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독립 전쟁

전쟁, 독립운동, 게릴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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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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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독립운동, 게릴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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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배에 맞서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벌인 치열한 게릴라전. 마이클 콜린스 등의 활약과 영국군의 강경 진압이 충돌하며 수많은 희생이 발생했다. 결국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아일랜드로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이는 또 다른 비극의 서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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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부활절 봉기 선언]

순수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에게 아일랜드 독립 운동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사건으로, 독립 아일랜드 의회는 이 선언을 비준하며 독립 전쟁의 불씨를 지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주요 상징 중 하나다.

1919

[게릴라전 확산]

아일랜드 의용병들이 영국 정부 시설을 공격하고 무기 및 군자금을 약탈하며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영국 주재 사무행정 치안판사 존 밀링이 첫 희생자가 되었고, 보어족의 급습 전술을 모방해 영국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RIC 공격 시작]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은 아일랜드 내 영국 정부의 눈과 귀 역할을 하던 왕립 아일랜드 보안대(RIC)를 주요 공격 목표로 삼았다.

이 해에 11명의 RIC 대원이 살해되고 20명이 부상당하며 본격적인 RIC 무력화 작전이 시작되었다.

[독립 전쟁 발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왕립 아일랜드 보안대(RIC) 경찰 두 명을 살해하며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불씨를 당겼다.

이는 곧 남 티퍼레리에서의 전쟁 선포로 이어지며 영국 지배에 대한 본격적인 무력 투쟁의 서막을 열었다.

1920

[알란 벨 살해]

독립운동 자금 추적 임무를 맡았던 영국의 치안판사 알란 벨이 남 더블린에서 아일랜드인들에게 총살당했다.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357,000파운드에 이르는 국민 공채 자금이 모이며 독립 열기를 입증했다.

[영국군 만행 폭로]

아서 그리피스는 영국군이 18개월간 38,720건의 민간인 주택 약탈, 4,982명 연행, 1,604명 폭행, 102곳 마을 습격 및 방화, 77명 무고한 민간인 학살 등 광범위하고 잔혹한 테러 행위를 자행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IRA의 저항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노동자들의 저항]

더블린 부두 노동자들이 수백 번의 약탈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전쟁 도구도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영국에 대한 비협조 운동을 펼쳤다.

아일랜드인 운전수들 역시 영국군 수송을 거부하며 독립 투쟁에 힘을 보탰다.

[블랙 앤 탄스 조직]

괴멸 상태의 왕립 아일랜드 보안대(RIC)를 지원하기 위해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로 구성된 '블랙 앤 탄스(Black and Tans)' 부대가 조직되었다.

공식적으로 RIC 하위 조직이었으나, 살인, 테러, 약탈 등을 일삼으며 영국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RIC 피해 급증]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왕립 아일랜드 보안대(RIC)의 피해가 급증했다.

이 해에만 143명의 RIC 대원이 살해되고 197명이 부상당했으며, 신병 보충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등 RIC의 기능이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밀정 살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서 리머릭에서 영국에 협력하던 밀정을 처음으로 살해하며 대내적인 기강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토머스 맥 컬틴 암살]

신페인당원이자 코르크 카운티 지도자인 토머스 맥 컬틴이 자택에서 괴한에게 총살당했다.

범인들이 지역 방위대 병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목격되어 영국군의 보복성 암살로 추정되며, 이는 아일랜드인들의 반발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영국 자금 추적]

아일랜드 주재 영국 치안판사 알란 벨이 신페인당의 자금 71,000파운드를 몰수하고 아일랜드 은행들을 통해 더 많은 돈을 압류하며 독립운동 자금줄을 차단하려 했다.

[RIC 병영 방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영국 왕립 아일랜드 보안대(RIC)의 버려진 병영 400여 개를 불태워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는 영국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정치범 단식 투쟁]

마운트조이 교도소의 정치범들이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시작, 이는 더블린 대규모 시위로 번져 결국 죄수들이 모두 석방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들을 축하하던 비무장 군중에 대한 무차별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 영국군의 만행을 드러냈다.

[국민 공채 발행]

아일랜드 국세청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자 마이클 콜린스가 정부와 군대 자금 마련을 위한 '국민 공채' 방안을 추진했다.

이 방안은 아일랜드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독립운동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카이로 갱 숙청]

마이클 콜린스가 지휘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부대가 '카이로 갱'으로 불리던 19명의 영국 정보원들을 더블린 인근에서 살해하며 영국 정보망에 치명타를 입혔다.

[피의 일요일 (크로크)]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영국 정보원 숙청에 대한 보복으로, '블랙 앤 탄스' 부대가 풋볼 경기가 한창이던 크로크 공원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비무장 민간인 14명이 사망하고 65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이 발생, '피의 일요일'로 기록되었다.

[Kilmicheal 매복 작전]

탐 베리가 이끄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서부 코르크 부대가 Kilmicheal에서 영국군 정찰대를 성공적으로 매복 공격하여 18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규모가 확대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르크 중심부 파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공격에 대한 영국군의 보복으로, 코르크의 중심부가 영국군에 의해 불타고 파괴되었다.

영국군은 소방관들의 화재 진압까지 방해하며 잔혹함을 드러냈다.

1921

[잉글랜드 전선 확대]

휴전 직전, 마이클 콜린스를 비롯한 아일랜드 공화주의자 지도자들은 전쟁 지속이 어렵다고 판단, 영국 본토로 전선을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리버풀 부두와 같은 경제적 요충지 19곳의 저장소를 파괴하고 불태우는 등 영국 본토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크로스베리 전투 승리]

서부 코르크의 '플라잉 칼럼' 부대가 크로스베리에서 영국군과 '블랙 앤 탄스'에 맞서 대규모 전투를 벌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아일랜드 공화국군은 3명의 피해만 입은 반면, 영국군은 60명 이상이 사망하며 독립군의 뛰어난 게릴라 전술을 입증했다.

[전쟁 막바지 희생]

1921년 1월부터 7월 휴전까지 단 6개월 만에 왕립 아일랜드 보안대, 영국군,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대원, 민간인을 포함해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는 3년간의 전쟁 기간 중 발생한 총 사상자의 약 70%에 달하는 수치로, 전쟁 막바지의 처절함을 보여준다.

[첫 IRA 대원 사형]

군법에 따라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대원 코넬리우스 머피가 사형당하며 독립 전쟁 중 공식적으로 처형된 첫 희생자가 되었다.

이어서 같은 달 28일에는 코르크에서 6명이 더 사형당하는 등 영국군의 강경 진압이 이어졌다.

[커스텀 하우스 방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더블린 중심에 있는 영국 식민 통치의 상징, 커스텀 하우스를 점령하여 불태웠다.

이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더 이상 통치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으나, 군사적으로는 IRA 대원 5명 사망, 80명 이상 체포되는 큰 실책이었다.

[휴전 선언]

길고 치열했던 아일랜드 독립 전쟁이 마침내 휴전으로 접어들었다.

이는 대영 제국에 맞선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이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며, 이후 평화 협상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영국-아일랜드 조약 체결]

영국 런던에서 아일랜드 대표단과 영국 정부 사이에 '영국-아일랜드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대영 제국 지배 하의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북아일랜드 분리 등의 문제로 인해 아일랜드 내전의 불씨를 지피고 마이클 콜린스 암살로 이어지는 비극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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