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칼리파국
제국, 칼리파국, 이슬람 국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1:57
-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 후손이 개창한 세 번째 칼리파국. - 750년 아바스 혁명으로 우마이야 칼리파국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음. - 수도 바그다드는 당대 과학 문화 발명의 세계적 중심지였음. - 맘루크 부와이흐 셀주크 제국의 간섭을 받으며 쇠퇴 1258년 몽골 침략으로 바그다드 칼리파국 멸망. - 카이로에서 명목상 명맥을 잇다가 1517년 오스만 제국에 흡수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짐.
747
[아바스 혁명 발발]
호라산에서 아부 무슬림이 우마이야 왕조에 맞서 검은 깃발을 내걸고 공개 반란을 일으켜 성공적으로 진압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아바스 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메르브에서 적대 행위가 시작될 당시, 아부 무슬림의 지휘 아래 약 1만 명의 군인이 있었습니다. 이 반란은 우마이야 왕조의 비아랍인 차별 정책에 반발한 마왈리와 페르시아인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750
[아바스 칼리파국 개창]
아부 알 압바스 사파가 우마이야 왕조를 무찌르고 칼리파로 즉위하며 아바스 칼리파국을 개창했습니다.
이는 무함마드 계승을 주장한 세 번째 칼리파국이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압바스 이븐 압둘 무탈립의 후손들이 개창했습니다. 이들은 우마이야 왕조의 도덕적 타락과 비아랍인 차별에 대한 불만을 이용해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 패배 후, 마르완 2세는 이집트로 도망쳤고,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 명의 남성을 제외한 나머지 우마이야 가족들도 제거되었습니다.
[탈라스 전투 발발]
알사파흐가 중앙아시아로 군대를 파견하여 당나라의 팽창을 저지한 탈라스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이 전투는 동서양 기술 교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제지 기술을 포함한 여러 중국의 기술들이 이슬람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752
[알하시미야 도시 건설]
알사파흐가 쿠파 근처에 '알하시미야'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초기 아바스 왕조의 임시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알사파흐는 알하시미야 건설 후 안바르로 이사하여 병사들을 위한 새로운 정착지와 자신을 위한 궁전을 지었습니다.
754
[알만수르 즉위]
아부 자파 알만수르가 칼리파로 즉위하여 아바스 왕조의 통치를 확고히 하고 아부 무슬림을 숙청하는 등 내부 도전을 해결했습니다.
알만수르는 그의 삼촌이자 자브 전투에서 우마이야를 물리친 압달라 이븐 알리가 가장 심각한 잠재적 라이벌이었고, 알만수르는 754년 쿠라사니 혁명 사령관인 아부 무슬림을 보내 그에게 대항했습니다. 아부 무슬림이 그를 성공적으로 물리친 후 알 만수르는 아부 무슬림도 숙청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755
당나라 연대기에서 아바스 왕조를 '흑의대식'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는 '검은 옷을 입은 아랍인'이라는 뜻으로, 아바스 왕조의 검은 깃발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 병사들은 중국에 남아 중국 무슬림의 실제 핵을 형성하게 됩니다.
756
[코르도바 토후국 독립]
우마이야 왕조의 일원인 압드 알라흐만이 가문의 숙청을 피해 알안달루스(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독립하여 코르도바 토후국을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아바스 왕조는 서부 및 중앙 마그레브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762
[바그다드 건설 및 천도]
알만수르가 티그리스 강변에 '평화의 도시'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바그다드를 건설하고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는 이전 우마이야 왕조의 중심지였던 다마스쿠스로부터 제국을 분리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바그다드는 지름 2.4km, 둘레 10km의 이중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원형 도시로, 1년 동안 10만 명의 노동자와 1,800만 디나르가 투입되어 완성되었습니다. 도심 중앙에는 칼리파 궁전과 대모스크가 있었으며, 수많은 수로와 다리가 물류 운송 및 이동을 원활하게 했습니다.
786
[하룬 알라시드 즉위]
하룬 알라시드가 칼리파로 즉위하며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이자 이슬람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왕조의 명성과 권력이 확립된 시기로 평가됩니다.
하룬 알라시드 시대에 와지르의 지위가 강력해졌으며, 바르마크 가문 출신들이 국정을 위임받아 수행했습니다. 그는 또한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을 재개하고 키프로스를 점령하는 등 군사적 업적도 남겼습니다.
793
이는 아바스 왕조가 서부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794
[최초 제지 공장 설립]
자파 알바르막이 바그다드에 제지 공장을 설립하며 이슬람 세계 최초로 종이 생산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이슬람 문명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탈라스 전투를 계기로 도입된 중국의 제지 기술은 757년 사마르칸트 최초의 제지 공장에 이어 바그다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종이는 가죽과 양피지를 대체하며 책 생산을 폭증시켰고, 지식 보급의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796
락까는 이전에 그의 아버지 알-마흐디가 총독으로 있었던 곳으로, 두 도시는 시간이 지나면서 단일 도시 집합체를 형성했습니다.
