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해양 사고, 대형 재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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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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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사고, 대형 재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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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해상에서 발생한 대형 여객선 침몰 사고입니다. 정원 초과 과적 악천후 무리한 운항 등 복합적인 인재로 결론 내려졌습니다. 292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최악의 해양 사고 중 하나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사고 이후 해양 안전 규제 강화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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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서해훼리호 탄생]

부안과 격포 사이를 운항할 110톤급 철선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건조되었습니다.

승무원 14명을 포함해 정원은 총 221명이었으나, 비극의 씨앗은 이미 싹트고 있었습니다.

1993

[정원 초과 출항]

일요일 오전 9시 40분경, 정원 221명의 서해훼리호가 무려 362명의 승객과 16톤의 화물을 싣고 위도 파장금항을 출발했습니다.

정원과 적재량을 훨씬 초과한 상태로 부안 격포항을 향한, 예고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

오전 10시 10분경,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돌풍을 만난 서해훼리호는 회항하려다 거센 파도에 심하게 흔들리며 순식간에 전복, 침몰했습니다.

9개의 구명정 중 2개만이 작동했고, 배가 기울어진 지 불과 10초 만에 바닷속으로 사라지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생존자들은 구명조끼를 걸칠 시간조차 없이 급격히 침몰하는 배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해야 했습니다. 당시 인근 조업 어선들이 가장 먼저 조난 사실을 알리고 구조에 나서며 초기 생존자들을 건져 올렸습니다.

[필사의 구조작업]

사고 직후 인근 어선들의 필사적인 초기 구조로 40여 명의 생존자가 구출되었습니다.

이후 강풍과 높은 파도 속에서도 어선, 헬기, 군경 함정 등이 동원된 대규모 수색작업이 시작되어 밤 10시까지 70명의 생존자와 51구의 시신이 인양되었습니다.

[국회, '후진국형 인재' 비판]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를 '후진국형 인재'로 규정하고, 열악한 운용 환경과 안전 관리 부실이 낳은 비극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총체적인 시스템 부재가 비극을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선장 등 승무원 시신 발견]

침몰한 선박의 통신실에서 선장과 기관장, 갑판장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사고의 비극성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인양 중 선체 다시 침몰]

구조함 구미함 등 대규모 장비와 인력이 투입된 선체 인양 작업 중, 인양을 위해 연결한 줄이 끊어지면서 침몰 선체가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구조 작업의 난항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장관 등 관련자 해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의 책임을 물어 교통부 장관, 해운항만청장, 군산지방해항청장이 전격 해임되었습니다.

대형 인재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문책 조치로, 책임자 처벌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침몰 선체 최종 인양]

재침몰했던 서해훼리호 선체가 우여곡절 끝에 사고 발생 17일 만에 다시 인양되었습니다.

어렵게 건져 올린 선체는 사고 원인 규명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292명 사망자 확정]

신고된 마지막 실종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인한 최종 사망자는 292명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수치는 대한민국 해양 사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기록 중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침몰 원인 공식 발표]

해양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은 서해훼리호 침몰의 근본 원인을 선박 구조 문제보다는 승객 정원 초과와 화물 과적, 그리고 악천후 속 무리한 운항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이는 명백한 '인재'임을 시사했습니다.

[관계 공무원 대규모 징계]

서해훼리호 참사와 관련하여 교통부와 해운항만청 관계 공무원 38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으며, 해운조합이사장도 해임되었습니다.

이는 광범위한 안전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은 강력한 조치였습니다.

[검찰 최종 수사 결과 발표]

전주지검은 초과 승선, 과적, 운항 부주의, 그리고 배의 방수구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해훼리호 침몰이라는 대형 참사를 초래했다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모든 원인이 총체적 부실을 가리켰습니다.

1994

[사망자 보상금 확정]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망자 1인당 9,91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될 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총 282억 원의 보상금 중 서해훼리호의 배상 능력이 10억 원에 불과하여, 해운공제조합과 국민성금, 재해의연금으로 부족분을 충당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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