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국가, 왕조, 제국, 문치주의 국가, 경제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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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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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왕조, 제국, 문치주의 국가, 경제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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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는 960년 조광윤이 건국 1279년 원나라에 멸망한 중국 왕조입니다. 문치주의를 바탕으로 북송(개봉)과 남송(임안)으로 나뉘어 300여 년간 번성했습니다. 세계 최초 지폐 발행 상비 해군 창설 등 혁신적인 업적과 함께 화약 나침반 등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끌었으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요 서하 금 등 북방 민족과 대립하며 경제 강국으로 군림했지만 결국 몽골군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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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

[송나라 건국]

후주 전전도점검 조광윤이 선양받아 개봉에 수도를 정하고 송나라를 건국하며 오대십국 시대를 통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조 조광윤은 중국의 분열상태 종식을 목표로 16년간 나머지 영토들을 정복하여 오대십국 시대를 끝냈으며, 강력한 중앙정부를 수립했습니다.

1005

[전연의 맹 체결]

송나라가 요나라의 침략을 멈추기 위해 돈을 주고 평화를 사는 협약을 맺었습니다.

이는 송나라 경제력의 강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외적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건입니다.

송나라는 요나라에게 공물을 바쳐야 했으며 요나라를 송나라와 동등하게 대우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송나라는 요나라의 기병 남하를 막기 위해 국경에 거대한 숲을 조성했습니다.

1115

[여진족, 금나라 건국]

만주 지역에서 요나라의 지배를 받던 여진족들이 금나라를 세우고 요나라에 맞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송나라의 북방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해상의 맹]

송나라가 북쪽의 요나라를 협공하기 위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군사 동맹인 '해상의 맹'을 맺었습니다.

이 동맹으로 요나라는 1125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송나라는 요나라 멸망 후 북쪽 국경에 지어놨던 숲들을 밀어버렸으나, 이는 금나라의 송나라 침략을 용이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127

[정강의 변 발생, 북송 멸망]

금나라가 송나라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황제 흠종, 태상황 휘종 등 조정을 북쪽으로 사로잡아 간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이로써 북송 시대가 끝나고 송나라는 남쪽으로 후퇴하여 남송 시대를 열게 됩니다.

금나라는 북송을 멸망시킨 후 자신들이 중원의 정통 왕조라고 주장하며, 송나라의 상징 원소인 불 다음에 오는 흙을 자신들의 상징 원소로 삼았습니다.

1132

[세계 최초 상설 해군 창설]

금나라 침략에 맞서 해상 방어의 중요성을 인지한 송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설 해군을 창설했습니다.

이는 남송의 해상 무역 번성과 국방력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해군은 딩하이구에 본부를 두었으며, 광저우, 취안저우, 샤먼 등의 항구를 정비하여 군선 기지 및 상선 활용을 통한 해양 무역 촉진에 기여했습니다.

1161

[양쯔강 전투 승리]

송나라 해군이 화약 폭탄 등 당시 혁신적인 무기를 활용하여 수적으로 압도적인 금나라 해군을 양쯔강에서 격파했습니다.

이 승리는 송나라의 군사 기술력을 과시하고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금나라 해릉양왕이 직접 이끈 600척 이상의 대군에 맞서 송나라는 120여 척의 배와 3천 명의 병력으로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 후 100여 년이 지나자, 송나라는 5만 2천 여 명에 달하는 해군을 보유하게 됩니다.

1207

[한탁주 살해 및 화의]

금나라가 몽골에 무너져가는 틈을 타 북벌을 감행했으나 실패하자, 금나라의 요청으로 주전파 재상 한탁주가 살해되고 송나라와 금나라는 다시 화평을 맺었습니다.

1234

[금나라 멸망]

몽골 제국 군대가 송나라와의 협력으로 금나라 수도 개봉을 함락시키고 금 애종을 사로잡아 금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이는 송나라와 몽골의 관계가 악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1235

[몽골, 남송 침공 시작]

송나라군이 몽골과의 조약을 위반하고 낙양과 개봉을 회복하자, 몽골 쿠릴타이에서 남송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대규모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몽골군은 1237년이 되자 남송 영토 상당수를 장악했으나, 송나라 명장 맹공의 활약으로 양양과 사천 일대를 수복하고 대몽골 방어선을 구축하며 전세가 일시적으로 반전됩니다.

1259

[몽케 칸 사망]

사천 합주 조어성 전투에서 송나라 명장 왕견의 철통 같은 방어를 뚫지 못하던 몽골의 몽케 칸이 전염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몽골군의 서방 원정이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몽케 칸의 죽음 이후 쿠릴타이가 열려 새로운 대칸을 뽑게 되고, 쿠빌라이 칸이 즉위하며 몽골 제국의 방향이 크게 바뀝니다.

1271

[쿠빌라이 칸, 원나라 개창]

몽골의 쿠빌라이 칸이 자신을 중국 황제로 선포하고 새로운 왕조인 원나라를 개창하며 송나라 정복을 본격화했습니다.

1274

[양양 함락]

몽골군이 6년간의 끈질긴 공성전 끝에 남송의 핵심 요충지 양양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는 남송 멸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몽골군은 보급로를 끊고 지원군을 차단하는 전술로 양양을 고립시켜 함락시켰습니다. 이후 몽골군은 거침없이 남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합니다.

1276

[남송 수도 임안 함락]

몽골군이 남송의 수도 임안까지 진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송나라 조정은 망명 정부 형태로 간신히 존속하며 최후의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간신 가사도의 무능으로 군대가 괴멸된 후 남송의 운명은 정해졌습니다. 마지막 재상 문천상은 최후의 4년간 분투하며 망명 정부를 이끌었습니다.

1279

[애산 전투, 송나라 멸망]

홍콩 광주만 애산에서 몽골군과 송나라 잔존 세력 간 최후의 대결이 펼쳐져 송나라가 대패했습니다.

어린 소제와 육수부 등이 바다에 투신하며 300여 년의 송나라 역사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몽골 기록에 다음날 떠오른 시체만 10만 구였다고 전해집니다. 송나라 함대를 이끌었던 장세걸도 태풍에 휘말려 사망하며 송나라는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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