803
바르마크 가문은 아바스 왕조 초기 공무 및 행정 제도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하룬 알라시드 치세에 와지르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805
[최초의 이슬람 병원]
하룬 알라시드가 바그다드에 최초의 이슬람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현대적인 병원 시스템의 시초를 알리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비잔틴 시대의 여행자 숙박소와 유사한 형태로, 아직 체계적인 시스템은 부족했지만 이슬람 사회의 의료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809
하룬 알라시드의 후계 분할 결정이 칼리파국의 존속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 내전은 2년 동안의 바그다드 포위 공격으로 이어졌습니다.
813
[알마므운 즉위]
알마므운이 이복형 알아민과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칼리파로 즉위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비교적 평온했으며 학문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알마므운은 호라산에 자치령을 세우고 동로마 제국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격퇴했습니다.
820
[지방 왕조 독립 시작]
사만 왕조가 트란스옥시안나와 대호라산 지역에서, 그리고 이란에서는 사파르 왕조가 아바스 왕조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 권력이 약화되고 주변부의 군소 칼리파국들이 강화되는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833
이 군대는 초기에 정부에 안정적인 군사력을 제공했지만, 칼리파와 통치 민족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며 훗날 아바스 왕조 쇠퇴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알무타심은 마지막으로 강력한 권력을 누렸던 아바스 칼리파로 평가됩니다.
836
[사마라로 수도 이전]
알무타심이 사마라를 새로운 수도로 삼으며 이곳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궁전 복합 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사마라에는 모스크, 목욕탕, 접견실, 주거 공간, 드넓은 정원 등이 포함된 궁전 복합 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는 바그다드에서 맘루크 병사들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847
[알무타와킬 즉위]
알무타와킬이 칼리파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딤미(비무슬림)들에게 가장 가혹했던 통치자 중 한 명으로, 차별적인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알무타와킬은 딤미들이 공공장소에서 특정 복장을 착용하고 노란색 옷을 입도록 강요했으며, 이교도들을 정부에서 분리하고 교육을 어렵게 하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848
[사마라 대모스크 건설 명령]
제9대 칼리파 알무타와킬이 사마라에 새로운 모스크 건설을 명령했습니다.
이는 아바스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사업은 851년에 완공되었으며, 그 결과물은 당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모스크로 기록됩니다.
851
[사마라 대모스크 완공]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모스크인 사마라 대모스크가 완공되었습니다.
독특한 나선형 외관의 말위야 미나렛이 특징입니다.
모스크의 외벽은 44개의 반원형 탑과 진흙 벽돌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8개의 창과 16개의 문이 있습니다. 내부의 464개 기둥은 11m 천장을 지탱하며 장대한 느낌을 선사했습니다. 이 건축물은 독특한 나선형의 외관 덕분에 '달팽이 첨탑'이라고도 불리는 말위야 미나렛으로 유명합니다.
861
[이슬람 황금기 종말]
알문타시르가 칼리파로 즉위하며 이슬람 황금기가 종말을 맞이하고, 제국에 '사마라의 혼란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튀르크계 노예 장군들(맘루크)의 권력이 급격히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862
[알무스타인 즉위]
알무스타인이 칼리파로 즉위했으나, 튀르크계 노예장군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5차 피트나가 발발하며 지방 분권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바그다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은 약화되고,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인 통치가 추구되기 시작했습니다.
870
[혼란기 종식 및 중흥기 시작]
알무타미드가 칼리파로 즉위하며 9년 동안 이어진 '사마라의 혼란기'가 종식되고, 대외적인 위협을 일단락시키며 아바스 왕조의 1차 중흥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잔즈 반란과 같은 대내외적인 위협을 성공적으로 진압하며 중앙 정부의 권위를 일정 부분 회복했습니다.
872
[최초 체계화 병원 건립]
카이로에 이븐 툴룬 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이곳은 모든 환자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하고, 남녀 구별 목욕탕, 도서관, 정신 병동까지 갖춘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병원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환자들이 회복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모든 치료비를 병원 측에서 부담하는 파격적인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 국민건강보험의 전신으로 평가됩니다.
879
[이븐 툴룬 모스크 완공]
이집트의 독립적인 총독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아바스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이븐 툴룬 모스크를 완공했습니다.
이는 가장 잘 보존된 아바스 시대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이 모스크는 아바스 왕조의 건축 양식이 이집트에 전파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892
[알무으타디드 즉위]
알무으타디드가 칼리파로 즉위하여 이집트, 시리아, 화레즘 일부를 아바스 통제하에 다시 두는 쾌거를 이루며 1차 중흥기를 이끌었습니다.
알 자지라(이라크 북부), 시리아 북부, 페르시아 서부 등을 바그다드 중앙 정부의 직할령으로 편입했으며, 툴룬 왕조와 사파르 왕조가 형식적으로나마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902
[이집트 직할령 편입]
알무크타피가 칼리파로 즉위하여 툴룬 왕조를 정복하고 이집트를 직할령으로 편입했습니다.
