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
작가, 철학자, 여성주의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0:08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철학자. 현대 여성주의의 초석이 된 기념비적인 역작 <제2의 성>을 저술하여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생의 동반자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철학을 탐구하며 20세기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문학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여성 해방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기억된다.
1908
[위대한 철학자의 탄생]
프랑스 파리에서 아마추어 배우 조르주 드 보부아르와 프랑수아즈 브라쇠르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15세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등 비범한 면모를 보였다.
1923
[작가로서의 첫 결심]
15세의 나이에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특히 철학에 매료되어 파리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당대 지성인들과 만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1929
[사르트르와의 운명적 만남]
소르본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평생의 동반자이자 철학적 동지인 장 폴 사르트르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같은 해, 철학 교수자격시험에서 최연소로 통과하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사르트르를 비롯한 친구들로부터 'Casto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철학 교수자격시험에서 사르트르가 1등, 보부아르가 2등을 차지했다. 'Castor'는 그녀의 성 'Beauvoir'가 영어 'Beaver'와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해 지어졌으며, 비버처럼 성실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1943
[논란의 첫 소설, <초대받은 여자>]
첫 소설 <초대받은 여자>를 출판했다.
이 작품은 그녀와 사르트르, 그리고 두 여성 제자(올가, 완다 코사키비에츠)와의 복잡한 삼각관계를 소설화하여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개방적인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1944
[실존주의 윤리학 탐구 시작]
실존주의 윤리학에 대한 중요한 논문인 <피루스와 키네아스>를 저술했다.
이 작품은 이후 그녀가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이어가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45
[지성인의 시대, <레 탕 모데른> 창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과 함께 정치·문화 잡지 <레 탕 모데른>을 창간했다.
이 잡지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활발히 발표하고 토론하며 프랑스 지성계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사망 직전까지 이 잡지의 편집자로 남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47
[실존주의 입문서 발간]
실존주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애매함의 도덕에 관하여>를 출판했다.
이 책은 사르트르의 난해한 <존재와 무>와 대비되며, 실존주의의 몇 가지 모순을 해결하는 보부아르만의 통찰을 담아냈다.
1949
['여성주의 바이블' <제2의 성> 출판]
현대 여성주의의 초석이자 '여성주의 바이블'로 불리는 기념비적인 역작, <제2의 성>을 프랑스에서 출판했다.
이 책은 여성의 억압을 심도 있게 분석하며 "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제시,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실과 신화" 장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신비함'이라는 거짓된 아우라를 주입시켜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도덕적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 여성 해방 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1954
[공쿠르상 수상, <레 망다랭>]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 <레 망다랭>으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사르트르와 미국 작가 넬슨 알그렌 등 주변 인물들을 묘사하며 그녀의 개인사와 당대 사회를 통찰하는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1958
[첫 자서전 <처녀 시절> 출판]
4권으로 구성된 유명한 자서전 중 첫 권인 <처녀 시절>을 출판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었다.
1960
[자서전 2권 <나이의 힘> 출판]
자서전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나이의 힘>을 출판하며, 중년기의 삶과 변화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
1963
[자서전 3권 <사물의 힘> 출판]
자서전 세 번째 권인 <사물의 힘>을 출판했다.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쌓아온 경험과 생각을 풀어냈다.
1969
[<제2의 성>에 대한 비판적 응답]
쉬잔 릴라르가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 대한 비판적인 소론인 <제2의 성의 오해>를 저술했다.
이는 보부아르의 주장에 대한 당대 지성계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1970
[노년에 대한 지적 고찰, <노년> 저술]
모든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노년기의 쇠락과 고독에 대해 지적으로 고찰한 산문 <노년>을 저술했다.
이 드문 주제를 다룬 그녀의 통찰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1971
[프랑스 낙태 합법화 운동 주도]
프랑스 여성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당시 불법이었던 낙태의 허용을 주장하는 '343선언'에 서명했다.
이 선언에는 카트린 드뇌브 등 당대 최고 지식인 343명이 참여하여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1972
[마지막 자서전 <결국> 출판]
4권으로 된 자서전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결국>을 출판하며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의 생각과 회고를 담아냈다.
1974
[프랑스 낙태 합법화]
그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343선언' 운동의 결과로 프랑스에서 낙태가 합법화되었다.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신체 자율성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인 성과였다.
1979
[<정신적인 것이 우선할 때> 출판]
어린 시절 여성으로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담은 (정신적인 것이 우선할 때)을 출판했다.
이 이야기는 <초대받은 여자> 이전에 쓰였으나, 뒤늦게 세상에 공개되었다.
1981
[사르트르와의 마지막 기록, <작별의 의식>]
평생의 동반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의 말년을 고통스럽게 이야기한 <작별의 의식>을 저술했다.
이 책은 출판 전 사르트르가 읽지 못한 유일한 작품으로,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1986
[위대한 삶의 마무리]
1986년 4월 14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평생의 동반자 장 폴 사르트르의 묘 옆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사망 이후, 여성주의의 어머니이자 주요 사상가로서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2006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 건립]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축가 디트마르 파이히팅거가 센강을 가로지르는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를 설계했다.
여성적인 곡선이 특징인 이 다리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으로 연결되며, 그녀가 프랑스 사회에 남긴 지대한 영향력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