인종별 거주 구역으로 나누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근간을 마련했습니다.

'배덕법'은 백인이 유색인종과 갖는 성관계를 부도덕한 범죄행위로 처벌했습니다. '주민등록법'은 만 16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신분증을 만들 것을 의무화하고 국민의 인종정보를 흑인, 백인, 컬러드, 인도인 중 하나로 분류하여 등록증에 표시했습니다. '반공법'은 남아프리카 공산당 등 정부가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규정한 모든 활동을 금지했으며, 흑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데 악용되었습니다. '집단지구법'은 국토를 인종에 따라 특정 인종만 이용 및 거주할 수 있는 인종구역으로 나누어 아파르트헤이트의 핵심법률로 간주됩니다.

1951

[흑인 분리, 권리 박탈]

'반투자치법'이 제정되어 흑인들을 '반투스탄'(불모지)에 집단 거주시키고 남아공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여 외국인 근로자로 만들려는 의도가 드러났습니다.

이 외에도 '불법거주금지법', '건축원주노동자법' 등이 제정되어 흑인들의 도시 거주와 경제 활동을 극도로 제한하고 통제했습니다.

'반투자치법'은 흑인들만의 분리된 정부를 규정했습니다. '불법거주금지법'은 정부가 대도시의 흑인 슬럼가를 합법적으로 철거하기 위한 법률이었습니다. '건축원주노동자법 및 원주자징수법'은 대도시(백인 지역)에 합법 거주하는 흑인 노동자가 거주하는 집의 백인 건물소유주가 흑인 노동자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법률이었습니다.

1953

[공공시설·교육 분리 강화]

인종별로 공공편의시설(식당, 수영장, 화장실 등) 사용을 금지하는 '시설분리보존법'과 모든 흑인 아동의 취학을 정부 통제하에 두는 '반투교육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인종별 분리 교육으로 흑인 교육의 질을 의도적으로 낮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려는 정책이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인종별 분리교육에 큰 중점을 두었으며, 흑인에게 제공되는 교육 시스템은 백인, 컬러드, 인도인에게 제공되는 교육에 비하여 질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통행법은 더욱 강화되어 흑인들은 신분증명서류 없이는 백인지구 출입이 통제되었고, 백인 거주지역에서 이주 허가 없이는 체류가 금지되었습니다. 흑인 남성 노동자는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습니다.

1954

[흑인 도시 이주 통제]

'반투도시지구법'이 제정되어 흑인 인구의 대도시 이주를 삭감하고 통제했습니다.

이는 백인 중심 도시의 인종 구성을 유지하고, 흑인들의 경제적 기회와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정책이었습니다.

1955

[유색인 투표권 박탈 시도]

말란에 이어 수상이 된 J.G.스트레이돔은 케이프 주에서 유색인종과 흑인의 투표권을 박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법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당 성향의 대법관을 대거 임명하고 상원 정원수를 늘려 국민당이 다수를 차지하도록 조정하며 투표권 박탈 법안 통과를 강행했습니다.

1956

[고용 차별, 투표권 박탈]

고용에서 인종차별을 정형화시킨 '광산노동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또한 남아공 국회 양원에서 인종별 분리투표 법안이 통과되어 케이프 주의 유색인종은 일반적 투표권을 완전히 박탈당하며 정치적 권리마저 빼앗겼습니다.

1958

[홈랜드 시스템 구상]

베르부어드 박사가 권력을 획득하며 '흑인자치정부촉진법'을 통해 '홈랜드 시스템' 구축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흑인 집단 거주지를 남아공에서 분리된 독립 국가로 만들고, 흑인들의 남아공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려는 거대한 '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시작이었습니다.

흑인자치정부촉진법은 홈랜드 또는 반투스탄이라고 불리는 흑인집단거주지를 남아공에서 분리된 독립국가로 만들고, 흑인들에게 해당 홈랜드 안에서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홈랜드가 사실상 독립한 후에도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여 남아공 정부의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국제사회는 홈랜드의 독립을 남아공에 의한 인종차별적 괴뢰국으로 보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59

[홈랜드 경제, 교육 분리]

'반투투자법인법'은 홈랜드 내부에 고용을 창출하려는 명목으로 제정되었고, '대학교육확장법'은 대학을 흑인, 컬러드, 인도인 등 인종 집단별로 분리시켜 고등교육마저 철저히 차별적으로 통제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1967

[홈랜드 개발 명분]

'천연자연이용법'은 정부가 백인 도시의 산업 발전 대신 산업 시설을 홈랜드 국경 근처에 옮기도록 한 법률입니다.

이는 홈랜드의 흑인들이 홈랜드 근처에서 일자리를 찾아 홈랜드의 경제적 안정에 기여하도록 하려는 정책이었으나, 실제로는 백인 기업의 수익 창출을 돕는 방식이었습니다.

1970

[흑인, 남아공 국적 상실]

'홈랜드 시민권법'은 홈랜드 거주 흑인들에게서 남아공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외국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백인 소수민족이 흑인지구를 독립시킴으로써 인구 대비 우위를 유지하려는 극단적인 책략이었습니다.

1974

[국제사회, 남아공 제재]

국제연합 총회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의결권이 박탈되었습니다.

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와 제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아프리칸스어 강제 교육]

홈랜드 외 지역에서 아프리칸스어와 영어의 사용을 50대 50으로 균등하게 규정하는 '아프리칸스어 매개 법령'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흑인들에게 백인의 언어를 강요하는 차별 정책이었습니다.

1976

[소웨토 흑인운동 발발]

아프리칸스어 교육 문제로 소웨토 행동위원회(SAC)가 중심이 된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흑인운동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백인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의 저항 의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78

[아자니아 운동 계승]

소웨토 항쟁을 계승한 아자니아 인민조직(AIAPO)이 결성되었으나, 백인 정권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이는 흑인운동에 대한 백인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1983

[유색인 투표권 개헌 통과]

흑인 이외의 유색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균열을 보여주는 변화였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흑인은 제외된 반쪽짜리 개혁이었습니다.

1984

[흑인 저항 가속화]

유색인종회의가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외된 흑인들의 파업과 시위,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무장항쟁은 더욱 가속되었습니다.

백인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비극적인 유혈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1990

[아파르트헤이트 해체 협상]

남아공 백인 정부와 흑인 대표인 아프리카 민족회의 및 넬슨 만델라 간의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40년 넘게 이어져 온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급속히 해체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1991

[인구 등록법 폐지]

아파르트헤이트의 핵심 법률 중 하나인 인구 등록법이 폐지되었습니다.

이 법은 모든 국민을 인종별로 분류하는 근거였으며, 그 폐지는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이 종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남아공 인종 분류 종식]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인종 분류를 종식했습니다.

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인종별 신분 구분을 없애는 중요한 단계로, 차별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1994

[아파르트헤이트 완전 폐지]

민주적 선거에 의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의 완전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이는 남아공의 오랜 인종 차별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민주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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