그의 사후 1차 중흥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알무크타피는 아바스 왕조의 영토를 확장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려 노력했습니다.
920
파티마 왕조는 이드리스와 아글라브 왕조의 영토를 장악하고 969년 이집트로 진격하여 카이로 근처에 수도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수니파 이슬람과 아바스 왕조의 주요한 정치적, 이념적 도전자가 되었습니다.
934
[2차 지방 분권화 시작]
알라디가 칼리파로 즉위하면서 아바스 왕조의 강역이 이라크 일대로 완전히 축소되는 2차 지방 분권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알 라디는 맘루크의 세력이 꾸준히 성장하여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에게 대부분의 왕실 기능을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여 '아미르 중의 아미르'(아미르 알 우마라)라는 직책을 만들었습니다.
945
[부와이흐 왕조 바그다드 점령]
이란에서 발흥한 시아파 계통의 부와이흐 왕조가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아바스 칼리파는 부와이흐 통치자의 꼭두각시로 전락했습니다.
부와이흐 왕조는 바그다드의 관료 조직을 장악하고 지지자들에게 이크타(세금 농장 형태의 영지)를 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국지적인 세속적 통치 기간은 거의 10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969
파티마 왕조는 1000년경 아바스 왕조의 주요한 정치적, 이념적 도전자로 부상했습니다.
982
[바그다드 최대 병원 건립]
부와이흐 왕조의 주도로 바그다드에 당대 최대 규모의 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10세기까지 비슷한 유형의 병원들이 10개가 넘게 신축되었습니다.
이슬람 병원은 전신질환, 외과, 정형외과 등 진료 부문이 나뉘어져 있었고 음악 치료 및 선진적인 사회복지 시스템도 제공했습니다. 10세기 무렵에는 24시간 진료 병원을 의무화하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1055
[셀주크 왕조 바그다드 점령]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오구즈 투르크계 셀주크 왕조가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부와이흐 왕조를 몰아냈습니다.
아바스 칼리파는 여전히 실권을 가지지 못하고 종교적인 권위만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1056~57년에 아미르 바사시리가 바그다드에 시아파 파티마 깃발을 꽂았을 때, 칼리프 알카임은 셀주크 왕조 술탄 토그릴 베그의 도움 없이는 그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1138
알무크타피는 이븐 후바이라의 도움으로 칼리프의 완전한 군사적 독립을 되찾은 최초의 아바스 칼리파였습니다.
1157
[바그다드 포위 방어 성공]
알무크타피가 셀주크족의 바그다드 포위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이라크를 지켜냈습니다.
이는 250년 간 외국 왕조의 지배를 받던 칼리파가 군사적 독립을 회복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바스 칼리파가 다시 군사력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180
[알나시르 즉위]
알나시르가 칼리파로 즉위하여 2차 중흥기의 절정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치세에 칼리파는 이라크 전역에서 다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알나시르는 수피 푸투와 조직을 기반으로 권력을 강화했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지배권을 재확인하고 페르시아로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1227
[알무스탄시리야 마드라사]
알무스탄시르 칼리파가 셀주크 시대의 니자미야를 대체하기 위해 알무스탄시리야 마드라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아바스 시대 교육 기관 중 현존하는 몇 안 되는 곳입니다.
마드라사는 이슬람 법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 학자들의 재량에 따라 커리큘럼이 구성되었고 남녀 학생 모두에게 비공식적으로 교육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1258
[몽골군의 바그다드 함락]
훌라구 칸이 이끄는 몽골군이 수도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마지막 아바스 칼리파 알무스타심을 처형했습니다.
이는 아바스 칼리파국의 사실상 멸망이자 이슬람 황금기의 끝으로 여겨집니다.
몽골군은 모스크, 궁전, 도서관, 병원 등을 약탈하고 파괴했으며, 36개 공공 도서관의 책들이 훼손되고 지혜의 집이 파괴되었습니다. 칼리파 알무스타심은 몽골의 금기에 따라 카페트에 싸여 말에 짓밟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를 아바스 칼리파국의 멸망으로 언급합니다.
1261
[카이로 아바스 칼리파국 재건]
몽골에 의해 바그다드가 파괴된 후, 이집트의 맘루크 통치자들이 카이로에 아바스 칼리파국을 명목상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첫 칼리파는 알무스탄시르 2세였습니다.
이집트의 아바스 칼리파국은 정치적 실권은 없었지만, 종교적인 문제에 한해서는 권위를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1516년까지 존속했습니다.
1406
이는 아바스 칼리파가 맘루크 술탄의 꼭두각시로서 명목상의 권위만을 유지하던 카이로 아바스 칼리파국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517
[아바스 칼리파국 최종 멸망]
오스만 술탄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마지막 아바스 칼리파 알무타와킬 3세로부터 칼리파 직위를 계승받았습니다.
이로써 기나긴 아바스 왕조의 역사가 완전히 끝을 맺었습니다.
명목상으로 이어지던 카이로 아바스 칼리파국은 셀림 1세에 의해 칼리파직이 오스만 술탄에게로 넘어가며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후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