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
중국 왕조, 통일 제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8:52
수나라는 남북조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을 300년 만에 재통일한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제도를 정비하고 개황의 치를 이끌며 강력한 통일 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2대 수 양제의 무리한 대운하 건설 대규모 토목 공사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고구려 원정 실패로 국력이 쇠퇴하며 백성들의 반란이 속출했습니다. 결국 양제는 측근에게 살해당하고 건국 39년 만에 멸망하여 당나라로 역사의 바통을 넘기게 됩니다.
568
[양견, 수국공 작위 계승]
양견의 아버지 양충이 사망하자, 양견은 대장군과 함께 수국공 작위를 물려받으며 점차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북주 시대, 양견의 아버지인 양충은 서위 건국에 공헌하여 대장군이 되었고, 북주 건국 후 수국공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568년 양충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양견이 대장군과 수국공 작위를 계승하며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됩니다.
580
[양견, 북주 섭정 장악 및 반란 진압]
북주 선제가 사망하자, 양견은 섭정으로서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세력들의 대규모 반란을 교묘하게 진압하며 북주 내 패권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무제에 이어 즉위한 북주 선제는 기행을 일삼다가 재위 8개월 만에 퇴위하고, 580년 사망했습니다. 선제의 장인이었던 양견은 이 기회를 틈타 섭정으로서 북주의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이에 무천진 군벌 세력들이 반발하여 울지형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으나, 양견은 이를 각개격파하며 북주 내에서의 지배력을 굳건히 했습니다.
581
[개황율령 제정 및 관제 개혁]
수 문제는 즉위 직후부터 대대적인 내정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고 간소화된 '개황율령'을 제정했으며, 3성 6부 제도를 확립하고 지방 행정구역을 주-현 2단계로 재편했습니다.
수 문제는 즉위와 동시에 북제의 제도를 참고하여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581년에 기존의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고 간소화한 새로운 율령인 '개황율령'을 제정했으며, 이는 후에 당나라 율령의 기초가 됩니다. 또한, 최고 기관으로 상서성, 문하성, 내사성의 3성을 설치하고 그 아래 이부, 탁지부, 예부, 병부, 도관부, 공부의 6부를 두는 등 관리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했습니다. 지방 행정 구역도 기존의 주-군-현 3단계에서 주-현 2단계로 간소화했습니다.
[수나라 건국 및 수 문제 즉위]
양견은 북주 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초대 황제인 수 문제로 즉위했습니다. 이로써 양견은 남북조 시대 혼란을 끝낼 새로운 통일 왕조의 막을 올렸습니다.
580년 북주의 패권을 장악한 양견은 다음 해인 581년 3월 4일, 북주 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묘호 고조, 시호 문황제로 불리며 새로운 통일 왕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588
[남조 진나라 원정 시작]
수 문제는 중국 재통일을 위한 마지막 단계로 남조의 진나라 정복을 준비했습니다. 장성 복구, 대운하 개착, 후량 병합 등의 사전 작업을 마친 후, 차남 양광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50만 대군을 이끌고 진나라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신중했던 수 문제는 북쪽의 돌궐 방어를 위해 장성을 복구하고, 보급로 확보를 위해 한구를 개착하여 회수와 장강을 연결했습니다. 이후 북조 괴뢰 정권인 후량을 병합하여 전초기지로 삼고 대규모 함대와 50만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588년, 문제는 차남 진왕 양광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남조 진나라 정벌에 나섰습니다.
