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원전 사고, 재난, 산업 재해

num_of_likes 58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9:12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원전 사고, 재난, 산업 재해
report
Edit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핵연료 노심용융 사고. 당시까지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되며 원자력 발전 안전성 논란을 촉발함. 작은 실수와 반복된 운전원 오작동 설비 결함이 겹쳐 발생 심층 방호 시스템마저 무력화됨. 격납 용기 덕분에 주민 피폭은 경미했으나 대규모 대피와 대중의 불신을 야기함. 이후 원전 설계 및 운영 절차 개선 안전 관리 기구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78

[TMI-2 상업운전 시작]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2호기(TMI-2)가 정식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밥콕 앤 윌콕스 사가 설계한 가압경수로형 원자로로, 1978년 4월 전기 생산을 개시한 뒤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

TMI-2 원자로는 가압경수로형이며 출력은 2,772MWt(906MWe)이다. 1978년 4월 전기 생산을 시작하여 12월 30일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하였다.

1979

[TMI-2 영구 폐쇄와 여파]

사고 종료 후, TMI-2 원전은 영구 폐쇄되었고 같은 구조의 원자로 7개도 작동을 멈췄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는다'고 선언, 당시 승인된 129개 원전 건설 계획 중 53개만 진행되고 나머지는 취소되는 등 미국 원자력산업 전반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중의 원전에 대한 공포와 불신이 증대되며 반핵 운동이 확산됐다.

사고 종료 후 TMI-2 원전은 영구 폐쇄가 되었고 같은 구조로 된 원자로 7개가 작동을 중지했다.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방문해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당시 129개 원전 건설 계획이 승인을 받은 상태였지만 이미 짓고 있던 53개 발전소만 건설이 계속됐을 뿐 나머지 계획은 취소되었다. 원전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나 불신은 증대되었으며, 새로운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운동도 강해졌다.

[원전 안전 기구 INPO 설립]

TMI 원전사고 이후 미국의 원자력산업계는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INPO(Institute of Nuclear Power Operation)'라는 기구를 설립했다.

이 기구는 각 원전에 대한 자체 점검과 운영 경험 교환을 통해 원전의 안전성 및 성능 향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TMI 원전사고 이후 미국의 원자력산업계는 각 원전에 대한 자체점검을 통해 강점은 공유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프로세스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INPO(Institute of Nuclear Power Operation)라는 기구를 만들어 유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INPO는 원전운영자간의 성능목표설정 및 운전경험교환 등 미국내 원전의 안전성 및 성능향상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스리마일섬 노심용융 사고]

상업운전 4개월 만인 새벽 4시, 자동밸브 이상으로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며 사고가 시작됐다.

보조급수기 불작동, 운전원 실수로 긴급노심냉각장치(ECCS) 중단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노심 온도가 5000도 이상 치솟아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발생, 미국 상업 원자력산업 역사상 최악이자 당시까지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됐다.

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정격출력의 97%로 운전 중 자동밸브 장치 이상으로 열 교환기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2차 냉각 장치 중 'condensate polishers'의 blockage 현상과 이로 인한 압축공기 주입 실수, 역지밸브 개방, 계측공기배관 유입으로 주급수펌프 등이 모두 정지했다. 당시 보수점검을 위해 밸브가 잠겨있던 보조급수계통이 작동하지 않았고, 1차 계통의 온도가 급상승했다. 가압기 방출밸브가 불완전하게 닫혀 고온고압 냉각수가 계속 유출되었다. 운전원은 냉각수펌프 요동으로 펌프를 정지시켰고, 오작동하는 계기판 때문에 냉각수 방출을 인지하지 못했다. 냉각수가 충분한 것으로 오판하여 안전주입까지 차단, 결국 핵연료 용융이 시작되었다. 여러 겹의 방어선 중 네 번째 방호벽까지 뚫렸으며, 통제실 계기판의 모순된 신호로 상황 파악은 사고 발생 16시간이나 지나서야 가능했다. 이 사고는 작은 실수와 운전 중 운전지침서 위반, 설비 결함, 운전원의 반복된 실수가 겹치며 발생했다.

[방사성 기체 대기 노출]

노심의 절반 이상이 녹아 내린 결과, 핵연료 외피의 지르코늄이 증기와 반응하여 발생한 많은 양의 수소 기체 중 일부 방사성 기체가 대기 중에 노출된 사실이 사고 발생 이틀 뒤에야 뒤늦게 확인되었다.

노심의 절반 이상이 녹아 내린 뒤, 핵연료의 외피에 입혀진 지르코늄이 주위의 과열된 증기와 반응해서 많은 양의 수소기체가 발생되었다. 이 수소 기체 가운데 일부는 원자로 중심에서 빠져나가 격납용기로 흘러 들어갔으나, 일부 방사성 기체가 대기 중에 노출된 사실은 사고 발생 이틀 뒤에 확인되었다.

[카터 대통령 현장 방문]

사고의 심각성에 주 정부는 임산부와 어린이들을 대피시켰고, 공황 상태에 빠진 10만여 명의 주민들이 도시를 떠났다.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사고 현장을 방문해 상황을 시찰하며 국민적 우려가 증폭되었다.

피해를 우려한 주 정부는 도핀 카운티의 임산부와 어린이들을 대피시켰다. 그러자 주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10만 여명이 일시에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스리마일섬을 시찰 후 떠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1980

[TMI-2 정화 작업 착수]

방사능에 오염된 채 손상된 제2원자로의 정화 작업이 1980년대 말까지 약 10억~18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진행되었다.

이는 사고 수습의 어려움과 비용 부담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여전히 방사능을 가진 채로 손상된 제2원자로의 정화작업은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작업에 소요된 비용은 약 10~18억 달러이다.

1985

[TMI-1 작동 중단 해제]

사고로 인한 불신으로 인해, 손상되지 않았던 스리마일섬 제1원자로(TMI-1)마저 1985년까지 작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안전성 강화를 거쳐 재가동되었다.

손상되지 않은 스리마일섬의 제1원자로도 1985년까지 다시 작동되지 않았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