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고대 제국, 문명, 메소포타미아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2:08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던 고대 제국 아시리아는 기원전 2450년부터 609년까지 약 1800년간 존속하며 중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신아시리아 제국은 고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광대한 영토를 정복 세계 최초의 대제국 중 하나를 건설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전쟁과 내부 갈등 속에 멸망했으며 이후 아시리아인들은 수많은 박해를 겪으면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독창적인 행정 시스템으로 고대 세계의 판도를 바꾼 아시리아의 흥미진진한 역사를 탐험해 보세요!
- 수메르 도시국가 아슈르 설립
- 아시리아 건국 및 최초 왕 투디야 즉위
- 아카드 제국의 지배 시작
- 우르 제3왕조에 소속
- 우쉬피아, 첫 자치 통치자
- 고대 아시리아 제국 시작
- 샬룸아훔, 최초 확인 왕
- 에리슘 1세, 최초 법전 제작 및 교역 확대
- 샴시아닷 1세, 제국 최대 확장
- 중기 아시리아 제국 시작
- 아시리아, 지역 강국으로 부상
- 니흐리야 전투 승리, 제국 최대 확장
- 투쿨티-니누르타 1세 암살
- 신아시리아 제국 부흥 시작
- 아슈르나시르팔 2세, 제국 지배력 강화
- 티글랏-필레세르 3세, 제국 재건
- 사르곤 2세 즉위, 제국의 정점
- 이집트 정복, 최대 영토 달성
- 바빌로니아 반란 발생
- 메디아-바빌로니아 연합 침략
- 수도 아수르 약탈
- 수도 니네베 함락
- 아시리아 제국 멸망
- 아시리아인 박해 시작
- 사피요 학살 발생
- 아카드 제국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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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초기 아시리아의 시작점으로 추정되며,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는 고대 시대이다.
[아시리아의 수메르어 명칭 기록]
메소포타미아의 유력 수메르 도시국가 라가시의 에안나툼이 '쏘는 수바르투'를 언급했는데, 이는 아시리아를 지칭하는 수메르어 명칭이다.
이후 25세기에는 아다브의 루갈안네문두 기록에 수바르투가 공물을 바쳤다고 기록된다.
이 기록들은 아시리아 지역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들과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아시리아 건국 및 최초 왕 투디야 즉위]
메소포타미아에 아시리아가 건국되었다.
아시리아 왕 목록에 따르면 투디야가 최초의 왕으로, 에블라에서 맺은 조약이 발굴되어 실존 인물임이 밝혀졌다.
투디야 이후 왕 아다무의 이름은 셈어계 이름 '아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 시기 아시리아의 초기 왕들은 천막에서 거주하는 반유목민 생활을 했으나, 기원전 21세기 중반쯤에는 도시화되어 아슈르에 도시국가를 세울 정도로 발전했다.
[히타이트 기록에 등장]
아시리아는 히타이트의 기록에 등장하며, 당시 소아시아와의 교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카드 제국의 교역은 쐐기 문자를 소아시아와 레반트 지역에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사르곤 대왕 치세 말기에는 아시리아에서 아카드에 반기를 드는 세력들이 나타났으나 곧 진압되었다.
[아카드 제국의 지배 시작]
아시리아는 다른 메소포타미아 아카드어족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사르곤 대왕이 세운 아카드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아시리아는 제국의 북쪽 변방이자 종교적 중심지로 거듭났다.
이 시기에 아시리아는 수메르어 '수바르투'에서 아카드어 '아즈히눔'으로 기록되었다.
[우르 제3왕조에 소속]
아시리아의 대부분은 수메르계 왕조인 우르 제3왕조에 소속되었으나, 아슈르는 기원전 2050년 이후 제국의 가신으로서 어느 정도 자치권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인의 지배는 아슈르까지 미쳤으나 니네베가 위치한 북방에는 이르지 못했다.
[우쉬피아, 첫 자치 통치자]
자치적인 정주 민족 도시국가로서 아시리아의 첫째 통치자로 기원전 2080년경의 우쉬피아가 일반적이다.
그는 아슈르에 동명의 신 아슈르를 위한 신전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후계자로는 술릴리, 키이키아, 아키이아가 있었으나 키키야가 아슈르에 건물을 세웠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바가 적다. 우르의 지배자로 알려진 아마르신도 아시리아를 다스린 적이 있다고 본다.
[고대 아시리아 제국 시작]
푸주르아슈르 1세가 왕위에 오르며 고대 아시리아 제국이 시작되었다.
