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키메데스
철학자, 수학자, 공학자, 과학자, 발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0- 13:50:07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 출신의 천재 과학자 아르키메데스!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에서 뛰쳐나온 일화는 그의 지혜와 발견의 상징입니다. 금관의 순도를 밝혀내고 지레의 원리를 설명하며 나선양수기와 투석기 같은 놀라운 기계를 발명했죠. 수학 분야에서도 원주율을 정교하게 계산하고 포물선의 넓이를 증명하는 등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의 업적은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죽음 이후에도 묘비에 새겨진 구와 원기둥 그림은 그의 열정을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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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천재의 탄생]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에서 다재다능한 학자 아르키메데스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그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자 수학자 중 한 명으로 불립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무렵 시칠리아의 자치 식민지 시라쿠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 연도는 비잔틴 그리스의 역사가 존 체체스의 연표에 근거하며, 체체스는 아르키메데스 사망 당시 나이가 75세라는 기록을 바탕으로 출생 연도를 산정했습니다. 따라서 출생 년도가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지식의 보고, 알렉산드리아 유학]
아르키메데스는 청년기에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에서 학문을 연마하며 지적 지평을 넓혔습니다. 이 시기에 사모스의 코논, 에라토스테네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청년기에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에서 공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사모스의 코논, 에라토스테네스와 같은 학자들과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그가 친구 도시데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논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금까지 누구에 의해서도 연구된 적이 없고 마침내 저에 의해 완성된 한 정리를 코논에게 보낼 작정이었는데 이제 보낼 수가 없게 되어버렸군요."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당대 최고 학자들과 교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레카!" 금관의 비밀을 풀다]
히에론 2세의 금관에 은이 섞였는지 의심한 왕의 의뢰를 받고,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에 몸을 담그다 물의 부피 변화에 착안하여 물질의 밀도와 비중의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에 너무 기뻐 "유레카!"를 외치며 벌거벗은 채 뛰쳐나왔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이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로 알려져 있으며, 이 원리를 통해 금관의 순도 문제를 명쾌하게 증명했습니다.
비트루비우스는 히에론 2세가 금세공사에게 순금을 주어 신에게 바칠 금관을 만들게 하였으나, 완성된 금관에 은이 섞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아르키메데스에게 의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사람이 욕조에 들어가면 물이 차오르는 것에 착안하여 물질의 밀도에 따라 비중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서로 다른 물질은 같은 무게라 할지라도 차지하는 부피가 다르므로 물통에 집어 넣었을 때 서로 다른 비중을 가지게 됩니다. 이 깨달음에 아르키메데스는 옷을 입는 것도 잊고 뛰쳐나와 “찾았다!”(εὕρηκα!)를 외쳤다고 합니다. 왕관과 같은 무게의 금을 비교한 실험으로 아르키메데스는 금세공사가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다면체가 갖는 부력에 대한 정리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라쿠사의 방패, 혁신적인 전쟁 병기 개발]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의 공격에 맞서 고향 시라쿠사를 지키기 위해 아르키메데스는 경이로운 방어 무기들을 개발했습니다. 선박의 물을 퍼내는 나선양수기, 적선을 전복시키는 갈고리, 심지어 햇볕을 모아 전함을 불태우는 거울까지, 그의 공학적 천재성은 전쟁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이 발명품들은 당시 로마군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며, 그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르키메데스는 히에론 2세의 부탁을 받아 고대 그리스 시대 가장 큰 수송선 '시라쿠시아'를 제작했고, 선저의 물을 배출하는 '아르키메데스 나선양수기'를 발명했습니다. 이 양수기는 오늘날에도 사용됩니다. 또한,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시라쿠사 공방전에서 로마군에 맞서 '아르키메데스 갈고리'를 개발하여 적선을 전복시켰고, 루키아노스 등의 기록에 따르면 햇볕을 모아 로마 전함을 불태운 '아르키메데스 거울'(열선)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거울은 21세기 실험에서도 성공적으로 재현되며 그의 천재성을 입증했습니다.
[위대한 학자의 비극적 죽음]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시라쿠사가 로마군에 함락되던 비극적인 순간, 아르키메데스는 기하학 문제에 몰두하다 로마 병사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마르켈루스 장군이 그의 안전을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대한 생애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무렵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에 사망하였습니다. 로마 장군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2년 동안의 공방전 끝에 시라쿠사를 점령하였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도시가 함락될 당시 아르키메데스는 기하학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는데, 로마 군인이 마르켈루스를 접견하라고 명령하자 문제를 푸는 도중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군인이 아르키메데스를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고 합니다. 마르켈루스 장군은 아르키메데스의 안전을 당부했었기에 그의 사망 소식에 매우 화를 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마지막 말로 알려진 "내 원을 건드리지 마"는 후대에 각색된 것으로 보입니다.
BC 1C
[잊혀졌던 무덤, 다시 빛을 보다]
아르키메데스가 사망한 지 137년 후, 로마의 재무관 키케로가 시라쿠사 인근에서 버려져 있던 아르키메데스의 묘비를 발견했습니다. 묘비에는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원기둥과 구의 부피 관계'를 나타내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사망한 지 137년이 지난 로마의 재무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시라쿠사 인근의 관목 사이에 버려져있던 묘비를 발견하였습니다. 키케로는 아르키메데스의 묘비에는 원기둥과 구가 그려져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찾은 묘가 아르키메데스의 것이라 확신하였습니다. 묘비에는 그가 증명한 구의 부피는 같은 높이의 원기둥 부피의 3분의 2라는 수학적 업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