589
[남북조 시대 종결 및 중국 재통일]
수나라 군대가 진나라 수도 건강을 함락시키고 진숙보 황제를 체포하면서 진나라는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184년 황건적의 난 이후 약 405년간 지속된 중국의 기나긴 분열 시대가 완전히 종결되었고, 수나라가 통일 제국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588년 시작된 진나라 원정은 이듬해인 589년 2월 10일, 수나라 군대가 진나라의 수도 건강(지금의 난징)을 손쉽게 함락시키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진나라 황제 진숙보는 우물에 숨었다가 체포되었고, 이로써 진나라는 멸망했습니다. 이는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되어 약 405년간 지속된 중국의 기나긴 분열 시대를 완전히 종결시키고 수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598
[대규모 고구려 원정 실패]
수 양제는 문제가 중단했던 고구려 원정을 598년부터 614년 사이에 세 차례나 강행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러한 무리한 군사 행동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었으며, 수나라 멸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수 문제는 재위 중 고구려에 대한 원정을 계획했지만 실제로는 한 차례만 이루어졌습니다. 수 양제는 아버지가 중단했던 고구려 원정을 598년부터 614년 사이에 세 차례나 강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원정은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만 가져오고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대규모 군사 행동은 대운하 건설과 같은 토목 공사와 함께 백성들에게 극심한 고통과 부담을 안겨주었고, 이는 결국 전국적인 반란으로 이어져 수나라 멸망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604
[수 문제 사망 및 수 양제 즉위]
검소하고 정조를 중시한 문제와 황후에게 미움을 받은 황태자 양용이 폐위되고, 부모의 비위를 맞춘 차남 양광이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604년 수 문제가 사망하자 양광이 황제(수 양제)로 즉위했으며, 그는 즉위 직후 동생들을 살해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문제의 황후인 독고황후는 강한 성격으로 문제에게 다른 여성과의 자녀를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맏아들 황태자 양용은 사치와 여색을 즐겨 문제와 독고황후의 미움을 사 폐위되었고, 그 자리를 부모의 비위를 맞추던 차남 진왕 양광이 물려받았습니다. 604년, 수 문제가 병으로 사망하자 양광은 황제로 즉위하여 수 양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즉위 직후 자신의 동생들을 계략으로 살해하며 권력을 확고히 다졌고, 이 때문에 문제의 죽음에도 양제의 모략이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605
[수도 동도(뤄양) 이전 및 대운하 연장]
수 양제는 사치와 대규모 토목 사업을 좋아하여 수도를 대흥(시안)에서 뤄양의 동도(東都)로 옮겼습니다. 또한, 하북에서 강남까지 이어지는 대운하를 대폭으로 연장하여 장강 이남의 쌀을 북부로 운송하는 보급로를 구축했습니다.
수 양제는 검소함을 강조했던 아버지 문제와 달리 사치를 즐기고 대규모 토목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605년에 수도를 기존의 대흥성(시안)에서 뤄양의 동도(東都)로 옮겼습니다.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대운하를 대폭으로 연장하여 하북 지역과 강남 지역을 서로 연결한 것입니다. 이는 장강 이남에서 재배된 풍부한 쌀을 북부의 번성하는 도시들로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함이었습니다.
617
[이연, 대흥성 함락 및 공제 양유 옹립]
수나라 말기 전국에서 반란이 확대되는 가운데, 태원태수 이연은 대흥성(장안)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그는 수 양제의 손자인 대왕 양유를 옹립하여 공제로 삼으며 실질적인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수 양제의 폭정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반란이 확산되자,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태원태수였던 이연은 대흥성(현재의 장안)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수 양제의 손자인 대왕 양유를 옹립하여 허수아비 황제인 공제로 삼고, 당나라 건국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618
[수 양제, 근위군에게 살해당함]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란 보고에도 술에 취해 듣지 않던 수 양제는 순행 중 강도(江都)에서 불만을 품은 근위군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는 우문화급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전국적으로 반란이 확대되고 군웅들이 할거하는 상황에서도 수 양제는 순행 중 강도에 머물며 반란 진압 지휘를 맡았으나,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잇단 보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술에 취해 듣지 않다가 618년 4월 11일, 불만을 품은 근위군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문화급의 주도하에 일어났습니다.
[공제 양유, 이연에게 선양하여 당나라 건국]
수 양제 사망 소식을 들은 이연은 옹립했던 공제 양유로부터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는 수나라 멸망 시점에 대한 여러 설 중 하나로, 수서 등 정사에서 취한 시각입니다.
수 양제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태원태수 이연은 자신이 옹립했던 수 공제 양유로부터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 사건은 수나라 멸망 시점을 618년으로 보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이며, 당나라가 편찬한 정사 《수서》 등에서 이 시점을 수나라의 멸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619
[공제 양동, 왕세충에게 찬탈당하며 수나라 멸망]
수 양제 사망 후 낙양에 있던 월왕 양동은 왕세충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으나, 이듬해 619년 왕세충에게 찬탈당했습니다. 이로써 수나라는 3대 39년 만에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수 양제가 618년에 살해당하자, 같은 해 낙양에 있던 월왕 양동은 왕세충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세충의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결국 619년 5월 23일 왕세충에게 황제의 자리를 찬탈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나라는 최종적으로 멸망했으며, 건국 39년 만에 짧은 역사를 마감했습니다. 양제의 시호인 '양(煬)'은 하늘을 거역하고 백성을 학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