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들

회화, 서양 미술, 바로크 미술, 스페인 왕실, 명화

num_of_likes 59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40:0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회화, 서양 미술, 바로크 미술, 스페인 왕실, 명화
report
Edit

- 스페인 황금기를 대표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걸작. - 실재와 환상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구도로 수많은 연구를 낳은 작품. - 어린 마르가리타 왕녀와 왕실 인물들을 담아낸 스냅샷 같은 회화. - 회화의 신학 예술의 철학 등 극찬을 받으며 미술사에 큰 영향. - 수세기에 걸쳐 화재 복원 명칭 변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침.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650

[벨라스케스의 특별 작업실 마련]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에게 죽은 아들 발타사르 카를로스의 방을 하사하여 궁정 박물관 겸 작업 공간으로 조성하게 했습니다.

이 곳이 바로 '시녀들'이 탄생하고 전시되었던 장소입니다.

왕은 벨라스케스의 작업 과정을 자주 지켜볼 만큼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와 평범하지 않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엄격한 궁내 예절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왕실 컬렉션 담당 학예사로서 상당한 자유를 보장받으며 거울, 조각상, 융단 등으로 전시관 내부 장식을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1651

[거장의 왕궁 시종 등극]

스페인 예술 황금기를 이끈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 왕실에서 뛰어난 사회적 지위를 개척했습니다.

1651년 2월, 그는 왕궁 시종 자리에 오르며 많은 물질적, 사회적 혜택과 함께 중요한 의무를 맡게 됩니다.

이는 그의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656

[시대를 초월한 걸작 '시녀들' 탄생]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한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역작 '시녀들'이 1656년에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화풍으로 어느 것이 실재하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서양화 작품 중 가장 많이 연구된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작품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마드리드 궁전 내부를 배경으로, 어린 마르가리타 왕녀와 시녀들, 샤프롱, 호위병, 난장이들, 그리고 작업 중인 벨라스케스 자신을 담고 있습니다. 배경의 거울에는 왕과 왕비의 모습이 비쳐 보는 이와 보여지는 것의 관계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독특한 구도는 수많은 학자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바로크 시대 화가 루카 지오다노는 이 작품을 '회화의 신학'이라 표현했고, 19세기 토마스 로런스 경은 '예술의 철학'이라고 일컬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1660

[펠리페 4세의 깊은 애도]

예술을 사랑했던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가 사망하자 왕위 후계자 선택을 위한 비망록에 "난 희망을 잃었다"는 문구를 남기며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습니다.

이는 왕과 화가 사이의 특별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724

[작품 속 인물, 기록으로 밝혀지다]

'스페인 황금시대의 바사리'라 불리는 안토니오 팔로미노가 스페인 화가들의 일생을 기록한 작품집을 완성했습니다.

여기에 최초 '가족(La Familia)'이라 불렸던 '시녀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작품 속 인물들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1734

[화재 피해와 작품 복원]

마드리드 알카사르 궁전이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면서 '시녀들' 역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왕실 소속 화가 후안 가르시아 데 미란다가 복원 작업을 수행했으며, 특히 마르가리타 왕녀의 왼쪽 볼 부분은 안료 소실이 심해 완전히 새로 채색되었습니다.

화재에서 복원된 이후, 1747년부터 48년까지 이 작품은 왕실 소유가 되었는데, 이때 그림 속 마르가리타 왕녀가 이복 자매인 마리아 테레사로 잘못 밝혀지는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수는 1772년 새 마드리드 왕궁으로 접수된 후에도 반복되었습니다.

1819

[프라도 미술관으로 이전]

펠리페 4세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던 '시녀들'은 마침내 1819년, 스페인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져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43

['시녀들' 공식 명칭 확정]

프라도 미술관으로 이전된 후에도 '펠리페 4세 가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이 작품은, 1843년 프라도 미술관 카탈로그에서 현재의 '시녀들(Las Meninas)'이라는 제목이 처음으로 공식 사용되었습니다.

1984

[논란 속 마지막 복원 작업]

작품의 질감과 색상 손실이 심화되자, 1984년 미국 미술품 복원 전문가 존 브릴리 감독 하에 19세기에 쌓인 황색 먼지층을 제거하는 마지막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작업은 '분노어린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작품의 보존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평가됩니다.

복원 작업 당시,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제리는 '분노어린 저항'이 일어났다고 언급하며 작품의 모습이 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로페즈-레이의 의견처럼 작품의 크기, 중요성, 가치 등을 고려할 때 복원은 불가피했으며, 현재 이 작품은 전시회 외부 대여가 금지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