그는 아슈르에 건축 사업을 벌였으며, 그 후손들은 '아슈르의 총독'이라는 의미의 '이시악 아슈르'라 불렸다.
이 시기부터 아시리아는 '카룸'이라는 교역 기지를 아나톨리아의 후르리인과 히타이트인의 땅에 확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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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룸아훔, 최초 확인 왕]
푸주르아슈르의 후임자인 샬룸아훔이 즉위하여 당대 사료에서 확인 가능한 최초의 아시리아 왕이 되었다.
그의 뒤를 이은 일루슈마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도시들을 정벌하고 동쪽 엘람과 서쪽 아모리로부터 동족을 수호했다.
일루슈마는 아슈르에 이슈타르의 옛 신전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리슘 1세, 최초 법전 제작 및 교역 확대]
강력한 왕 에리슘 1세가 즉위하여 아시리아 최초의 법전을 제작했다.
그는 아나톨리아에서 아시리아 교역기지 카룸을 크게 확장하여 총 21개의 기지를 새로 세웠다.
카룸은 금과 은을 맞바꾸는 중요한 교역 통로였다.
에리슘 1세는 수많은 기록을 남겼으며, 아슈르, 이슈타르, 아다드에 신전을 짓는 등 주요 건축 작업을 수행했다.
[샴시아닷 1세, 제국 최대 확장]
샴시아닷 1세가 즉위하며 메소포타미아 북반부, 아나톨리아 동부와 남부, 레반트의 대부분을 제국에 편입시켜 고대 아시리아 제국을 크게 확장했다.
그는 지중해 동부 해안까지 진군하며 강력한 통치력을 과시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이쉬메-다간 1세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레반트에서 일부 영토를 잃었으나, 당시 보잘것없던 바빌론을 제국으로 발전시킨 함무라비와 결혼 동맹을 맺었다.
[중기 아시리아 제국 시작]
미탄니에 의해 정복을 당했던 아시리아가 히타이트 왕 슈필루리우마에 의해 미탄니 왕국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중기 아시리아 제국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아슈르우발리트 1세(BC 1363~1328)의 통치하에 다시 독립을 달성했으며, 이 때부터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통합할 수 있었다.
[아시리아, 지역 강국으로 부상]
전사 왕 아다드니라리 1세, 샬마네세르 1세, 투쿨티니누르타 1세의 통치 시대에 아시리아는 중요한 지역 강국으로 부상했다.
샬마네세르 1세 때 미탄니 왕국의 마지막 잔당이 공식적으로 아시리아에 합병되었다.
이 왕들은 사방으로 원정을 벌였고 상당한 영토를 편입하며 중기 아시리아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니흐리야 전투 승리, 제국 최대 확장]
중기 아시리아 왕 중 가장 성공적인 왕인 투쿨티-니누르타 1세가 니흐리야 전투에서 승리하며 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히타이트의 영향력이 끝나기 시작했다.
그는 중기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를 최대 규모로 확장하고 바빌로니아를 일시적으로 정복하기도 했다.
투쿨티-니누르타 1세는 수도를 아수르에서 새로운 도시인 카르-투쿨티-니누르타로 옮기려 시도했으나, 그의 죽음 이후 수도는 아수르로 환원되었다.
[투쿨티-니누르타 1세 암살]
가장 성공적인 왕이었던 투쿨티-니누르타 1세가 암살당하며 왕조 간 갈등이 이어졌고, 아시리아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 아시리아의 영향력은 점점 중심부로만 국한되었다.
에리바아다드 2세 시대부터 아시리아의 쇠퇴가 더욱 심해지면서 중기 아시리아 시대는 저물게 되었다.
BC 10C
[신아시리아 제국 부흥 시작]
아슈르단 2세의 통치 하에 아시리아의 쇠퇴가 마침내 역전되었고, 북동부와 북서부에서 원정을 벌여 더욱 큰 부흥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등장한 열정적인 후계자들 아래에서 신아시리아 제국은 큰 활력을 되찾았다.
아시리아 중심부는 지리적으로 보호받았고 인근의 다른 나라들도 분열된 상태였기 때문에, 아시리아 군대가 제국의 대부분을 재건하기 비교적 쉬웠다.
BC 9C
[아슈르나시르팔 2세, 제국 지배력 강화]
아슈르나시르팔 2세 치세에 신아시리아 제국은 근동에서 지배적인 정치 세력이 되었다.
그는 9번째 원정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진군하여 다양한 왕국에서 조공을 받았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아시리아 수도를 옮기려는 두 번째 시도로, 님루드 마을을 복원하고 기원전 879년에 그 도시를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지정했다. 아수르는 정치적 수도가 아닌 의례 및 종교 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샬마네세르 3세의 제국 확장]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아들 샬마네세르 3세가 즉위하여 광범위한 정복 전쟁을 벌이며 제국을 사방으로 확장했다.
그의 죽음 후, 신아시리아 제국은 '귀족들의 시대'라 불리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 침체기에는 왕이 아니라 강력한 관리와 장군들이 정치 권력을 주로 휘두르곤 했다.
BC 8C
[티글랏-필레세르 3세, 제국 재건]
티글랏-필레세르 3세가 등장하며 '귀족들의 시대' 침체기가 끝났다.
그는 귀족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제국의 영토를 통합, 중앙집권화했으며 군사 작전과 정복을 통해 아시리아 영토를 두 배 이상 확장했다.
가장 중요한 정복은 이집트 국경까지 이르는 레반트 지역의 속국화와 기원전 729년의 바빌로니아 정복이었다.
[사르곤 2세 즉위, 제국의 정점]
사르곤 2세가 세운 사르곤 왕조 때 신아시리아 제국은 그 영토와 세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사르곤 2세와 그의 아들 센나케립의 통치 하에 제국은 더욱 확장되고 공고해졌다.
사르곤 2세는 기원전 706년에 수도를 새로운 도시인 두르샤루킨으로 옮겼고, 이듬해 센나케립은 수도를 니네베로 옮겨 야심 차게 확장했다.
BC 7C
[이집트 정복, 최대 영토 달성]
사르하돈의 통치 하에 마침내 이집트를 정복하며 아시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영토를 확보했다.
이는 제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달성한 기록적인 사실로, 아시리아의 군사적 절정을 보여주었다.
이후 아슈르바니팔(BC 669~631년 재위)이 즉위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 후 신아시리아 제국은 '바빌로니아 문제' 등으로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바빌로니아 반란 발생]
남쪽의 바빌로니아를 달래기 위한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르곤 왕조 시대 내내 반란이 잦았으며, 결국 나보폴라사르가 이끈 바빌로니아의 반란이 발생했다.
이 반란은 아시리아 제국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메디아-바빌로니아 연합 침략]
키아크사레스가 이끈 메디아의 침략과 나보폴라사르의 바빌로니아 반란이 합쳐져 연합세력이 되었고, 이들은 아시리아 제국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이 연합 세력의 공격으로 아시리아 제국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수르의 함락은 아시리아 제국의 몰락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수도 니네베 함락]
아시리아의 마지막 수도 니네베가 메디아-바빌로니아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며, 신아시리아 제국의 사실상 종말을 알렸다.
이는 고대 세계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니네베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으나,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무너졌다.
609
[아시리아 제국 멸망]
마지막 아시리아 통치자 아슈르우발리트 2세가 하란에서 아시리아 군대를 집결시키려 했으나 므깃도 전투에서 패배하며 고대 아시리아 왕조와 국가로서의 아시리아 역사는 막을 내렸다.
이후 아시리아는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하에서 잠시 번영을 누리기도 했으나, 사산 제국의 침략으로 다시 한번 아수르가 파괴되었다.
1301
[아시리아인 박해 시작]
정치적 권력을 잃었음에도 북부 메소포타미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아시리아인들은 14세기에 일칸국과 티무르 제국의 종교적 억압과 학살로 인해 지역적, 민족적, 종교적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 시기부터 아시리아인들의 고난이 시작되었으며, 많은 아시리아인들이 기독교화되기도 했다.
1875
[사피요 학살 발생]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의 민족주의가 심화되면서 아시리아인에 대한 추가적인 박해와 학살(Sayfo, 아시리아인 대량 학살)이 자행되어 무려 250,000명의 아시리아인이 사망했다.
이후 아시리아인들의 자치와 독립을 위한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었고, 이슬람 국가들의 추가적인 학살과 박해로 인해 대부분의 아시리아인들은 타국으로 이주하거나 흩어지게 되었다.
2154
[아카드 제국 멸망]
경제적 쇠퇴와 내전으로 내홍을 겪던 아카드 제국이 구티족의 침입으로 멸망하며, 아시리아는 기원전 2112년까지 독립적인 도시국가 상태를 유지한다.
구티족은 메소포타미아 남부만 다스렸기 때문에 아시리아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